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영봉(국어국문학과 교수 국어문화원장)

말의 필요성이나 중요성을 이야기할 때 가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로 알려진 삼국유사 의 제48대 경문대왕 을 언급한다. 왕(경문왕)이 즉위한 후 갑자기 귀가 당나귀 귀처럼 자랐다. 왕후와 궁인들은 모두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오직 복두장 한 사람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평생토록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았다. 어느 날 복두장이 죽을 때가 되자 도림사 대숲 가운데로 들어가 사람이 없는 곳에서 대나무를 향하여 외쳤다. 우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吾君耳如驢耳). 그 후 바람이 불면 대숲에서 이런 소리가 났다. 우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

위는 삼국유사 의 일부분으로, 그 다음은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으면 대부분은 머뭇거리며 대답을 못한다. 삼국유사 에서는 왕이 그것을 싫어하여 대나무를 모두 베어 버리고 산수유나무를 심었는데 바람이 불면 이런 소리가 났다. 우리 임금님 귀는 길다(吾君耳長). 는 내용으로 이어진다.

여기서 주목하고자 하는 바는 당나귀 귀 라는 말이 듣기 싫은 임금이 대나무를 베어내어 황폐화시키지 않고 산수유나무로 대체 조림(代替造林)을 했다는 데도 있지만, 대숲과 산수유나무 숲에서 들리는 말의 내용이 다르다는 데에 있다. 곧 대숲에서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라는 말이 산수유나무 숲에서는 임금님 귀는 길다. 로 바뀐다는 사실이다.

생각해 보라. 당나귀 귀는 위로 쫑긋하게 솟아오른 귀다. 귀는 정수리를 지나쳐 그 위로 솟아올랐으니 그것을 보거나 그런 모습을 상상하는 사람들은 웃음을 참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임금은 그런 모습이나 장면을 원천적으로 없애기 위해서 복두장 곧, 모자 만드는 장인한테 귀를 가릴 수 있는 왕관을 부탁했다. 이런 사실을 발설하면 3족을 멸하리라 는 엄포도 놓았으리라. 복두장은 상황이 이리하였으니 평상시는 임금님 귀와 관련해서는 한 마디도 못하다가 죽을 때가 되어서야 대숲으로 가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라고 말했던 것이다.

반면, 산수유나무 숲에서 들리는 임금님 귀는 길다. 는 어떤가? 귀가 길다 는 것은 세로로 길어진 것이니, 대개는 귓불이 아래로 늘어진 귀다. 이런 귀는 인자함 복됨 을 느끼게 하는 귀라는 속설을 따른다면, 임금님 귀 는 추앙 받는 임금님의 자태가 될 터이니 굳이 가릴 필요가 없었지 않았을까.

이처럼 대숲에서의 말과 산수유나무 숲에서의 말이 다름은 곧 언어 환경과 말(언어)은 아주 밀접한 관계에 놓여 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우리의 언어 환경을 보자. 김밥천국, 고민정토익, 제대Pc Zone, CU, TORTONI, 9NINE, 김家네, YOGERPRESSO, 밥먹젠, TIAMO, 오니기리와 이규동, 진성반점, C&P Printing Shop, KITTEN, Tous Les Jours, GS25, Jin's TOEIC 토익어학원, Nabi, MOM's Touch, 오스뮤지엄, Trebean, MJ TOEIC. 이는 우리대학교 정문 앞 벚꽃 길에서 시내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면서 보는 간판들이다. 8개 건물에 22개의 간판이 내걸려 있는데, 이 가운데 68%인 15개 간판이 외래어 외국어를 쓰고 있다. 우리말 또는 한글 간판은 손가락 다섯 개면 헤아릴 정도다. 간판 언어를 보면서, 우리 국민들은 무조건 외래어나 외국어를 선호하고, 자극적이고 경박한 유행어를 쫒아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학문의 전당인 대학에서조차 女기서부터, 하우알유, 一起있는, 史랑 함께, 愛브리원 과 같이 국적 불명의 언어를 남발하는 게 현실이다. 또 인터넷 언어의 비속성과 폭력성은 심각하다. 작년 12월 바르고 고운 자랑스러운 우리말, 함께 가꾸어 나가자 는 강령으로 언어문화개선범국민연합을 출범시킨 점을 생각하며, 또다시 568돌 한글날을 맞아 우리말은 안녕한가? 를 묻고 싶다. 정녕 우리말은 안녕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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