인공지능(AI)으로 대표되는 첨단의 21세기에 식량 문제 이야기를 한다면 구시대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오히려 농업과 식량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 왜 식량 문제에 대한 관심이 더 커지고 있을까? 4차 산업혁명으로 기계가 우리의 직업을 대체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결국 자신이 먹을 식량은 스스로 생산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인간의 본능을 깨우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먹거리가 수북이 쌓여있는 마트에서 장을 보는데 익숙한 젊은 세대에게 보릿고개와 같이 식량이 부족할 것이라는 것은 남의 이야
미국의 제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Franklin Foosevelt), 사회주의 지식인으로서 세계인권운동과 노동운동에 기여한 헬렌 켈러(Helen Adams Keller), 한글 창제 등 가장 위대한 업적을 남기신 세종대왕 등은 어렸을 적부터 위인전을 통해 알고 있다. 흔히 우리는 그들의 뛰어난 업적에만 관심을 갖는다. 하지만 이들의 또 다른 공통점은 장애를 갖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소아마비를 헬렌 켈러는 시각과 청각장애를 세종대왕은 시각장애를 갖고 있었다. 뒤를 이어 바로 장애는 극복의 대상으로 개인적 노
편견은 편견을 낳는다. 편견이 세기에 걸쳐서 지속되니 이제는 당연시 진리인양 여겨진다. 유럽중심주의가 그렇다. 유럽은 처음부터 모든 분야에 걸쳐서 우월하였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 책은 이러한 주장이 얼마나 잘못된 편견인지를 새로운 광범위한 자료로 증명하고 있다. 유럽이 우월하다는 편견은 역으로 아시아 국가가 열등하다는 편견으로 이어졌다. 세계를 이어주는 네트워크가 항해의 팽창으로 가능하였다. 이러한 대항해가 가능한 기술, 재력, 권력 등도 모두 유럽에서 나왔다는 주장도 역시 편견이었음을 이 책은 각종 통계와 근거를 통해 말해 주고
“이제 과학은 교양이다” 이 문구가 낯설지 않다면 당신은 이미 ‘과학하는 사람’이라고 불려도 될 것 같다. 언어학에서 ‘xx하다’라는 범주의 동사는 경동사(light verbs)라고 불린다. 이런 동사류는 동사+목적어의 복합 술어 구문이 목적어의 동사형과 형태적으로 동일하며, 동사 자체가 그렇다한 의미를 추가로 지니지 못한다는 의미적 특징을 가진다. 영어로 dance와 do a dance는 알기 쉬운 예이다. 한국어로는 ‘이메일-이메일하다,’ ‘카톡-카톡하다’가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뚜렷한 특징의 의미적 가감이 없는데도
눈앞에 자기 자신이 나타나는 기괴한 현상을 ‘도플갱어’라고 한다. 도플갱어의 어원은 ‘둘’을 뜻하는 독일어 ‘Doppel’과 ‘걸어가는 사람’을 뜻하는 독일어 ‘Ganger’를 합친 단어로 ‘세상 어딘가에 걸어 다니는 외모가 똑같은 사람을 뜻한다. 일반적으로 도플갱어와 마주치면 머지않아 자신이 죽을 것임을 암시하는 것이라는 속설이 있어 공포영화의 소재로도 자주 쓰인다. 어릴 때부터 공포 영화나 추리소설을 즐기던 나에게 이 ‘도플갱어’ 현상은 더할 나위 없는 큰 흥밋거리로 다가왔다. 마주치면 죽을 수도 있지만, 세상 어딘가에 ‘나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의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위스키 성지여행을 다녀왔다. 그 시기는 위 소설이 발표된 이후 약 10여년이 흐른 1990년대 중후반으로 추정된다. 성지여행이라지만, 종교적 성지(聖地)라기 보다는 위스키로 대표성 있는 위스키 산지에 대한 탐방(探訪)이라 함이 옳다. 개인적으로 이라는 일본판 원제를 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둘 이상의 사람들이 언어를 뒤로 하고 위스키를 내밀면 상대는 그 술잔을 조용히 받아 목 넘김 하면 그만이
“설마 내가 이상한 건가요?”누구나 고민은 있다. 하지만 생각보다 고민을 진지하게 들어주는 이는 없다. 물론 여러 의미로 좋은 얘기(?)를 해주는 어른들은 참 많은 세상이다. 답답한 마음에 고민을 털어놓아도 누군가 제시해준 정답(!)에 더 답답해지는 건 느낌적 느낌 기분 탓일까?일상에, 학교에, 미래에 치이는 젊은 ‘프로 고민러’라는 생각이 한 번이라도 들었다면. 과감하게 최민석 작가의 와 만나보는 걸 권해보고 싶다.뜬금없이 고민에 소설가를 찾아가란 얘기가 이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세상사 어떤 직업을 둘러봐도 소
루이 라벨은 가브리엘 마르셀과 더불어 프랑스의 대표적인 유신론적 실존주의자이다. 그의 철학은 근본적으로 중세의 스콜라철학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지만, 사상의 노선이나 특정한 도그마를 넘어 ‘인간의 정신’이라는 보편적인 지평에서 세계와 인간의 운명을 이해하고자 하는 열린 정신을 견지하고 있다. 그의 저서들 중에서도 『자아와 그 운명(Le moi et son destin)』은 이러한 그의 정신을 아주 잘 반영해 주고 있다.이 책에는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 까지 ‘인간의 정신’ 혹은 ‘인간의 실존’에 대해 고민했던 16명의 철학자들의 사유
원고청탁을 수락하고 어떤 책을 소개할까 한참이나 고민했다. 그러던 중 불현듯 책 한권이 생각났다. 읽기 쉽지 않은 학술서적이고, 출간된 지 50년이 넘은 지나간 시대의 책이지만 공부의 길에 나선 학생들에게 울림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이 책의 저자인 에드워드 파머 톰슨(Edward Palmer Thompson, 1924-1993)은 독특한 이력을 가진 역사학자다.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서 전사한 공산주의자 형을 따라 이탈리아 전선에서 싸웠고 공산당원이 되었지만, 1956년 헝가리의 민주적 사회주의 시도에
대학시절 재미있게 들은 강의 중 하나가 ‘교양국어’다. 과목명만으로는 호기심이 일지 않을 필수교양이지만, 수업해주신 선생님이 특별했다. 새내기 법학도들을 앉혀두고 낭랑한 목소리로 황지우 시를 들려주셨고, 수능문제집 지문으로나 토막토막 접했던 김승옥의 소설 전문을 읽으며 국가에 대한 각자의 입장과 무관하게 국어가 얼마나 아름다워질 수 있나 알게 하셨다. 단편 ‘염소는 힘이 세다’를 함께 낭독했던 1교시 수업시간, 온몸을 휘감던 전율이 지금도 생생하다.학기말 즈음하여 선생님은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대한
개인적으로 누군가의 방에 가면 습관적으로 책장을 스캔한다. 책장을 둘러보면, 그 사람의 성향을 느낄 수 있다. 책장에는 개인이 고민과 역정이 그대로 녹아 있다. 한편으로는 “저 책들은 얼마만큼의 생명력을 가질까?” 하는 궁금함도 떨칠 수는 없다.나는 “오래된 책, 즉 고전이 좋은 글이다.” 라는 지론을 가지고 있다. 는 공자와 그의 제자, 당시의 제후와의 대화를 기록한 책이다. BC 450년경에 만들어졌다고 알려져 있다. 약 2500년 동안 인류의 책장을 지키고 있는 고전인 것이다.“學而時習之, 不亦說乎(학이시습지, 불역열호
"한 학기에 책 한권 이상 읽는 학생 손들어 보세요.”라는 질문을 던지면 한 교실에 많아야 5~10명 정도 손을 든다. 모든 정보를 손 안에서 찾을 수 있는 시대에 종이책을 일컫는 것은 시대에 뒤처진 일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독서에 대한 것을 강조하는 것을 자주 접한다. 그러면 잠시 마음속으로 독서의 의지를 불태운다. 그것도 잠시 우리는 다시 손안에 있는 전화기 세상에 갇힌다.그럼 독서 실패의 원인은 무엇인가? 바로 습관이다. 습관이 돼 있지 않기 때문에 항상 가지고 다니는 전화기에 눈이 가고 책에는 손이 가지
는 예루살렘 히브리대학의 역사학과 교수 유발 하라리의 후속작이다. ‘호모’는 사람, ‘데우스’는 ‘신(神)’을 뜻하는 라틴어다. 전작 에서 저자 유발 하라리는 인간이 가진 신, 인권, 국가 또는 돈에 대한 집단신화를 믿는 독특한 능력 덕분에 지구를 정복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그런데 앞으로도 이러한 인류의 능력과 집단협력이 계속 막강한 힘과 눈부신 성과를 가질 수 있을까? 는 ‘우리의 오랜 신화들이 21세기 인공지능과 생명과학 기술과 만날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 책의 저자는 유명 건축가 나카무라 요시후미와 건축주 진 도모노리이다. 이 책은 두 명의 저자가 정해진 페이지를 꾸역꾸역 채워가는 것이 아니라 ‘건축가’ 와 ‘건축주’가 서로 나눈 편지를 통해 일본 홋가이도 외진 시골 빵집 블랑제리 진(Boulangerie JIN)을 리모델링 하면서 건축과 빵에 관한 마음을 담아가는 과정을 고스란히 소개하고 있다.책이라 하기에는 편지들과 몇몇 스케치들로만 채워져 있으니 처음에는 너무 쉬운 또는 너무 사적으로 쓰인 기록 정도로 평가할 지도 모르겠다. 남의 편지를 읽는다는 다소의 호기심으로 이 책을
“토론술은 진리를 찾는데는 관심이 없다. 이것은 검객이 결투를 초래한 언쟁에서 누가 옳은가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첫 장에 쓰인 글귀이다. 이 책은 객관적 진리를 탐구하기 위한 고상하고 점잖은 토론 지침서가 아니다. 그의 첫 글에서 알 수 있듯이 궤변론자들이 토론을 통해 어떻게 대중을 현혹하는가를 보여준다. 이 책을 읽고 대선후보 토론 프로그램을 시청한다면 그동안 알아채지 못했던 많은 것들이 보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쇼펜하우어의 미발표 작이었던 이 책은 19세기에 집필됐지만, 2
지난 겨울 우리는 촛불을 들었다. 서울 광화문에서, 부산에서, 광주에서, 제주에서, 촛불은 겨울밤을 뜨겁게 밝혔다. “이게 나라냐”라는 외침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보여준 ‘막장’에 대한 비판이기도 했다. 상식을 저버린 권력의 민낯은 참담했다. 촛불의 광장에서 우리는 저마다의 언어로 민주주의를 이야기했다. 그것은 내가 나의 언어를 가지고 있다는 자각이자, 타자의 언어를 이해하는 소통의 출발 지대였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언어로 이야기하고 서로의 언어를 이해했다.다시 봄이다. 이제 촛불의 광장을 뜨겁게 달군 질문에 우리가 답해야
백수린의 두 번째 단편집 『참담한 빛』에는 「스트로베리 필드」를 위시한 그녀의 근작 열 편이 담겨 있다.그녀의 단편들은 잘 읽힌다. 왠지 낯익은 느낌이다. “아무에게도 발설할 수 없고, 누구에게도 들통 나서는 안 되는 비밀”(48면)을 들려주겠다든지 “그동안 아무에게도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을 것 같은 느낌&rd
건전한 민주주의의 핵심은 국민의 적극적인 투표 참여이고, 국민의 투표 참여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과 결정에 기초하여 이뤄질 때 그 의미가 더욱 빛을 발할 수 있다.유권자의 합리적인 판단과 결정을 위해서는 후보자의 정책과 비전, 개인적 자질에 대해 정확하고 객관적인 정보가 미디어를 통해 충분히 제공될 때 가능한 일이다. 이러한 정치와 미디어 간의 연결 고
〈빵의 역사〉저자 하인리히 E. 야콥|역자 곽명단, 임지원|우물이있는집지금은 바야흐로 ‘먹고사니즘’의 시대이다. 방송에서는 먹방의 전성시대로 이 방송사 저 방송사 할 것 없이 비슷한 음식 프로그램을 매일 방영하고 있고, 요리사는 마치 탤런트처럼 화려한 모습과 기술로 음식을 보여주기 바쁘다. 화려한 손 기술로 만들어진 시각적으로 훌륭한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 빌 코바치·톰 로젠스틸|역자 이재경 |한국언론재단“언론의 공적 영역을 사적 영역으로 끌어 들여 부관참시(剖棺斬屍)하듯 과거사를 끌어올려 난도질 하는 것은 언론의 정도일 수가 없다. (중략) 적어도 건전 언론이라면 공정하고 객관적이고 건전한 이성적 비판과 쓰레기 같은 감정의 배설물 같은 비난은 구분할 줄 알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