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기석(영어영문학과 교수)

아리랑의 노랫소리도 멀리 어머님 나라를 그리워 하며 부서진 꽃, 꽃… . 이것은 조선인 가미카제 11명을 기리며 지란특공평화회관 입구에 세워진 돌비석의 글귀이다.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조선인 출신 탁 경현 소위도 큐슈의 최남단 가고시마현 미나미규슈시의 바로 이 자리에서 1945년 5월 11일 히노마루(일장기) 머리띠를 질끈 매고 이별주 한 잔을 마시면서 천황폐하 만세 를 외치고 가미카제 특공대로서 제로센 전투기에 올라탔다고 한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가미카제란 태평양 전쟁 말기(1944. 10~1945. 6) 제로센 전투기에 폭탄을 싣고 적 함대에 돌진하는 자살특공대로서 가고시마 지란비행장에서 출격한 특공대원 1,036명 전원이 오키나와 상공에서 봄철의 사쿠라 꽃 떨어지듯 공중 분해되어 사라졌다. 그야말로 일본인들만이 가능한 인류역사상 전대미문의 전술로서, 이기고 돌아오라 가 아니라 죽어서 돌아오라 는 지극히 비인도적이며 반인륜적인 행위로 역사의 한 페이지에 기록될 것이다.

일본의 근대사를 일견해볼 때, 일본은 1894년 청일전쟁을 시작으로 해서 1904년 러일전쟁, 1931년 만주사변, 1937년 중일전쟁, 1941~45의 태평양전쟁에 이르기까지 50여 년 동안 전쟁으로 점철되어 왔음을 본다. 제국주의와 군국주의로 승승장구하다가 패색이 짙은 태평양전쟁의 마지막 순간에 고육지책으로 내민 카드가 바로 가미카제 특공대가 아니었을까 여겨진다. 그런데 바로 이 가미카제 특공대들의 진정을 후세에 똑바로 전하며 세계 항구의 평화에 기여 하도록 한 곳 으로서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 지금의 지란특공평화회관이란다. 말이 회관이지 사실상 박물관이다. 이곳에는 이 가미카제 특공대원들 전원의 사진과 그들이 출격 직전 썼던 유언 및 일기를 비롯한 수많은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예를 들면 출격 전야의 팔씨름 , 출격 20분 전의 식사 , 이별의 술잔 , 일기장에 유서를 쓰는 대원들 , 출격 전 강아지와 노는 특공대 소년 등등의 사진들이 특별히 눈에 띈다. 이들 사진의 제목에서 이미 암시되어 있지만, 사진 속의 특공대원들은 모두가 여유만만하고 천진스럽기까지 하고, 만면에 가득 미소를 띠고 있는 점이 두드러진다. 또한 전시된 특공대원들의 유언장을 보면 한결같이 천황폐하 만세 가 살아서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다. 따라서 이곳은 지나간 한 시대로서의 역사를 보여주는 박물관이라기보다는 지금 이 순간에도 텐노헤이까 사요나라 반자이 가 서려 있는 현재진행형의 박물관이며 더 나아가서는 주변국을 침략했던 군국주의의 망령을 미래로까지 비추고 있는 박물관으로 보인다.

또한 이 특공평화회관을 상징하는 ‘통곡 맹세의 비’에 새겨져 있는 것으로 이 진혼 위령과 통곡 속에서 우리의 국가를 초월하고 민족을 초월해서 세계 모든 인류의 영원한 평화를 여기에 맹세한다 라는 메시지가 왠지 무심코 스쳐지지 않는 것이 왜 그럴까. 가미카제라는 말 자체가 평화의 개념과는 아무리 해봐도 양립되지 않는다. 세계 인류의 영원한 평화는 차치하고 인간성의 본질을 인정하지 않는 가미카제는 특공대원 개인의 평화도 담보할 수 없는 속성이 아니던가. 이 점이 바로 특공 과 평화 의 어색한 조합으로 만들어진 지란특공평화회관의 어쩔 수 없는 한계인 것 같다. 70여 년 전 겨우 스무 살 안팎의 젊은 청년들의 생명을 천황의 이름으로 바치도록 한 시스템이 미화되거나 찬미되는 한, 이는 근본적으로 휴머니즘에 대한 도전으로서 결코 평화를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조선인 탁경현 소위가 출격 전날 밤 도리하마 부인 모녀와 저녁식사를 하며 불렀다는 아리랑 이 차라리 더 솔직한 가미카제의 심경이 아니었을까. 출격 전날 밤 죽음의 공포 속에서 가미카제특공대원들의 뇌리에는 천황 대신에 실제로는 고향 땅의 부모님과 약혼한 혜숙이, 여동생 노부꼬 등등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았을까. 휴머니티 없는 평화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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