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도시에선 멍때리는 것조차도 사치/ 버릇처럼 내가 나를 착취해’최근 역주행의 신화를 다시 쓴 가수 다이나믹 듀오의 노래 의 가사 일부다. 주옥같은 가사들 사이에서 하필 이 구절이 귀에 꽂혔다. 정말 이 도시에선 멍때리는 것조차도 사치인가?10시 전공 수업, 13시 팀플 회의, 17시 인터뷰…. 마치 퀘스트를 깨야 하는 강박에 시달리는 게임 유저처럼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다 보면 어느 틈에 멍때리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어떤 날은 먼저 멍때릴 핑곗거리를 찾기도 한다. 일부러 돌아가는 버스를 타는 일이 그중 하나다.멍때리기
세상은 무도하고, 희망은 우리 곁에 없다. 우리의 발길은 끝내 절망으로 향하고 말 것인가. 한때 역사의 수레바퀴는 전진한다고 믿었던 때가 있었다.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을 신뢰하며, 함께의 힘으로 무도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아름다운 시절은 지나갔다. 남은 것은 비천한 욕망뿐이다. 차마 마주하고 싶지 않은 우리 시대의 밑바닥이다. 유명 배우의 마약복용과 운동선수의 스캔들이 연일 포털을 가득 메운다. 성관계를 했느니 마느니 하는 말초적인 관심이 여과 없이 유통된다. 법을 어겼으니 책임을
제주 BOOK카페 고등학교 1학년 때 문학부에 가입했다. 문학부 이름은 ‘창(窓)’. 수요일마다 한 교실에 모였다. 가끔 졸업생이 오기도 했는데 한 선배는 영화 를 권했고, 어떤 선배는 변진섭의 노래 를 불렀다.농협 강당 같은 곳에서 시화전을 열었다. 하이라이트는 문학의 밤이었다. 각자 창작시를 낭독했다. 나는 이병우의 기타 연주곡 를 BGM으로 사용했다. 읽었던 시는 기억나지 않고 그 음악만 그 뒤로도 가끔 듣기에 기억에 오래 남았다. 그리고 그때
나는 여름을 싫어한다. 쨍쨍한 햇볕에 살이 타는 느낌, 몸에서 땀이 나오는 찝찝함을 싫어한다. 고등학생 때까지는 여름이 싫어서 외출하지 않고 집에 틀어박혀 있었다. 20살이 되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여름에도 외출해야 할 의무가 생겼다. 군말 없이 집 밖을 나섰다. 작년 여름, 올해 여름도 똑같은 일상을 보냈다.문득 생각해 보니 작년과 올해의 여름은 싫은 존재로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좋은 기억들이 떠올랐다. 여름이 싫어서 밖을 나서지 않았지만, 의무적으로 외출한 여름은 몹시 싱그러운 계절이었다. 아르바이트가 없는 날에 일부러 산책
얼마 전 방문한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음료를 포장 주문했을 때, “음료 포장 주문 시 일회용컵 보증금 300원이 추가됩니다”라는 매장 직원의 안내를 받았다. 음료를 받고 보니 컵에 바코드 라벨이 붙어있었고, 이는 ‘일회용컵 보증금제도’의 보증금 표시라벨임을 알 수 있었다.일회용컵 보증금제도는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일회용컵의 무단 투기를 줄이고, 재활용하기 위해 2022년 12월 2일부터 제주와 세종에서 선도 시행 중이다. 커피전문점 등에서 일회용컵에 음료 주문 시 보증금 300원을 추가 결제하고, 사용한 컵을 반납하면 납부한 보증금을
두 가지 암울한 미래가 다가오고 있다. 하나는 기후 위기다. 지난여름 지구촌은 그야말로 펄펄 끓었다. 7월 1~23일 지구 표면 평균 기온은 16.95도로 인류 역사상 가장 높았다.유럽과 중동, 동아시아 등 세계 곳곳에서 낮 최고기온이 40도를 훌쩍 넘는 폭염이 지속됐다.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선 43도 이상 폭염으로 사막식물인 선인장마저 말라 죽었다.남극 빙하는 빠르게 녹고 있다. 현재 남극 해빙의 양은 1980년대 이후 최악일 때보다 20% 정도 적다고 보고됐다. 겨울 블리자드(눈보라)가 몰아쳐야 하는데 비가 내리고 있다. 지
아침과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길고 힘들었던 여름 기운을 몰아내고 가을이 왔음을 알리는 시간이다. 가을은 하늘이 높아지고 농작물이 풍성하여 말이 살찐다는 천고마비의 계절이기도 하고, 등불을 가까이할 수 있어 학문을 탐구하기에 좋은 등화가친의 계절이기도 하다. 가을이 독서의 계절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선선한 날씨에 밤이 길어지면서 집에서 여유를 즐기며 독서를 하기에 적합한 시기여서이기도 하고, 종이 발명 이전 대나무 죽간을 사용했는데 봄에 심은 죽순을 키워 죽간으로 만든 계절이 가을이어서 이 시기 책이 많이 보급되어서이기도 하다. 왜
언제나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이다. 인간도 태어났으면 언제나 그 끝에는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인생에서 이별은 언제나 우리의 곁에 함께하고 있다. 끝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계속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나가며 오늘을 살아간다. 인간만이 감정을 느낄 수 있다고 하지만, 인간의 감정이란 때로는 어리석게 느껴진다. 인간의 감정이 가장 크게 동요될 때는 이별을 맞이하게 될 때인 것 같다. 이별에도 다양한 종류가 있다. 친구, 연인, 가족 등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며 한 번쯤은 이별을 맞이하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별을 어떻게 맞
대한민국은 경제가 아닌 역사 논쟁 중이다. 헌법의 가치를 부정하는 ‘건국절’ 논란에 이어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논란이 몇 달째 이어지고 있다.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문제는 국방부 대변인과 국방부 출입 기자단간의 논쟁으로까지 비화되면서 국민들에게 역사 공부를 다시 시키게까지 했다. 급기야 육사는 홍범도 장군 만이 아니라 안중근 의사의 이름을 딴 ‘독립전쟁영웅실’도 철거하겠다는 방침을 새웠다고 한다. 윤석열 정부에는 홍범도 장군은 육사 교정에서는 끝내 퇴출 시켜야 할 인물이 된 셈이다. 보편적인 시각으로 보면 이는 퇴행의 역사를 만
제주 BOOK카페 무더웠던 여름이 지나고 어느새 가을이 우리에게 왔다. 한라산 단풍 명소 몇 군데 중 한 곳이 하원수로길이다. 이 하원수로길 끝에 무오법정사 항일운동 발상지가 있다.는 1918년 10월 7일에 일어난 법정사 항일운동 이야기를 동화로 담은 책이다. 이 운동은 3ㆍ1운동보다 먼저 일어났고, 강창규 스님을 비롯해 지역 주민 700여 명이 참여했다. 이 일로 감옥생활을 하고, 고문을 받다가 죽은 사람도 있다.하원수로는 물이 부족했던 하원에서 마을 사람들이 힘을 모아 한라산에서 마을로 물길을 내었다. 마
인생을 살아가며 누구나 크고 작은 굴곡들이 있지만, 대부분 국민이 가장 힘들다고 느끼는 굴곡을 3가지 뽑아보자면 대입, 취업, 결혼이 제일 많이 나올 것이다.그중에서 취업은 12년의 의무교육과정을 거친 다수와 추가로 N 수를 선택한 소수 모두가 대입을 거친 이후 막막하다고 느끼는 가장 큰 벽이지만, 복지 정책의 하나로 국가가 나서서 청년들의 취업을 돕기 위해 국민 취업 지원제도를 운용하고 있다.‘국민 취업제도’란 취업을 원하는 사람 중 지원 요건을 충족하는 일부에게 취업 지원서비스와 수당을 지급하는 제도이며 지원 요건에 따라 지원
여름방학 동안 운전면허를 땄다. 운전 연습을 위해 아버지를 조수석에 태우고 운전석에 앉으니 그제야 어른이 됐다는 실감이 났다. 웃기지만 대학교에 들어간 6개월 동안 한 번도 어른이라는 실감을 못 느꼈다. 술자리에 있어도 청소년이 술집에 들어가 일탈을 벌이는 것 같았다. 그러다 운전석에 앉으니 내가 어떠한 성역에 감히 발을 들인 듯 거북함이 들었다. 옆을 보니 아버지가 창밖을 보고 있었다. 아버지 머리엔 내 기억보다 더 많은 흰머리가 자라있었다. 세월을 실감하자 아버지의 모습이 쪼그라들어 나와 비슷한 크기가 되어있었다. 운전 연습을
냉소와 무기력의 시절을 지나고 있다. ‘공산전체주의’라는 시효가 끝난 언어들이 다시 등장하고, 각자도생의 악다구니로 소란하다. 그럼에도 세상은 좀 더 좋아질 것인가. 시정의 밤거리에서, 울분에 찬 술자리에서 종주먹을 들이대는 질문들도 때론 무기력하다. 역사의 수레바퀴가 전진할 것이라는 오래된 믿음마저 흔들린다. 타자를 향한 손가락질이 날카로운 창처럼 번득이고, 나만 아니면 된다며, 그대의 불행이 오늘 나의 불행이 아니길 바라는 안도의 외투 안에서 겨우 살아가고 있다. 모두가 악인이 아니지만 세상은 점점 더 나빠지고, 죄의식에 빠지지
디지털 시대가 고도화되면서 젊은 세대들에게 나타나는 뚜렷한 현상이 있다. 우선 손글씨가 제대로 알아 볼 수 없을 만큼 엉망이고, 집중력이 산만하다. 여기에 독서량이 줄면서 문해력도 떨어진다는 점을 최근 언론에 보도된 ‘태블릿 학습이 성적 떨어트린다’는 기사의 내용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디지털 교육 선도국 스웨덴 전역에서 학교들이 종이책과 필기도구를 활용한 ‘전통 교육 방식’을 재도입 중이라고 보도했다. 아울러 디지털 학습 도입 확장을 계획했던 6세 미만 아동에 대한 디지털 학습 또한 완전히 중단한다는 게 정부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계획을 밝힌 후 지난 9월 11일 1차 방류가 마무리됐다.이를 두고 “오염수 방류가 정말 괜찮은 것일까?”에 대한 걱정이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실제로 오염수가 방류되기 전 제주대 근처와 제주시 내 곳곳에 오염수 방류를 반대한다는 내용의 포스터를 오고 가며 봤다. 오염수 방류를 반대하는 이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안전성이 충분히 보장되지 않은 오염수 방류를 찬성하고 진행하는 게 맞는 것인지 의문이 생기기도 했다.나는 오염수 방류 계획에 관해 찬성과 반대 측 어느 입장에도 속해있진 않았다. 하지만 곳곳에서
지난 7월 18일, 학부모들의 악성 민원에 시달리던 서이초등학교 교사가 숨졌다. 비극 이후 전국 교사들은 매주 주말마다 교권 회복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숨진 교사의 49재일인 9월 4일은 ‘공교육 멈춤의 날’이었다. 월요일임에도 전국 교사들이 참여해 대규모 추모 집회를 열었다. 제주 교사들도 제주도교육청 앞마당을 가득 메웠다. 그럼에도 비극은 멈추지 않고 있다. 지난 9월 7일에는 대전의 한 초등학교 교사가 숨졌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숨진 교사는 2019년 친구를 폭행한 학생을 교장실에 보냈다는 이유 등으로 고소를 당했다.
제주지역 대학생들이 해외에 나가 지역사회 현안에 대한 해결책을 고민했다. 제주대학교 지역선도대학 육성사업단 ‘2023 GREAT x JDC 프론티어’에 선발된 11개 팀 대학생 36명은 지난달 23일부터 31일까지 싱가포르를 방문했다.GREAT x JDC 프론티어는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의 지원으로 올해 2년째 진행된 글로벌 교육 프로그램으로 제주대 지역선도대학 육성사업단은 팀별 제안서 심사와 PPT 발표 등을 거쳐 참가 팀을 선발했고, 답사 계획에 따른 항공료와 활동비를 지원했다. 목적지인 싱가포르는 국제업무와 관광 등
예전 졸업식은 왁자지껄하였다. 온 가족과 친척이 꽃다발을 들고 졸업식장을 찾아 사진을 찍고 외식을 하며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는 삶을 축하하였다. 졸업식 당일이 너무 붐벼서 그 전날 학사복을 입고 좀 더 여유롭게 사진을 찍는 풍경도 드물지 않았다. 아마 그 시절 졸업이 온전히 축하의 자리였던 이유는 졸업이 곧 사회생활의 시작을 의미했기 때문이었다. 대다수 졸업생이 취업을 하고, 나름의 삶을 계획할 수 있었던 시절의 졸업 풍경이었다. 최근 졸업식은 과정에 머무르는 것 같은 느낌이다. 마침이 아니라 과정으로 졸업을 바라본다. 학점과 졸업
제주 BOOK카페 백석의 시 에서 불타는 것들은 모두 무용지물로 여기는 것들이다. “헌신짝, 소똥, 짚검불, 가랑잎, 머리카락, 헝겊조각” 등 우리가 하찮게 여기는 것들이다. 하지만 그런 것들로 모닥불이 불을 유지한다. 주위를 따뜻하게 만든다. 모닥불이 불꽃을 내고 있기에 여러 동물과 사람들이 둘러앉아 불을 쬔다. 불을 쬐는 것들은 모두 평등하다. 누구든 차별 없이 온기를 나눈다. 황석영의 소설 에 등장하는 인물 노영달, 정 씨, 백화는 급속한 산업화의 시기에 도시로 나왔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지난 5월 23일~25일에는 우리가 1년 중 가장 기대하는 대동제가 있었다. 제주도는 축제 문화가 다른 지역만큼 활성화돼 있지 않아서일까, 우리 학교 축제는 제주도의 축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재학생들부터 가족 방문객, 중ㆍ고등학교 학생들, 회사 직장인들까지, 다양한 사람이 방문한다.교내에 빼곡한 차들을 보고 있으니 문득 ‘한산하기만 해 보이던 이 섬에 사람이 이렇게 많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이 상황이 어색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재작년까지만 해도 코로나19로 축제는커녕 사적으로 만나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셀 수 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