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 / 임례 케르테스 지음

▲ 운명

홀로코스트 생존 작가였던 프리모 레비(1919~1987)는 홀로코스트 문학의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는 작품인 「이것이 인간인가」를 남겼지만 모순되게도 홀로코스트의 재현 불가능성을 주장하였다. 레비의 말에 의하면 ‘생존자들은 진실 되게 증언하지 않는다. 생존자들은 가짜 증인들이다. 역사의 증인들은 가스실에서 사라져간 자들이어야 한다.’ 증언의 진실성 여부를 떠나 전대미문의 이 악몽에 대한 재현 불가능성은 자주 거론되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홀로코스트 생존 작가들은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다.
 
대표적인 경우가 헝가리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임례케르테스(1929~)이다. 목재상을 하던 유대인 아버지와 계모 사이에서 성장한 케르테스는 학창시절인 1944년 15세의 나이로 강제수용소에 끌려갔다가 살아남은 나치 홀로코스트 생존자이다.
 
그는 다행스럽게도 아우슈비츠에 수감된 지 나흘 만에 부헨발트 수용소로 이송되었다가 그 곳에서 다시 짜이츠 수용소로 이송되었다. 짜이츠 수용소에서 1년간 지내다 전쟁이 끝나자 자유의 몸이 되어 고향 부다페스트로 돌아왔다.
 
지옥의 문턱까지 갔다가 살아 돌아온 이 악몽을 케르테스는 자전소설 「운명」에서 생생하게 전달해주고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 죄르지 쾨베시 역시 부다페스트에 살고 있는 15세의 유대계 헝가리 소년이다. 아버지가 강제수용소로 끌려간 후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그 역시 출근길에 영문도 모른 채 아우슈비츠로 끌려간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서 운이 좋게 나흘 째 되는 날 부헨발트 수용소로 이송되었다가 거기서 다시 나흘 뒤에 짜이츠 수용소로 이송된다. 이곳에서 병이 들어 병원으로 후송되었다가 다시 부헨발트 수용소 병동으로 이송되어 생활하던 중 전쟁이 끝나 가까스로 살아남는다. 즉, 이 소설은 죄르지가 강제수용소로 끌려가 생활하다 1년 후 다시 부다페스트로 돌아올 때까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인류 역사상 수많은 학살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히틀러 정권이 자행한 유대인 대학살에 대해서만 홀로코스트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원래 홀로코스트란 구약성서 시대 유대인들이 짐승을 통째로 구워 하느님에게 바친 제사인 번제를 의미하였다. 그 후 종교적인 의미를 벗어나 보통명사로 사용되면서 이 용어는 일반적으로 대량학살을 지칭하였다.
 
그런데 1960년대에 접어들어 엘리 위젤을 필두로 한 우파 유대 민족주의자들이 이 용어를 쓰면서 유대인 대학살을 지칭하는 용어로 굳어져 버린 것이다.
 
아도르노는 이미 1951년에 “아우슈비츠 이후 시를 쓴다는 것은 야만적이다”라고 선언함으로써 나치가 저지른 전대미문의 만행을 예술로 재현하는 것이 비윤리적임을 역설하였다. 그러나 200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엘프리데 옐리넥(1949~)은 아도르노의 선언에 빗대어 아우슈비츠 이후 아우슈비츠를 언급하지 않는 문학은 문학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199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귄터 그라스(1927~)는 아우슈비츠에서 자행된 만행은 글쓰기를 통해서만 극복될 수 있다고 역설하고 있다. 케르테스 역시 노벨상 수상 연설문에서 홀로코스트를 그리지 않은 작품은 진정한 예술작품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케르테스에게 중요한 것은 홀로코스트의 “책임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사건의 본질을 분명하게 파악하고 판단하는 것”이다. 여타의 홀로코스트 문학과 마찬가지로 「운명」 역시 나치 홀로코스트의 참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운명」은 참상에 대한 고발에 중점을 두고 있기 보다는 어떻게 해서 이 재앙을 이기고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에 대해 밝히는 증언인 동시에 홀로코스트의 참상에 대해 침묵으로 수수방관했던 인류는 과연 홀로코스트에 대해 아무런 책임이 없었다고 할 수 있는지 뒤돌아보게 한다.
 
20세기 후반 이후 홀로코스트를 다룬 작품이나 영화는 수없이 많다. 2001년도에 발생한 911테러가 만들어낸 가공할 공포와 21세기 초부터 유럽을 배회한 신나치라는 망령 때문인지 홀로코스트 문화는 21세기를 접어들자마자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이런 분위기와 맞물려 2002년 칸 영화제에서는 유대인 피아니스트의 삶을 다룬 〈피아니스트〉가 그랑프리를 수상하고, 스웨덴 한림원은 케르테스에게 노벨문학상을 수여하였다.
 
“아우슈비츠로부터 온 정신의 매개체”임을 자처하는 케르테스는 유대인 대학살이라고 하는 단 하나의 주제에 천착하고 있는 작가이다. 그가 이처럼 홀로코스트에 천착하는 이유를 노벨상 수상 연설문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내 작품은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일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아우슈비츠가 남긴 상처를 떠올릴 때마다, 나는 오늘의 살아 넘치는 생명력과 창조력에 대해 생각하는 일을 그만둡니다. 그러므로 아우슈비츠를 생각할 때, 나는 역설적이게도 과거가 아니라 미래에 대해 곰곰이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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