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마치 제주대신문 사용설명서를 쥐고 있는 것 같다. 상품이 설명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고객센터에 애프터 서비스를 요청하는 게 마땅한 것처럼 말이다. 걸려온 전화로 불만을 응대할 때면 내가 기자인지 상담원인지 헷갈린다.대학 언론을 향한 학생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었을 뿐인데 학교는 다르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다시 고민해 본다. 학교가 생각하는 대학 언론의 역할은 뭘까. 학교 홈페이지에 소개된 것처럼 그냥 ‘기타 지원시설’인가? 약 3년 동안 축적된 학보사 경험에 근거하면 감시기구보다는 홍보실에 가깝다.간혹 좋은 기회가 생겨 제
2023년도가 마무리를 향해 가고 있다. 올해를 돌아보며 기억해야 할 ‘그날’의 의미를 다시 새긴다. 1953년 7월 27일. 비로소 한반도에 총성이 멈췄다. 한국 군사 정전에 관한 협정, ‘정전협정’이 체결됐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약 3년이 지난 시점이었다.정전협정은 국제연합군 총사령관과 북한군 최고사령관, 중공 인민 지원군 사령관이 참여한 가운데 판문점에서 체결됐다. 전쟁의 정지와 평화적 해결이 있을 때까지 적대 행위와 모든 무장 행동을 정지시키기 위해 단행됐다.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흘러 올해 ‘정전협정 70주년’을 맞았다.
제주 BOOK카페 내게 ‘시간ㆍ공간ㆍ제주’는 거로에서 별도봉까지 가는 길이다. 거로는 제주시 화북2동에 있는 마을이다. 어렸을 때 기억으로는 마을 몇 군데에 듬돌이 있었다. 제주에서 듬돌은 힘 대결을 할 때 쓰는 큰 돌이다. 아마도 갈등이 있을 때 이 듬돌을 들 수 있는 자의 손을 들어주는 것으로 하지 않았을까. 싸우는 것에 비하면 무척 평화적이다. 전쟁 대신 올림픽을 하면서 나라 간의 갈등이 조금이나마 해소되는 것처럼 말이다. 멀쩡한 길을 놔두고 별도천(화북천)을 선택했다. 내창을 타고 가는 길이 더 재미있기 때문이다. 어
무더웠던 여름이 가고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할 무렵, 천년의 산 지리산으로 답사를 가게 되었다.‘답사’가 있는 학과는 몇 안 된다. 그래서인지 타과 친구들에게 사학과에서 답사 간다는 말을 하면 MT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답사란 한자어 그대로 “밟아 다니며 조사한다”라는 뜻이다. 사학과 답사는 전공 강의를 통해 배운 사실들을 현장에서 직접 경험하는 수업의 연장선이기도 하다.실제로, 아무것도 모르고 다녀왔던 지난 답사와 달리 1년 반 동안 배운 것들이 역사의 현장에서 떠오르는 말로는 다 형언할 수 없는 굉장한 쾌감을 느낄
쿠팡 로켓배송 가능지역과 지방소멸 지역을 비교해 놓은 사진을 본 적 있다. 쿠팡 로켓배송이 가능한 지역은 사라지지 않는 지역이었다. 소멸할 지역이 로켓배송 불가 지역이라는 것이었다. 물론 로켓배송은 빠른 배송이 필요할 때를 대비해 만들어진 것이다. 어떻게 보면 그 지역에 빠른 배송이 필요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다. 쿠팡에서 물건을 주문하지 못하는 어르신들이 많을 수도 있다.지방소멸은 정말 가까운 일이다. 급감하는 혼인율, 출산율은 지방소멸을 넘어 대한민국의 소멸에 이를 수 있다는 우려를 낳게 한다. 지역 인구수로 지역구를 확
핼러윈은 주로 미국에서 기괴한 복장과 분장으로 즐기는 축제이다. 매년 10월 말 성인 대축일 전날 죽은 사람의 영혼이 돌아온다고 여기는 고대 켈트족의 삼하인(Samhain)에서 유래했다. 삼하인은 켈트족의 달력으로 한 해의 마지막 날이자 새로운 해의 시작을 알리는 날로, 켈트족은 이날 죽은 영혼들이 돌아온다고 믿었다. 핼러윈은 죽은 사람의 영혼을 쫓기 위해 기괴한 의상으로 퍼레이드를 하거나 즐기며, 어린이들은 유령이나 마녀 또는 각자의 개성을 살린 무서운 분장을 하고 ‘잭 오 랜턴’이라는 이름의 호박등을 켜놓은 집에 찾아가 사탕을
재일제주인 사업가이자 일본 김창인실천철학교육원 창시자인 김창인 회장이 향년 95세의 일기로 별세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누구보다 슬픔에 젖어 있을 유가족들에게 깊은 위로를 전한다.김일환 총장을 비롯한 교수ㆍ교직원ㆍ학생들도 10월 10일 김 회장이 손수 건립한 제주대김창인실천철학야외교육원에서 추도식을 엄수했다. 생전에 남긴 숭고한 업적과 정신을 기리며 고인을 예우했다.고인은 불굴의 제주 정신을 대한민국과 일본 사회에 뿌리 내렸다. 1929년 제주도 한림읍 귀덕리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마친 뒤 1946년 일본으로 건너갔다. 숱
‘이 도시에선 멍때리는 것조차도 사치/ 버릇처럼 내가 나를 착취해’최근 역주행의 신화를 다시 쓴 가수 다이나믹 듀오의 노래 의 가사 일부다. 주옥같은 가사들 사이에서 하필 이 구절이 귀에 꽂혔다. 정말 이 도시에선 멍때리는 것조차도 사치인가?10시 전공 수업, 13시 팀플 회의, 17시 인터뷰…. 마치 퀘스트를 깨야 하는 강박에 시달리는 게임 유저처럼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다 보면 어느 틈에 멍때리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어떤 날은 먼저 멍때릴 핑곗거리를 찾기도 한다. 일부러 돌아가는 버스를 타는 일이 그중 하나다.멍때리기
세상은 무도하고, 희망은 우리 곁에 없다. 우리의 발길은 끝내 절망으로 향하고 말 것인가. 한때 역사의 수레바퀴는 전진한다고 믿었던 때가 있었다.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을 신뢰하며, 함께의 힘으로 무도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아름다운 시절은 지나갔다. 남은 것은 비천한 욕망뿐이다. 차마 마주하고 싶지 않은 우리 시대의 밑바닥이다. 유명 배우의 마약복용과 운동선수의 스캔들이 연일 포털을 가득 메운다. 성관계를 했느니 마느니 하는 말초적인 관심이 여과 없이 유통된다. 법을 어겼으니 책임을
제주 BOOK카페 고등학교 1학년 때 문학부에 가입했다. 문학부 이름은 ‘창(窓)’. 수요일마다 한 교실에 모였다. 가끔 졸업생이 오기도 했는데 한 선배는 영화 를 권했고, 어떤 선배는 변진섭의 노래 를 불렀다.농협 강당 같은 곳에서 시화전을 열었다. 하이라이트는 문학의 밤이었다. 각자 창작시를 낭독했다. 나는 이병우의 기타 연주곡 를 BGM으로 사용했다. 읽었던 시는 기억나지 않고 그 음악만 그 뒤로도 가끔 듣기에 기억에 오래 남았다. 그리고 그때
나는 여름을 싫어한다. 쨍쨍한 햇볕에 살이 타는 느낌, 몸에서 땀이 나오는 찝찝함을 싫어한다. 고등학생 때까지는 여름이 싫어서 외출하지 않고 집에 틀어박혀 있었다. 20살이 되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여름에도 외출해야 할 의무가 생겼다. 군말 없이 집 밖을 나섰다. 작년 여름, 올해 여름도 똑같은 일상을 보냈다.문득 생각해 보니 작년과 올해의 여름은 싫은 존재로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좋은 기억들이 떠올랐다. 여름이 싫어서 밖을 나서지 않았지만, 의무적으로 외출한 여름은 몹시 싱그러운 계절이었다. 아르바이트가 없는 날에 일부러 산책
얼마 전 방문한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음료를 포장 주문했을 때, “음료 포장 주문 시 일회용컵 보증금 300원이 추가됩니다”라는 매장 직원의 안내를 받았다. 음료를 받고 보니 컵에 바코드 라벨이 붙어있었고, 이는 ‘일회용컵 보증금제도’의 보증금 표시라벨임을 알 수 있었다.일회용컵 보증금제도는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일회용컵의 무단 투기를 줄이고, 재활용하기 위해 2022년 12월 2일부터 제주와 세종에서 선도 시행 중이다. 커피전문점 등에서 일회용컵에 음료 주문 시 보증금 300원을 추가 결제하고, 사용한 컵을 반납하면 납부한 보증금을
두 가지 암울한 미래가 다가오고 있다. 하나는 기후 위기다. 지난여름 지구촌은 그야말로 펄펄 끓었다. 7월 1~23일 지구 표면 평균 기온은 16.95도로 인류 역사상 가장 높았다.유럽과 중동, 동아시아 등 세계 곳곳에서 낮 최고기온이 40도를 훌쩍 넘는 폭염이 지속됐다.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선 43도 이상 폭염으로 사막식물인 선인장마저 말라 죽었다.남극 빙하는 빠르게 녹고 있다. 현재 남극 해빙의 양은 1980년대 이후 최악일 때보다 20% 정도 적다고 보고됐다. 겨울 블리자드(눈보라)가 몰아쳐야 하는데 비가 내리고 있다. 지
아침과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길고 힘들었던 여름 기운을 몰아내고 가을이 왔음을 알리는 시간이다. 가을은 하늘이 높아지고 농작물이 풍성하여 말이 살찐다는 천고마비의 계절이기도 하고, 등불을 가까이할 수 있어 학문을 탐구하기에 좋은 등화가친의 계절이기도 하다. 가을이 독서의 계절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선선한 날씨에 밤이 길어지면서 집에서 여유를 즐기며 독서를 하기에 적합한 시기여서이기도 하고, 종이 발명 이전 대나무 죽간을 사용했는데 봄에 심은 죽순을 키워 죽간으로 만든 계절이 가을이어서 이 시기 책이 많이 보급되어서이기도 하다. 왜
언제나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이다. 인간도 태어났으면 언제나 그 끝에는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인생에서 이별은 언제나 우리의 곁에 함께하고 있다. 끝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계속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나가며 오늘을 살아간다. 인간만이 감정을 느낄 수 있다고 하지만, 인간의 감정이란 때로는 어리석게 느껴진다. 인간의 감정이 가장 크게 동요될 때는 이별을 맞이하게 될 때인 것 같다. 이별에도 다양한 종류가 있다. 친구, 연인, 가족 등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며 한 번쯤은 이별을 맞이하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별을 어떻게 맞
대한민국은 경제가 아닌 역사 논쟁 중이다. 헌법의 가치를 부정하는 ‘건국절’ 논란에 이어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논란이 몇 달째 이어지고 있다.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문제는 국방부 대변인과 국방부 출입 기자단간의 논쟁으로까지 비화되면서 국민들에게 역사 공부를 다시 시키게까지 했다. 급기야 육사는 홍범도 장군 만이 아니라 안중근 의사의 이름을 딴 ‘독립전쟁영웅실’도 철거하겠다는 방침을 새웠다고 한다. 윤석열 정부에는 홍범도 장군은 육사 교정에서는 끝내 퇴출 시켜야 할 인물이 된 셈이다. 보편적인 시각으로 보면 이는 퇴행의 역사를 만
제주 BOOK카페 무더웠던 여름이 지나고 어느새 가을이 우리에게 왔다. 한라산 단풍 명소 몇 군데 중 한 곳이 하원수로길이다. 이 하원수로길 끝에 무오법정사 항일운동 발상지가 있다.는 1918년 10월 7일에 일어난 법정사 항일운동 이야기를 동화로 담은 책이다. 이 운동은 3ㆍ1운동보다 먼저 일어났고, 강창규 스님을 비롯해 지역 주민 700여 명이 참여했다. 이 일로 감옥생활을 하고, 고문을 받다가 죽은 사람도 있다.하원수로는 물이 부족했던 하원에서 마을 사람들이 힘을 모아 한라산에서 마을로 물길을 내었다. 마
인생을 살아가며 누구나 크고 작은 굴곡들이 있지만, 대부분 국민이 가장 힘들다고 느끼는 굴곡을 3가지 뽑아보자면 대입, 취업, 결혼이 제일 많이 나올 것이다.그중에서 취업은 12년의 의무교육과정을 거친 다수와 추가로 N 수를 선택한 소수 모두가 대입을 거친 이후 막막하다고 느끼는 가장 큰 벽이지만, 복지 정책의 하나로 국가가 나서서 청년들의 취업을 돕기 위해 국민 취업 지원제도를 운용하고 있다.‘국민 취업제도’란 취업을 원하는 사람 중 지원 요건을 충족하는 일부에게 취업 지원서비스와 수당을 지급하는 제도이며 지원 요건에 따라 지원
여름방학 동안 운전면허를 땄다. 운전 연습을 위해 아버지를 조수석에 태우고 운전석에 앉으니 그제야 어른이 됐다는 실감이 났다. 웃기지만 대학교에 들어간 6개월 동안 한 번도 어른이라는 실감을 못 느꼈다. 술자리에 있어도 청소년이 술집에 들어가 일탈을 벌이는 것 같았다. 그러다 운전석에 앉으니 내가 어떠한 성역에 감히 발을 들인 듯 거북함이 들었다. 옆을 보니 아버지가 창밖을 보고 있었다. 아버지 머리엔 내 기억보다 더 많은 흰머리가 자라있었다. 세월을 실감하자 아버지의 모습이 쪼그라들어 나와 비슷한 크기가 되어있었다. 운전 연습을
냉소와 무기력의 시절을 지나고 있다. ‘공산전체주의’라는 시효가 끝난 언어들이 다시 등장하고, 각자도생의 악다구니로 소란하다. 그럼에도 세상은 좀 더 좋아질 것인가. 시정의 밤거리에서, 울분에 찬 술자리에서 종주먹을 들이대는 질문들도 때론 무기력하다. 역사의 수레바퀴가 전진할 것이라는 오래된 믿음마저 흔들린다. 타자를 향한 손가락질이 날카로운 창처럼 번득이고, 나만 아니면 된다며, 그대의 불행이 오늘 나의 불행이 아니길 바라는 안도의 외투 안에서 겨우 살아가고 있다. 모두가 악인이 아니지만 세상은 점점 더 나빠지고, 죄의식에 빠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