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BOOK카페 백석의 시 에서 불타는 것들은 모두 무용지물로 여기는 것들이다. “헌신짝, 소똥, 짚검불, 가랑잎, 머리카락, 헝겊조각” 등 우리가 하찮게 여기는 것들이다. 하지만 그런 것들로 모닥불이 불을 유지한다. 주위를 따뜻하게 만든다. 모닥불이 불꽃을 내고 있기에 여러 동물과 사람들이 둘러앉아 불을 쬔다. 불을 쬐는 것들은 모두 평등하다. 누구든 차별 없이 온기를 나눈다. 황석영의 소설 에 등장하는 인물 노영달, 정 씨, 백화는 급속한 산업화의 시기에 도시로 나왔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지난 5월 23일~25일에는 우리가 1년 중 가장 기대하는 대동제가 있었다. 제주도는 축제 문화가 다른 지역만큼 활성화돼 있지 않아서일까, 우리 학교 축제는 제주도의 축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재학생들부터 가족 방문객, 중ㆍ고등학교 학생들, 회사 직장인들까지, 다양한 사람이 방문한다.교내에 빼곡한 차들을 보고 있으니 문득 ‘한산하기만 해 보이던 이 섬에 사람이 이렇게 많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이 상황이 어색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재작년까지만 해도 코로나19로 축제는커녕 사적으로 만나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셀 수 없
고요한 제주 바다를 바라보면 마음이 편안하다. 봄을 맞이해 관광객들이 제주 바다의 풍경을 보러 먼 길을 나선다. 그런데 고요한 겉모습과 달리 제주 바닷속은 점점 황폐화되고 있다. 다양한 어종과 해조류로 꽉 찼던 제주 바다가 갯녹음 현상으로 아무것도 살지 않는 죽음의 바다로 변하고 있다.갯녹음 현상은 지구온난화에 의한 수온 상승, 해양 오염 등으로 대형 해조류가 사라지고 석회조류가 갯바위에 달라붙어 바위가 하얗게 변하는 현상을 말한다. 1차 먹이인 해조류가 사라지면서 해양생물이 없어지게 돼 ‘바다 사막화’ 현상이라 불린다.갯녹음 현상
고등학생 때 뭍으로 수학여행을 갔을 때의 일이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한 아저씨가 내게 대뜸 제주 사투리를 써보라고 했다. 아마도 관광버스에 적힌 제주도 학교 이름을 보고 제주도에서 온 학생이라 생각하고 물은 것 같았다. 나는 당황스러워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데 옆에 있던 한 친구가 그 아저씨에게 바로 대거리를 했다. “무사 마씨?(왜요?)” 아저씨는 처음 듣는 말이었는지 놀라서 뒷걸음질을 쳤다. 나는 그 친구가 멋있어 보였다. 제주도에서 온 학생들이라고 반기는 건 좋지만 진귀한 구경거리 난 듯 취급하는 건 마뜩잖다.또 군대에서
얼마전 한라산 영실 탐방로를 다녀왔다. 제주시내는 맑았지만 영실 탐방로가 있는 곳으로 넘어 갈수록 하늘이 흐려졌다. 맑은 날씨를 가장 좋아하지만 실로 오랜만에 방문하는 한라산 탐방로였기 때문에 발이 가벼웠다. 걷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독자기고를 통해 소개할 식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영실 탐방로 시작점의 해발고도는 1280m 라서 생각보다 높은 고도에서도 자란다고 생각했지만 해발 600~1,400m까지 온대 낙엽활엽수림대라는걸 고려하면 이해가 수월하다. 개족도리풀은 족도리풀과 비슷하게 생긴 같은 쥐방울덩굴과의 식물이다. 족도
중간고사를 앞둔 어느 새벽이었다. 새벽 두 시가 넘어가는 늦은 시간이었지만 허기를 참지 못한 나는 학생회관 1층에 있는 편의점에 갔다. 학생회관 편의점은 밤에는 무인 매장으로 운영되기에 새벽에 편의점에 들어가려면 신용카드를 꽂고 인증을 받는, 다소 귀찮은 몇 가지 절차들을 거쳐야만 한다. 어찌어찌 문을 열고 들어와 편의점 이곳저곳을 돌며 과자와 음료수 따위의 군것질거리를 고르고 있는데 바깥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누군가 문을 열려고 하는지 부스럭부스럭 하는 소리가 나기에 입구 쪽을 보았다. 혹여 카드를 두고 와서 나한테 문 좀 열어
제주 BOOK카페 내가 제주도에서 초ㆍ중학교를 다닐 때는 학교에서 제주 방언을 쓰지 않는 분위기였다. “무사?”, “~마씨“ 정도는 일상에서 썼지만, 특히 수업 시간에는 제줏말을 쓰면 아이들이 깔깔깔 웃었다. 사투리를 쓰면 규격화되지 못한 사람 취급 받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요즘은 제주어로 뉴스를 진행하는 TV 프로그램도 있고, 제주어 문학의 위상도 높아졌다. 혹자는 제주 방언을 제주어라 부르는 것에 의문을 제기한다. 제줏말이 다른 지역 사람에게는 외국어처럼 들리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중국어나
2023 제주 북페어가 4월 8일부터 9일까지 한라체육관에서 개최됐다. 각 지역에서 온 독립서점들이 부스를 설치해 책과 포스터, 굿즈들을 소개했다. 작가가 직접 책을 소개하며 책의 비하인드에 대해 이야기하고, 책을 가까이 마주할 수 있는 뜻깊은 북페어였다. 4월 8일 당일 방문한 북페어엔 어른들과 아이들이 부스를 구경하고 있었다. 마스크를 끼고 책들을 구경했던 작년과 다르게 올해는 마스크를 벗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책을 즐겼다. 바리스타 학원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커피를 마시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제주에서 여는 북페어라 더 뜻
이번 4월 3일은 4ㆍ3사건 75주년이다. 4ㆍ3사건 이후 75년의 시간은 억압된 사회 분위기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시대를 거쳐 국가의 수장이 기자회견을 통해 공식 사과를 하는 시대를 지나 현재까지 왔다. 4ㆍ3이 1990년 이후 수면위로 올라오며 감춰진 부분들이 빛을 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4ㆍ3을 정치적 갈등 요소로 가져가고자 하는 존재들이 사라지지 않았다.4ㆍ3 추념식이 얼마 남지 않는 시점에서 소수의 보수정당이 4ㆍ3사건은 김일성과 남로당이 일으킨 공산폭동이라는 왜곡된 표현이 적힌 현수막을 제주도 내 곳곳 걸
제주 BOOK카페 < 26 >호근동에서 두 해 동안 작은 책방을 운영했다. 아내의 고향이고, 공간이 마음에 들어서 선뜻 계약했다. 가게는 원래 작은 슈퍼를 했던 곳이다. 오래된 새시 문이 정겨웠다. 근처에는 30년도 넘은 분식집이 있어서 더 마음에 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서점을 이전해서야 확인했다. 호근동이 시인 김광협의 고향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잊고 있었다. 호근동에는 김광협 시비도 있고, 시 벽화도 있다. 책방이 시집 전문 서점이니 서점 위치로는 제격이었다. 김광협은 서울에서 기자 생활을 오래 해서 고향인 제주도
한국 청소년들의 문해력이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해 한 온라인 커뮤니티 사과문에 “심심한 사과 말씀드린다”라는 표현이 쓰이자 일부 누리꾼이 “성의 없는 사과”라며 비판했다. ‘심심하다’의 뜻을 ‘깊고 간절한’이 아니라 ‘지루하고 재미없다’라는 뜻으로 이해한 것이다. 이 외에도 ‘사흘’을 ‘4일’로 잘못 이해하거나, ‘설빔 설을 맞이하여 새로 몸을 단장하기 위한 옷ㆍ신 따위’을 빙수 프랜차이즈와 헷갈리는 사례등이 퍼지며 젊은 세대의 문해력이 떨어진다는 말이 이어지고 있다. 2021년 교육부·한국 교육과정 평가원이 주관하는 ‘국가 수준
바닷가를 거닐다보면 속 빈 뿔소라를 발견하게 된다. 뿔소라는 조간대에 주로 서식한다. 뿔소라 빈 껍데기를 귀에 대면 바다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난다. 그것은 어쩌면 뿔소라의 기억이다. 소라의 나선은 해류에 따라 형성이 된다고 한다. 마치 나이테처럼 바다가 만든 무늬인 것이다.이 시집에는 두 편의 시 「뿔소라」가 있다. 앞에 실린 작품은 바닷가에 주운 껍데기에 대해서 말하고, 뒤에 수록된 작품은 그걸 갖고 집에 온 이후를 말한다. 그러니 뿔소라는 사랑일 수도 있고, 기억일 수도 있다. 두 편 모두 뿔소라에 귀를 대보는 장면이 있다.뿔소
농협은행 제주대학교 지점에서 직장생활 한 지도 봄이면 9년 차가 됩니다. 제주대학교와의 인과 연은 2007년 태풍 ‘나리’로 제주시가 물난리 피해가 있을 때 시내 모 마트 주차장에 수해로 고립된 제주대학교 대학생을 구조하면서부터였습니다.안중근 의사의 ‘백일막허도 청춘부재래(세월을 헛되이 보내지 말라. 청춘은 다시 오지 않는다)’라는 명언처럼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고교 시절 하굣길 폭우로 내천이 범람해 동창 6명을 잃고 트라우마로 방황을 하기도 했습니다.가버린 친구들을 위해서 독하게 마음먹고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내가 해야 할
나는 4년 차 제주도민이다. 하지만 누군가 제주에 관해 묻는다면 제대로 답해줄 수 없다. 코로나19로 제주 문화를 제대로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근에서야 정상적으로 개최되는 전통축제에 참여하며 비로소 진짜 제주도민이 된 것만 같다.3월 9일부터 12일까지 애월읍 새별오름에서 열린 들불축제에 다녀왔다. 제주 들불축제는 가축 방목을 위해 마을별로 불을 놓았던 목축문화를 재현한 제주의 문화 축제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최우수 축제로 지정될 만큼 매년 많은 관광객이 찾아온다. 이번 들불축제는 특이하게도 ‘불’이 빠진 들불축제였다. 최근
제주 BOOK카페 < 24 >계간 《제주작가》 편집 간사를 한 적이 있다. 간사가 하는 주된 일은 원고를 취합하는 일이다. 그때 유일하게 원고지에 원고를 써서 보내오는 사람이 있었다. 민속학자 심우성이다. 솔직히 그때는 내가 민속학에 과문해 그가 어떤 인물인지 잘 몰랐다. 뒤늦게 그의 연구서를 접하며 그의 곧은 글씨체가 떠올랐다.학자는 다른 지역으로 거처를 옮기면 그 지역에 대한 연구를 하게 되는가 보다. 석주명은 경성제국대학 생약연구소(현재는 서귀포시 영천동에 있는 제주대학교 아열대농업생명과학연구소)에서 근무할 때 생물학뿐만 아니
대학생은 원하는 직장에 가기 위해 노력한다. 대학 강의에서 높은 학점을 받는 것은 원하는 직장에 가기 위한 노력 중 하나다. 이를 위해 노력 대비 높은 학점을 받는 강의인 ‘꿀강’을 많이 선택한다. 이런 선택은 강의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치를 볼 기회가 줄어들 수 있음을 시사한다.대학교는 강의를 통해 학습한 지식을 활용하여 개인 또는 사회 문제를 논리적 사고를 통해 해결하는 방법을 배우는 곳이라 생각한다. 전공 강의는 본인 학과와 관련된 내용에 대해 배우며 선택은 제한적이다. 교양 강의는 본인 학과에 제약받지 않고 자유롭게 선택할
TV 채널을 둘러보다 우연히 DMZ에 대한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비가 오는 날에는 지뢰 사고가 날 수도 있습니다. 절대 흙이나 풀을 밟지 마세요.” 라는 멘트와 영상 안의 도로는 여느 농촌 풍경과 다르지 않지만 곳곳에 ‘지뢰’ 표지판이 스쳐 지나갔다. 그 때의 내 나이는 중학교 2학년, 한창 사춘기에 접어들 시기였다.그 때의 나는 몰랐다. DMZ가 무엇인지, 왜 필요한지, 대학생이 된 지금의 나는 중학교 때의 나와 별반 차이나지 않았다. DMZ는 그저 단순히 “비무장지대”라는 것만 알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랬던 나는 제주지역
제주 BOOK카페 < 23 >어렸을 때 조수웅덩이에서 놀았다. 그곳이 조수웅덩이인 줄 몰랐다. 그때 자주 봤던 물고기가 범돔과 베도라치라는 걸 이 책을 보고서야 알았다. 범돔은 호랑이 무늬를 지니고 있어서 그렇게 부른다. 범돔을 보면 남태평양 바닷속이 떠올라 범돔 따라 꿈꾸듯 잠수를 하곤 했다.바위게가 나타나면 숨바꼭질이 시작되었다. 바위게는 바위 틈 사이로 들어가서 나오지 않고, 어린 우리는 고사리손을 집어넣었다. 서로 바둥대며 옥신각신 줄달음질을 했다. 옆으로 기어가는 게가 재미있어서 우리도 따라 흉내 내며 웃었다. 어른들은 바
제주를 떠나는 청년들이 해마다 꾸준히 늘면서 코로나19 이후 2019년 17만6,000명, 2020년 17만3,000명, 2021년 16만9,000명으로 3년간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제주도의 청년인구 부족이 불러오는 문제점은 정책, 기업, 개인적 측면에서 다양하다. 청년의 인구 부족은 정책 추진에 있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기 어렵고 이는 불평등 혹은 소외되는 정책이 나타나는 문제를 야기한다. 기업적 측면에서는 필요한 인원이 부족하여 사업을 확장하거나 사업 운영에 불편함을 겪게 된다. 장기적인 측면에서 이러한 문제점은 제주도의 취업
오늘도 어제와 같았다. 계속 같은 자리를 도는 시계바늘처럼, 앞을 향해 달려가지만 여전히 제자리를 돌고 있는 느낌이 들 때, 내가 가는 방향이 맞는지 불안할 때가 있다.초등학생 시절 장래희망을 적는 칸에 대통령이라고 적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을 만나 내 꿈은 대통령에서 선생님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나라를 지켜주는 군인을 보곤 대통령에서 선생님으로, 선생님에서 군인으로, 매순간은 내 꿈이 됐고 유년시절의 나는 꿈을 말하는데 막힘이 없었다.하지만 나이가 들고 성인이 되자 꿈은 그저 꾸는 것만이 아닌 좇아야 하는 것이 됐다. 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