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모 / 음악평론가

제주대학교는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ㆍ제주의소리와 함께 국제화 시민의식을 고취시키고 미래지향적 마인드를 키워주기 위해 대학생 아카데미를 마련했습니다. 국내의 명강사를 초청해 매주 화요일 오후에 열리는 대학생 아카데미는 오는 12월 9일까지 모두 10개의 강좌와 프레젠테이션 경연대회, 현장체험 등의 다채로운 행사로 마련됩니다. 학생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싸이의 성공은 ‘B급’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싸이는 한국사회가 원하는 비주얼은 없지만 아이디어와 기획력, 그리고 스스로 쌓은 진짜 재능이 있다. 우리사회 모두가 ‘A급’만 바라보고 있다. 모두 비주얼에 단단히 중독됐다. 대중문화도 마찬가지다. 대중문화는 딱딱한 사회분위기 속에서 벗어나 위로와 힐링을 전달해야 한다. 하지만 미디어에는 온통 멋있는 사람들뿐이다. 싸이가 빌보드를 휩쓴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성공의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당당히 “내가 B급이라서”라고 답했다. B급이란 것은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광대의 모습이다.
 
싸이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다른 덕목은 바로 겸손이다. 싸이가 한 대형 음악페스티벌에서 인터뷰 질문이 쇄도하자 주최 측이 “싸이가 시간이 없어서 인터뷰를 길게 할 수 없다”고 말하자 오히려 대신 사과하며 친절하게 인터뷰에 응했다. 살아가는 데 오른팔과 왼팔이 있다. 오른팔이 재능이라면 왼팔은 겸손이다. 겸손하지 않으면 절대 안된다. 나를 대신할 대체자가 많기 때문이다. 기고만장하고 다니면 언젠가는 큰 좌절을 맛보게 된다.

◇더 겸손하고 더 노력해라
 
대중문화의 성패는 젊은 세대의 감성에 닿느냐 아니냐에 달려 있다. 음악의 주체가 노년이든 중년이든 청춘들의 감수성과 접점을 마련하지 못하면 결코 트렌드로 발전하지 못한다. 뚜렷한 흐름으로 상승하려면 젊은이들의 지지와 호감이 있어야 한다. 서태지의 출현은 90년대 한국 대중문화에 충격을 가져왔다. 서태지 이전에도 랩(Rap)은 존재했다. 그러나 이는 영어를 고스란히 가져온 랩이었다. 그 누구도 랩을 한국어로 부른다는 것을 상상하지 못했다. 서태지는 발라드가 주류였던 한국 사회를 도발했다. 뜨거운 것, 새로운 것을 원하는 10대와 20대의 키워드를 정확히 짚어냈다. 그의 음악은 파격적이었고 갇혀있던 청년들의 에너지는 뜨겁게 달아올라 뿜어져 나왔다. 서태지는 청년들의 도발, 도전, 창의, 파격을 대변했다. 그렇기에 서태지의 음악을 거부한다면, 이는 한국 사회의 젊은이들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것과 같다.
 
지난해 조용필의 ‘바운스’ 열풍도 10대와 젊은층의 성원이 절대적이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조용필 스스로도 “새로운 나, 또 다른 나를 찾고자 했다”며 대놓고 젊은 음악 쪽으로 갔다. 최근 중견 가수들 사이에서 모처럼 형성된 ‘한번 해보자’는 활기는 단순히 그때의 음악이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젊은 세대와 소통하려는 노력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서태지나 조용필 모두 자신만의 꿈을 실현시킨 음악가들이다. 젊은 청춘들도 꿈을 꾸고, 꿈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꿈꾸지 않는 사회에 희망으로 물든 내일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결국은 젊은 세대와 소통이다
 
나의 20대 시절에는 하고 싶은 것만을 하고 살았다. 오로지 음악만 들었다. 집안이 어려울 때도, 학점이 바닥을 쳤을 때도 음악만 듣고 또 들었다. 그러나 지금의 20대들의 얼굴엔 불안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하고 싶은 것, 뜻과 자아가 있어도 현실의 벽은 20대에게 불안이라는 그림자를 드리운다. 요즘 20대들에게 꿈과 로망이 없다고 말하는데, 우리 기성세대들의 잘못으로 그렇게 된 것이다. 기성세대로서 학생들에게 정말 미안하다. 20대들이 취업 등으로 괴로움을 당하는 사회를 만드는데 일조한 기성세대 중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내가 대학 다닐 시절에는 초등학교조차 안 나온 부모가 많았지만 자식의 대학진학률은 30%를 웃돌았다. 곧 이들이 부모세대가 됐다. 과거에 부모들 역시 자식을 사랑하고 잘되길 바랐지만, 배움의 끈이 약해 조직적으로 아이들을 지배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이 시대의 부모는 배울 만큼 배웠다. 아이들을 지배하여 부모가 쳐놓은 틀에서 빠져나갈 수 없게 만든다. 아이들의 것은 아이들의 것으로 남겨둬야 한다. 고통기를 겪지 않고 얌전하게 자란 아이들에게 새로운 것, 도발적인 것, 파격적인 것이 나올 수 없다. 이것은 한국사회의 미래로 직결된다. 정체되고 도태되기 쉽다. 안정만을 추구하는 사회에는 도전정신이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20대가 기성세대 ‘꼰대’들을 비하하고 거리를 두는 것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한 꼰대가 여러분을 발탁하고 기회를 주고 출세시켜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제일 미련한 사람이 나이 든 사람 곁에 안 가는 것이다. 20대들이 마음을 열지 않기 때문에 기성세대들이 꼰대 짓을 더 하려는 것이다. 청년세대들이 기성세대와의 소통에 노력을 기울였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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