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의 원칙/ 한스 요나스(이진우 옮김)|서광사|1만8000원

요즘 우리 사회에서 자주 회자되는 용어 가운데 하나는 ‘안전 불감증’이다. 세월호 사건은 물론이고 요양원 화재 사건, 서울 지하철 사고 등을 보면서 우리 사회의 안전 불감증이 얼마나 만연해 있는지를 뼈저리게 확인할 수 있었고, 목하 이를 어떻게 치유할 수 있는지를 놓고 치열하게 고민 중이다. 하지만 나는 안전 불감증보다 더 깊은 문제는 가치 불감증이 아닌가 한다.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대형사건 사고들의 근원적 원인을 파헤쳐보면 거기엔 한결같이 이윤을 절대시하는 가치관이 깔려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윤 앞에선 그 어떤 가치도 맥을 못춘다. 수학여행단 학생들의 생명도, 노인들의 생명도, 승객들의 안전도 이윤 앞에선 그 우선순위를 내주고 말았다. 돈이 목적이요, 그밖의 모든 것은 그 목적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가치 불감증, 도덕 불감증이 우리사회를 위험사회로 이끌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삶의 터전인 자연환경 또한 그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후쿠시마 원전 폭발로 인해 더 이상 인간이 살 수 없는 지옥의 땅으로 변해버린 그 광경을 지켜보고도 우리는 여전히 원전을 장려하고 있고 심지어 원전 수출 실적을 자랑삼아 떠들어대고 있는 실정이다. 먼 데까지 갈 것 없이 제주의 환경만을 둘러봐도 환경 불감증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확인할 수 있다. 제주의 해안, 중산간 어느 곳을 막론하고 경치가 괜찮다고 여겨지는 지역은 예외없이 개발의 마수가 뻗힌다. 국내 자본도 모자라 중국 자본까지 끌어들여 천혜의 제주 자연은 더 이상 지탱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 정도로 지속적으로 파헤쳐지고 있다. 여기에도 예외없이 이윤=목적, 환경=수단이라는 가치 불감증, 환경 불감증이 깔려 있음은 물론이다.
 
우리의 과제는 이러한 환경 불감증을 어떻게 치유해나갈 것인가 하는 것이다. 세월호 사건과 같은 안전 불감증을 치유하는 데는 책임자 처벌, 국가제도 정비, 안전에 대한 훈련 강화 등을 통해 해결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환경 불감증을  치유하는 데는 묘안 마련이 어렵다. 환경문제는 세월호 사건과 같이 검증 가능한 수치로 그 피해가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환경 파괴로 인한 피해는 그 범위를 특정할 수 없을 만큼 시공을 초월하기에 예측 불허의 파급효과를 초래한다.
 
환경문제에 대한 대안을 놓고 난감해하던 생각의 끝자락에서 나를 구원해준 것은 바로 한스 요나스의 『책임의 원칙』이었다. 한스 요나스는 환경 불감증을 해결하기 위한 묘안으로 ‘사유의 혁명’을 제시한다. 사유의 혁명이 없이는 현재의 위기를 결코 극복할 수 없다고 그는 단언한다.
 
그가 말하는 사유의 혁명은 크게 두 가지를 타깃으로 한다. 하나는 기술적 접근 방식이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는 기술 덕분이고, 그 과정에서 초래된 환경파괴는 우리가 자유를 얻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치러야 할 대가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환경파괴를 오직 기술적 문제로만 파악하는 근대적 사고방식은 속으로 곪아드는 환경문제를 계속 덧나게 할 뿐이다.
 
두번째는 책임에 대한 사유 혁명이다. 요나스가 말하는 책임은 일상적 의미에서의 책임과는 완전히 다르다. 보통 책임이라는 개념이 거론되는 경우는 어떤 사건이 일어난 후 그에 대한 보상이 문제 될 때이다. 책임은 과거 사건에 대한 손해배상 혹은 처벌이라는 맥락에서 말해진다. 이에 대해 요나스가 구축하려는 것은 미래세대에 대한 책임 개념이다. 문제는 책임이라는 개념은 기본적으로 상호성을 전제로 하는데 요나스의 책임 개념에선 이게 성립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하지만 요나스는 책임 개념에 대한 독특한 분석을 통하여 상호성으로부터 자유로운 책임 또한 성립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예로써 요나스는 운전수와 승객의 경우를 든다. 승객의 안전과 생명은 전적으로 운전수에게 맡겨져 있는 만큼 운전수는 승객에 대한 무조건적 책임을 져야 한다. 현세대와 미래세대 간에도 이 강자와 약자의 관계가 성립한다. 미래세대가 생존할 수 있을지의 여부, 또 어떤 생활을 해나갈 수 있을지의 여부는 현세대의 선택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환경문제에 관해 고민해본 적이 있거나 고민하고 있는 이라면 『책임의 원칙』을 통해 좀 더 깊은 생태학적 사유로 빠져들기를 강권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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