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는 전투에서 이기려면 꽹과리와 북과 깃발을 사용해야 한다고 했다. 스티브 잡스식(式) 프레젠테이션 십계명이라는 것도 있다. 모두 눈과 귀를 집중시켜야 자신의 뜻을 잘 전달할 수 있다는 얘기다. 손자는 전투에서 이기기 위한 수단이었고 잡스는 장사 수단으로 이용했다. 대학도 전투나 장사와 크게 다를게 없다. 속된 표현이지만 등록금을 받아 지식을 전달하는 것은 잡스와 같고 졸업한 후에 지식을 바탕으로 취업이라는 전투에서 이길 수 있도록 지식을 전달하는 것은 손자와 같기 때문이다.

손자는 병사들의 귀를 집중시키기 위해 꽹과리와 북을 사용했다. 눈을 집중시키기 위해서는 깃발을 사용했다. 전투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의사소통이 첫째이기 때문이다. 마오쩌뚱은 손자병법을 본받아 진격을 할 때는 징과 꽹과리를 치고 피리를 불면서 인해 전술을 폈다고 한다.

잡스의 제품 소개는 다음 화면을 기다리게 한다.한번만 보면 무슨 뜻인지 알게 한다. 뭔가 새로운 것을 느끼게 한다. 한번만 듣거나 보면 설득 당하게 한다.

2001년 iPod 신제품을 발표할 때 잡스는 리바이스 청바지 오른쪽 주머니 위에 있는 동전주머니에서 꺼내들었다. 150여 년 전인 서부개척 시대 때 이미 iPod을 위한 주머니가 있었다는 의미였다. 그 이후부터는 동전주머니가 아니고 iPod 주머니라고 부른다. MacBook Air 노트북을 개발했을 때도 노란 서류봉투에서 꺼내면서 소개했다. 서류봉투에 들어갈 만큼 작고 가볍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잡스의 프레젠테이션은 화제를 제시하고 숫자를 의미 있게 만들고 시각적인 슬라이드를 보이고 제품의 이점을 확실하게 홍보하고 발표자의 열정으로 청중이 잊지 못할 순간을 만들어준다.

아이디어가 좋고 내용이 뛰어나도 청중에게 전달하는 방법을 모르면 노력한 것만큼 성과가 없다. 듣는 사람은 야구처럼 준비동작을 하고 공을 던지는 것처럼 느리게 말하는 것을 좋아하고 말하는 사람은 탁구처럼 정신없이 쏟아 붓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좋은 내용도 감정, 원근, 강조, 동격, 간격 표현의 원리를 알아야 잘 전달된다. 감정표현은 가수에게는 필수다. 그래야 듣는 사람의 감성을 건드린다. 강조와 원근표현은 표를 얻기 위해 악을 쓰며 유세하는 정치인에게 필요하다. 그래야 듣는 유권자의 가슴을 뛰게 한다. 히틀러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연설을 들으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것도 그 이유다. 시를 읽는 사람이라면 동격 표현의 묘미를 알아야 한다.

그래야 글자 하나하나의 의미가 가슴에 와 닿는다. 자연과학 교수라면 강조와 간격표현이 중요할 것이다. 중요한 부분의 지식을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문과학 교수는 강조와 간격 표현보다 또 다른 표현방법이 좋을 것이다. 표현에는 다섯 가지가 있지만 학문종류에 따라 그 중요도가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여러 형태의 교수가 있다고 얘기한다. 진돗개 교수 를 싫어한다. 교재와 백묵 하나로 묵묵히 수업진도만 나가기 때문이다. 뷔페교수 도 싫어한다. 똑 같은 그릇에 재료와 모양이 다른 음식이 잔뜩 진열해 있는 뷔페를 먹는 것처럼 먹고 나면 쉽게질리고 소화도 안 되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듣고 외우고 시험보고 잊어버리는 강의를 좋아할 리는 없다. 교수들도 학생일 때 제일 싫어하는 강의였기 때문이다.

잡스는 웅변가가 아니다. 장사꾼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마치 학자처럼 차분하고 명확하게 신제품의 장점과 의미를 전달한다. 목소리도 크지 않다. 감정이 있는 것 같지도 않다. 얌전한 제스처와 시각적 효과와 명확한 간격표현과 잊지 못할 순간을 만드는 프레젠테이션의 묘미 때문에 한 번의 신제품 소개가 동영상으로 전 세계 소비자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2500년 전에 손자는 병사의 귀와 눈을 열어두게 하고 깃발을 보게 해야 모든 병사가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학 강의도 마찬가지이다. 눈과 귀를 열게 하고머리를 즐겁게 하는 강의여야 한다. 그래야 학생이 가득 찬 강의실에 활기가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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