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용 진

제주향토음식

보존연구원장

 

흔히들 향토음식을 지역별로 전해오는 전통적인 음식 으로 정의하곤 한다. 그러나 그러한 단순한 정의만으로 향토음식을 단정 지을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복잡하고 다양한 동서양의 생활양식이 뒤죽박죽으로 뒤섞여 이미 전통이란 개념이 생활 자체에서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며 생활양식만큼이나 다

양해진 입맛의 변화에 따라 먹을거리 역시 다양해지고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팽배하여 전통적인 것들에 대한 무관심이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 지역사회의 생활문화를 흔들어 놓았기 때문에 이미 제주의 향토음식에서 전통성이란 찾아 볼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또한 제주 향토음식은 관광 상품으로 상업화 되면서 더욱 그 전통성을 상실하게 되었는데 이는 관광산업이 자리 잡는 시기였던 7~80년대 외식산업계에서는 제주향토음식의 투박함을 그자체로 상품화 하지 못하고 외지인들의 눈과 입에 맞추어 영호남의 자극적인 양념문화와 혼합된 새로운 형태의 향토음식으로 탈바꿈 했으며 제주 토박이들조차 이 변형된 향토음식을 전통적인 제주의 음식문화로 착각을 일으키는 상황이다.

더구나 생활수준의 향상과 식재료 생산규모의 대량화, 유통구조의 변화 등으로 인하여 과거 우리네 식탁에 전통적으로 오르내리던 식재료들이 많은 변화를 일으킨 것도 향토음식의 변화에 한몫 거든 원인이라 할 수 있다. 과거에는 집안 식구 중 누군가의 수고를 필요로 했던 부분이 사서 먹는 편리함으로 둔갑하면서 획일화되고 인위적으로 처리된 식재료들이 더 이상 옛 맛을 지켜낼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전통성이 결여된 향토음식을 향토음식이라 할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을 던지면 대답은 양분화 된다. 대부분의 소비자로 분류되는 관광객이나 도민들은 향토음식이 아니라고 답하는데 반하여 외식산업, 특히 향토음식점을 운영하거나 관련이 있는 사람들은 향토음식이라 말한다. 소비자는 전통성을 향토음식의 조건으로 인식하는 반면 관련업계 종사자들은 오히려 전통성을 향토음식을 규정하는 조건과 상관없다는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다. 실제로 관광업계와 외식산업계, 관련 관청 등에서는 향토음식의 범위를 결정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기준을 제주산 식재료 사용의 여부라고 잠정 합의 하였다고 전해진다. 즉, 제주산 재료를 주재료로 사용하는 모든 음식이 향토음식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합의에 따라 현재 제주도 전역에서 판매되고 있는 향토음식은 소비자들의 기준과 달리 향토음식이라 불려 진다. 문제는 이러한 전통성이 결여된 향토음식을 소비자들은 아무런 의심 없이 전통음식이라 여기고 먹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음식문화를 구전으로 퍼뜨리고 특히 인터넷과 SNS 등 획기적인 매체를 이용하여 지극히 짧은 시간에 전 세계에 제주의 전통음식 문화에 대한 검증받지 않은 정보를 퍼뜨리게 되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를 예로 든다면 고등어조림, 갈치조림 등 생선 조림 을 예로 들 수 있겠는데 이 요리들은 한때 제주의 대표적인 향토음식이었으며 현재도 많은 향토음식점의 대표메뉴이기도 하다.

일단 현재 판매되고 있는 갈치조림이나고등어조림을 보면 매콤한 고춧가루 양념이 듬뿍 버무려져서 빨간 색이 매우 선명한 일품 요리로 현재의 조리방법이 매우 전통적인 것으로 인식되고 있고 소비자들과 관련 종사자들조차 전통적인 음식으로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식에서조차 고춧가루가 일반화 된 것이 불과 2~30년에 지나지 않았음을 생각해 볼 때 빨간색 양념이 두드러진 생선 조림이 전통성을 갖는다는 것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제주의 전통적인 음식문화에서 고춧가루의 쓰임은 매우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현재와 같은 생선 조림은 제주의 전통음식이 아니라 하겠다. 제주에서 고춧가루는 매우 귀한 식재료였다. 고추는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시기가 선조임금 때로 알려져 있으며 처음에는 왜 개자 라 불렸는데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일본에서 도입되었다. 일본에서 도입된 채소들은 일본과 재배환경이 가장 비슷한 제주에서 재배에 성공하고 자리 잡는 경우가 많은데 고구마도 그런 케이스라 하겠다. 고추의 경우도 제주의 우영밭 어디서나 쉽게 재배되었다는 것은 중년의 제주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고춧가루는 흔하지 않았다. 고추농사는 일반화 되었지만 고춧가루는 별로 없었다는 것이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풋고추는 많았지만 빨간 고추를 수확하지는 못했다는 것인데 그 이

유는 제주지역이 전국에서 일조량이 가장 높은 지역이라서 고추의 당도가 높아 항상 병충해의 피해를 입어 붉은색으로 익은 고추를 별로 수확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극히 소량의 붉은 고추를 수확한다 해도 가을볕에 말려서 고춧가루를 만들어 놓으면 제주지역이 연평균 습도가 가장 높은 지역이다 보니 곰팡이가 생성되어 고춧가루를 쓸 수 없게 되기 때문에 고춧가루를 대량으로 보관하지 못하고 말린 고추를 고팡(창고) 에 널어 보관했다가 필요할 때 돌확(돌절구) 에 조금씩 갈아서 사용한 정도이

다. 그래서 제주의 전통적인 김치에도 고춧가루를 많이 사용하지 못했으며 고추장도 존재하지 않았고 특히 여름철 별미로 만들어 먹었던 물회에도 고춧가루를 사용하지 못하고 풋고추를 썰어 넣은 것이 전부라 하겠다. 이러한 농업환경의 영향으로 제주의 음식에는 고춧가루를 많이 사용하지 못했고 심지어 생선조림의 경우 고춧가루 양념이 음식에 들어간 것을 티내기 위해 항상 마지막에 솔솔 뿌리는 정도이고 이 조차도 흘러내리지 않기 위해 기름을 살짝 뿌려놓고 그 위에 고춧가루를 뿌리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현재 제주의 향토음식점에서 판매되고 있는 생선 조림과 물회 등 고춧가루 범벅이 된 음식들을 향토음식이라 할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한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정확한 대답은 향토음식이지만 전통음식은 아니다. 좀더 정확한 대답은 전통성이 결여된 향토음식 이라는 것이다. 혹자들은 향토음식을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살리기 위하여 시대적인 상황을 따르는 것이므로 전통성이 결여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또한 아무리 향토음식이라 할지라도 현대인들이 먹는 음식이므로 현대인들의 입맛에 맞추는 것은 당연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또한 그러한 주장이 아주 틀린 것이라 할 수도 없으며 일리 있는 주장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음식도 분명 문화의 한 장르임을 고려할 때 제주음식문화가 잘못 알려지고 있는 현실을 바로잡아야할 필요가 있다는 점 또한 주지할만한 사실이다. 왜냐하면 음식이란 의생활, 주생활과 함께 생활문화를 이루는 근간이며 시대적인 상황과 자연 조건, 생활 환경 등을 망라한 모든 영향을 한데 모아놓은 삶의 역사이며 동시에 수단이고 때론 목적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과정들이 생략된 채 지역의 향토성과 생활역사가 담기는 향토음식이 단지 맛으로만 평가받는 획일화된 상품으로 마치 통조림처럼 취급받아서는 안 되며 당당히 하나의 문화콘텐츠로서 격상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현재의 향토음식문화가 있기까지 어떠한 변천과정을 거쳐 왔는지에 대한 고증과 자료수집, 정리를 통하여 원형을 복원하고 이를 홍보함으로써 제주 향토 음식문화의 뿌리를 굳건히 다짐과 동시에 현재 상품화 된 향토음식들도 새로운 전통을 부여받게 될 것이다. 즉, 전통음식을 복원하고 보존함으로써 새로이 개발된 향토음식들이 개발 근거를 확보하게 되고 문화적 가치를 동반 상승시킬 수 있을 것이다. 굵고 튼튼한 뿌리를 가진 나무는 쉽게 죽지 않는다. 오래되고 확실한 전통과 근거를 가진 향토음식 문화 또한 그 가치를 인정 받기 위해서는 원류를 잘 살려 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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