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
프레데리크 그로(이재형 옮김)|책세상|1만4000원


“오늘 아침 무슨 생각하며 학교에 왔니?”
“오늘 점심 뭐 먹을까 생각했어요.”
“그럼, 너는?”
“빨리 방학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오늘 아침 하늘 색깔은 어땠니?”, “억새가 피었던데 본 사람?”
“…….”
 
위 지문은 내가 <글쓰기> 수업을 시작할 때 학생들과 나눴던 대화의 일단이다. 뜬금없는 질문에 학생들은 얼떨떨하면서도 자신들의 생각을 주섬주섬 내뱉는다. “오늘 아침 하늘 색깔 어땠니?”라고 구체적으로 질문하면 학생들 대부분은 입을 닫고 만다. 그러면 나는 글쓰기의 중요성을 일깨우기 위해 오래전에 배웠던 방식대로 당송팔대가의 한 명인 송나라 사람 구양수(歐陽脩, 1007~1072)의 삼다(三多)를 꺼내든다. 즉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많이 읽고’[多讀], ‘많이 생각하고’[多商量], ‘많이 써야’[多作] 한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풍부한 경험도 중요하지만 철학적 사유가 필요하다. 그러나 주변을 돌아보면 ‘생각 없이’ 사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된다. 무한경쟁 시대에, 말초적 자극에 노출된 삶을 살다보면 자칫 자신을 잊어버릴 때가 많다. 그러다 문득 나는 누구지? 어떻게 사는 게 사람답게 사는 길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프랑스의 철학자 프레데리크 그로의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 은 걷기를 통해 사유하는 삶을 살아온, 영혼이 자유로운 사람들의 내면세계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책이다. ‘걷는 것은 스포츠가 아니다’로 시작된 이 책은 27꼭지의 다양한 걷기 체험을 녹여낸 글밭에서 철학적 사유를 배우게 한다. 고통의 순간에 오로지 걷고 걸었던 니체, 바람구두를 신은 천재시인 랭보, 몽상하는 고독한 산책자 루소, 자본주의의 아케이드를 거닌 벤야민, 칸트, 휄더린, 간디, 소로 등등. 그들은 걸으며 사유했고, 글을 썼다. 글을 읽는 동안에 우리들은 그들이 걸었던 길을 동행하며 삶을 성찰해 볼 수 있다. 걸을 때의 느낌, 감동, 기쁨, 즐거움, 충만함, 행복함, 슬픔, 고통, 고독……. 꽉 막힌 공간에서는 느낄 수 없는, 걸어본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선물이다.
 
“구제불능의 칩거자들도 매료시킬 놀라운 작은 책”(르몽드),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생각들을 펼쳐 보여주는 분류 불가능한 책”(엑스프레스)이라는 호평을 받은 책답게 읽다보면 문맥 하나하나에 빨려든다. 도서관에 파묻혀 쓴 책이 아니라 두 발로 걷고 사색하며 쓴 글이어서 더욱 그렇다. 허나, 이런 감흥도 직접 걸으면서 느끼는 감동의 무게에는 미치지 못한다.
 
나는 가끔 길을 걷는다. 새벽 기도를 끝내고 지인들과 동무 삼아 동 트기 전에 걷기도 하고, 주말에 친구들과 오름도 오르고, 숲길도 걷는다. 걸으면서 사람들과 대화를 섞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보폭이 달라 혼자 걷는 것이매 대개는 내 영혼과 은밀한 대화를 나눈다. 비온 뒤 훅 끼쳐오는 흙냄새에 현기증이 일기도 하고, 여명을 뚫고 솟아오르는 아침 해의 경이로움에 몸이 떨기도 한다. 신선한 공기에 심호흡을 하다 숨도 멈춰본다. 때로는 길동무가 되어주는 꽃과 나무에게 감사의 인사도 건넨다. 대자연 앞에서는 겸허함도 배울 수 있다. 산을 오를 때는 가슴이 쿵쿵거리고 고통이 엄습하기도 한다. 이 모두는 전혀 계획되고 계산된 행위가 아니다. 내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영혼의 소리이자 행위일 뿐이다.
 
우리는 책 사이에서만, 책을 읽어야만 비로소 사상으로 나아가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야외에서 특히 길 자체가 사색을 열어주는 고독한 산이나 바닷가에서 생각하고, 뛰어오르고, 산을 오르고, 춤추는 것이 우리의 습관이다.(니체의 『즐거운 학문』 중에서)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인간은 말을 하기 전에 우선 ‘보아야’ 한다”고 했다. 보기 위해서는 안에서 밖으로 나가 걸어야 한다. 걷는 목적은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건강을 위해, 경주를 위해, 명상을 위해, 철학적 사유를 위해, 글감을 얻기 위해. 때로는 우리들의 삶의 문제를 풀기 위해. 그럴 때 우리는 깊이 숙고하고 사유해야 한다. 그래야 통찰력이 생기고 혜안도 열려 내 안의 문제, 내 밖의 문제가 풀리는 법이다. 이제 집을 나설 차례다. 이른 아침, 길을 걸으며 삶도 성찰하고 사색하는 즐거움도 누려보시길! 일독을 권한다.

 

저작권자 © 제주대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