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록문학상 소설 심사평

누구나 하고 싶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본능이다. 누군가는 그 이야기를 가지고 스스로를 증명하기도 하는데, 그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을 우리는 소설가라 부른다.
 
올해 백록문학상의 소설 응모자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소설 부문에만 무려 38편의 작품을 보내왔는데, 이는 우리 시대의 젊은이들이 이야기에 대한 욕구가 얼마나 강한지 반증하는 것일 게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본 순간, 그렇게 낙관적이지만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작품을 하나하나 정독하면서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것은, 우리 시대 대학생들의 독서량이 왜 이토록 빈곤한가, 그렇다면 왜 과감하게 체험하지 않는가라는 물음이었다. 그러다보니 존중받아야 할 상상력이 조악한 수준으로 끼어들게 되고. 삶이 이토록 재미가 없는 것이었던가. 소설이란 게 이토록 재미없는 것이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에 띄는 작품들이 있었다. 「회고」, 「애자」, 「뱃놈」이 그것이다.
 
「회고」는 스토리텔링적인 요소가 강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읽게 만드는 힘이 있으나 그것이 꼭 미덕만은 아니다. 영조와 사도세자의 이야기를 얼마간은 전략적으로 서사를 풀어내고 있는데 그 외에 문학적인 요소는 찾아보기 힘들다. 본격적인 문학 수업을 거치지 않고서는 오랜 기간(그 열정과 재능에 비하여) 고단한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예단을 조심스럽게 내려본다.
 
「애자」의 장점은 고등학교 시절의 동성애에 대한 얘기를 다른 각도에서 잘 풀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다른 응모자들 또한 이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이 작품만큼 신선한 방식으로 접근하지는 못했다. 일정의 문학 수업도 거친 듯 보이나, 역시 소재 면에서는 너무 진부한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이를테면 이런 이야기를 ‘지금 왜’ 써야 하는 것이지, 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덧붙이는 죽비소리. ‘결연하다’는 단어. 장편소설에서도 한 단어를 고르고 골라 서너 번 정도만 사용하는데 하물며 단편소설에서야. 좀 더 치밀한 독서와 문장 연습으로 단어를 적절히 바꾸어가면서 적확하게 구사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뱃놈」은 가장 인상적인 작품이다. 무엇보다 제주어를 눙쳐 맛깔나게 구사하고, 현장을 핍진하게 녹여내고 있다는 면에서 후한 점수를 받았다. 거의 모든 응모작품이 학교, 공항, 원룸 같은 폐쇄적이며 도회적인 느낌의 장소를 택했으나, 유일하게 제주도의 한 어촌마을을 열린 형태로 그리고 있다는 점 또한 미덕으로 꼽혔다. “하여튼 틀림읎어. 용성이영 나가믄 꼭 이빠이라.” 라는 첫 문장부터 가히 압도적이다.
 
그러나 문제는 중간 부분 드라마식의 ‘출생의 비밀’이 전개되면서 한순간에 맥이 풀려버린다는 점이다. 시원하게 괜찮은 소설 한 편 말아먹었다는 생각이다. 더구나 고모가 조카를 육지로 데리고 나가서 시킨다는 일이 고작 게임장 ‘동전교환원’ 수준의 앵벌이라니. 앞에서 던져놓은 출생의 비밀을 수습하려다 보니 이렇듯 개연성 없는 억지를 부리고 말았다. 구성에 있어서 치명적인 오류를 범한 것이다. 이 응모자 같은 경우는 다양한 작품을 읽되, 작가들이 이야기를 풀어낼 때 사용하는 ‘전략적 서사(구성) 기법’에 대해 심사숙고해봐야 할 것이다.
 
「애자」와 「뱃놈」을 두고 고민하다가 두 작품 모두를 가작으로 선정한다. 두 작품 공히 약점이 많은 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자」의 안정감에, 「뱃놈」의 가능성에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해본다. 제주도에 일생을 걸고 쓸 수 있는 작가가 나타나길 대망하면서, 이번 백록문학상에 응모한 등 푸른 문청 모두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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