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용인(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최근 제주에는 중국자본이 급속하게 유입되면서 난개발로 인한 자연환경 파괴, 토지 잠식과 투기, 개발이익 역외 유출, 제주가치 훼손 등의 우려가 커져 가고 있다. 제주가 중국자본 등 거대 외지자본과 맞설 수 있는 제주만의 경쟁력을 갖춰 도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켜 나갈 방법은 없을까.

이와 관련해 세계적인 협동조합 복합체인 몬드라곤을 소개하고자 한다. 몬드라곤의 경험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몬드라곤은 스페인 내 바스크 지역의 산악도시인 몬드라곤의 이름을 딴 협동조합 복합체이다. 바스크인들은 스페인 문화와는 독자적인 문화를 유지하며 자치권 획득을 위한 투쟁을 지속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1930년대 스페인내전 때 자치권을 약속한 공화국 정부 편에 섰다가 수만 명이 총살 등 죽임을 당한 아픈 경험도 있다. 피카소의 걸작 게로니카 는 당시 독일군 공습으로 폐허가 된 바스크의 옛 수도 게로니카의 참상을 고발한 작품이다.

몬드라곤은 바스크 지역의 이러한 지리적 문화적 역사적 특성에 호세 마리아 신부라는 천재적인 리더가 결합되면서 만들어진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호세 마리아 신부가 1941년 몬드라곤 지역에 주임 신부로 부임했을 때 주민들은 극심한 빈곤과 실업으로 고통을 받고 있었고 스스로를 피정복민이라고 생각하며 패배의식에 젖어 있었다. 호세 마리아 신부는 주민들의 가난과 패배의식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교육이 필요하다고 보고 1943년 기술전문학교를 설립했다. 이렇게 설립된 기술전문학교는 훗날몬드라곤을 구성하는 협동조합들의 설립과 발전에 기반이 됐다.

기술전문학교 졸업생 5명이 주축이 되어 1956년 노동자생산협동조합인 울고(ULGOR)를 설립했다. 이로써 몬드라곤의 첫 번째 협동조합이 탄생한 것이다. 울고는 초기에는 기술문제 등으로 고전을 면치 못했으나 조합원들의 민주적 경영과 창조적 노력을 바탕으로 비약적으로 성장하여 60년대 초반에 이미 스페인 내 100대 기업 중 하나가 됐다.

협동조합의 가장 큰 맹점은 자본 확보가 어렵다는 것이다. 호세 마리아 신부는 이를 극복하고자 1959년 협동조합은행인 노동인민금고를 설립했다. 노동인민금고는 협동조합을 설립하는데 필요한 자금을 공급하고 기술과 경영 노하우를 제공함으로써 몬드라곤은 비약적인 발전을 할 수 있었다.

울고의 비약적 성장과 노동인민금고의 지원 등에 힘입어 아라사테, 코프레시, 에델란 등 다른 노동자 생산협동조합들도 울고와 밀접한 관련을 맺기 시작 하면서 몬드라곤이 형성됐다.

몬드라곤은 1980년대 중반 경기침체로 고전을 겪기는 했으나 그 이후 고속성장을 지속하여 2010년 기준으로 금융, 유통, 제조업, 지식 등 4개 분야에서 111개의 협동조합, 120개의 자회사 등 총 255개의 사업체들을 거느리며, 약 8만4000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매출이 약 23조원에 달하는 거대그룹으로 성장한 것이다.

몬드라곤의 최고 관심사는 이윤 창출이 아니라 고용의 유지 및 확대이다. 그런 까닭에 몬드라곤은 조합원 해고를 하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어떤 협동 조합이 경영 악화로 인원을 줄여야 하는 경우에 종업원을 해고하지 않고 재교육을 통해 고용여력이 있는 다른 협동조합으로 배치한다. 경기침체 시에도 이러한 무해고 방침을 이어가고 있다. 해고의 위협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나라 직장인들에게는 꿈의 직장이라 할 수 있다.

스페인과는 다른 문화를 가진 바스크 지역의 특성, 1930년대 스페인 내전 때의 비극 등의 점은 묘하게도 제주와 닮은꼴임을 느끼게 한다. 제주 역시 한반도 본토와는 지리적 역사적 문화적으로 많은 차이가 있고, 좌우대립의 혼란 속에서 수많은 도민이 학살당했던 4 3의 아픔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제주에서 몬드라곤의 기적이 일어나 외지자본 주도가 아니라 도민 주체의 경제발전을 이룰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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