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일방(일반사회교육전공 교수)

며칠 전 제주의 모 일간지에 실린‘자연 그대로 놔두는 게 항상 좋을까?’라는 제하의 기고문을 읽고 바로잡을 만한 사항이 있어 펜을 든다. 이 기고문의 핵심은 자연이 자연을 파괴할 수도 있으니 이를 막기 위해서 때로는 인간의 인위적 조치에 의한 자연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자연 그대로 놔두는 것은 능사가 아니다. 그것은 보호가 아니라 방치일 수 있으므로 자연에 대한 인위적 개입과 관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 기고문을 읽은 독자들 가운데는 그렇잖아도 환경보호의식이 그리 깊지 않은 것이 우리의 상황인데 자연에 대한 인간의 개입을 더욱더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이런 주장이 활용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할 수도 있다. 환경보호의식이 강한 북유럽 국가들의 상황에서라면 이런 기사라 하더라도 앞뒤 맥락을 가리면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상황은 그렇게 이해할 수 있으리만치 아직까지는 환경보호의식이 성숙하지 못한 편이다. 따라서 이러한 주장을 펼 때는 좀 더 신중함이 요구돼 보인다.
 
먼저 개념상의 정리가 있어야 한다. 이른바 ‘보전(conservation)’과 ‘보존(preservation)’이라는 개념 간의 구분이다. 보전이란 인간이 자연환경으로부터 장기간 큰 이익을 얻기 위해 기업 등의 무제한적 수탈로부터 자연을 지키는 것이다. 반면에 보존이란 자연환경을 파괴하거나 손상시키는 인간의 모든 활동으로부터 자연을 보호하는 것을 말한다. 자연을 지키고 보호하자는 큰 목적에선 의견이 일치할 수 있으나 그 동기는 분명히 다르다. 보전 쪽은 현세대뿐만 아니라 미래세대의 이익을 중시하여 지키자는 입장인 반면 보존 쪽은 자연을 어디까지나 미개발 상태 그대로 두자는 입장이다. 보전 쪽은 자연환경을 인간의 이익에 봉사하는 수단으로만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반면 보존 쪽은 자연이야말로 명상의 원천이자 현대 생활의 피난처요, 미적 체험의 장소로 그 자체의 내재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여긴다. 간단히 정리하면 보전이란 ‘인간의 이용을 전제로 자연을 유지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보존이란 ‘현상 동결’을 의미한다.
 
자연환경은 보전이 필요한 경우도 있고 보존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특정 국가 특정 지역에서의 보전관리정책을 보고 그것이 마치 자연을 대하는 일반화된 정책인 양 말하는 것은 자칫하면 자연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기에 ‘자연 그대로 놔두는 것은 방치다’와 같은 표현은 그리 적절치 못하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알아야 할 사항은 보전과 보존의 이면에는 자연을 대하는 관점의 차이가 내재하고 있다는 점이다.
 
보전의 이면에는 자연을 인간에게 이용 가능한 자원으로 파악하는 공리주의적 관점 또는 인간중심적 관점이 있는 반면, 보존의 이면에는 자연에는 인간과 무관한 그 자체의 내재적 가치가 있음을 인정하는 자연중심적 관점이 있다.
 
가령 한라산의 노루 대책에 이러한 관점을 적용해보자. 노루의 개체수가 너무 많아 농작물에 대한 폐해가 크므로 인위적인 개체수 조절이 필요하다는 관점이 있을 수 있는 반면, 어떠한 인위적 개입에도 반대하며 자연 그대로 놓아두자는 입장도 있을 수 있다. 전자가 전형적인 인간중심적 관점이라면 후자는 자연중심적 관점에 해당한다. 어느 입장이 자연을 대하는 바람직한 태도일까? 분명한 것은 과도한 인간중심적 관점이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환경 파괴를 불러왔다는 점이다.
 
인간이 목적 그 자체이듯 경우에 따라선 자연환경 역시 그러한 가치가 있음을 인정할 때 환경문제를 좀 더 수월하게 해결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렇다면 자연에 대한 인간의 개입을 부추기는 지나친 인간중심주의적 표현은 더욱 신중하거나 자제되어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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