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 초대석 <15 >‘트멍공방’ 오은순 대표

매년 아름다운 제주로 발길을 돌리는 사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국내뿐만이 아닌 해외 관광객들의 방문도 끊이지 않아 제주는 떠오르는 관광도시로 급부상하고 있다. 이들이 제주에서 가장 많이 찾는 장소는 어딜까. 아마 비운의 작가 ‘이중섭’을 기억하기 위한 이중섭거리가 대표 관광지 중 하나일 것이다. 이중섭 작품을 전시한 미술관 앞. 척 보기에도 오래되고 낡은 집이 하나 눈에 띈다. 이중섭 거리에서 7년 째 가지각색의 예술 작품을 창조해온 ‘트멍 공방’ 대표 오은순(58)씨가 그 주인공이다.  집 문 앞에 걸려있는 피노키오 인형을 유심히 지켜보는 그녀에게 조심히 말을 걸었다.
 

▲ 오은순 대표가 손수만든 팔찌를 ‘트멍 공방’을 방문한 관광객에게 직접 묶어 주고 있다.


◇공예와의 운명적인 만남
 
포항에서 태어난 그녀는 부산에 위치한 대학에서 국악을 전공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전통무용을 본격적으로 배웠던 그녀는 자타가 인정한 손꼽힌 인재였다. 그러다 문득,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부터 재료를 가리지 않고 뭐든 만들었어요. 유일한 취미였죠. 놀이터에서도 놀다가 돌이 보이면 만지작거리며 무언가를 쌓곤 했어요. 그림 그리는 것도 너무 좋아했어요. 풍경화를 그릴 때도 정말 세세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았어요. 곰곰이 고민해본 결과, 공예가 내 유일한 길이라고 판단을 내렸죠.”
 
그 때부터 그녀는 나무에 글씨를 새기는 서각과 목공예를 시작했다. 무려 10년이나 공예활동을 지속하면서, 그녀는 가끔 잠을 자면서도 작품을 구상하는 자신에게 혀를 찬다고 밝혔다.
 
“담배를 즐긴 사람들이 갑자기 끊을 때, 금단현상이 온다고 하잖아요. 저도 비슷했어요. 내 손아귀에 무언가가 쥐어지지 않으면 경련이 일어났어요. 그 만큼 공예에 열정을 쏟았죠.”

◇제주와 도자기의 인연
 
“벌써 제주에 내려온 지 7년이나 됐네요. 어쩌다 제주에 내려왔냐고 가끔 주변사람들이 물어봐요. 대단한 답변을 기대한 채 말이죠. 사실 별거 없어요. 남편이 제주도 사람이에요.”
 
처음 이중섭 거리에 둥지를 틀었을 때, 그녀는 전통찻집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거리 내 관광객들의 발길이 닿기 힘든 구석진 자리 덕택에 큰 명성을 얻긴 어려웠다. 그녀의 남편은 서각 명장으로 제주대학교 평생교육원에 출강을 하는 유능한 장인이었다.
 
“남편이 자주 무시를 했어요. 같이 서각을 배웠으나 실력부터 차이가 많이 났기 때문이죠. 또 예술인이라면 공감할 파(派)가 달라 더 심한 지적을 받았죠.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서각을 하고 있는 저에게 칼을 다 빼앗더라구요. 그러면서 ‘서각은 하지 말라, 차라리 도자기를 해라’라고 말했죠.”
 
남편의 권유 아닌 권유로 인해 도자기와 접했던 그녀는 새로운 세계를 맞이했다.
 
“공예가 제 인생을 송두리 변화시켰다면, 도자기는 제가 더 예술에 미치게 한 근원이에요. 너무 너무 재밌었어요. 밤낮 가리지 않고 도자기를 빚어도 지치지 않았어요. 특히  남들과 다른 도자기들을 만들고 싶었죠. 욕심을 내 색다른 모양을 상상하고 현실에 옮겼어요. 우역곡절 끝에 내가 빚은 도자기들이 관광객들의 손에 실려 있을 때, 아직도 실감이 안나요.”
 
그녀는 도자기뿐만이 아닌 솟대, 인형, 악세사리 등 가지각색의 예술품을 만든다. 틈날 때 마다 잠시 접어뒀던 목공예 작품도 창조한다. 한마디로 예술을 종합적으로 다루는 팔방미인인 것이다.
 
“항상 도자기를 빚으면서 드는 생각은 뭐든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이었어요. 미치지 않으면 안돼요. 예술만이 아니에요. 자신의 분야에서 죽도록 파고들어야 남한테 인정을 받을 수 있죠. 이 곳 이중섭 거리에서도, 다양한 예술인들이 활동하고 있죠. 작은 성공을 거둔 아마추어 작가들도 많고 어려운 생활고 탓에 끼니조차 거르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러나 가끔 그들과 함께 밥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면 예술에 대한 열정이 느껴져요. 그 자체가 매우 아름답죠.”

◇예술인의 노력에 비례하는 작품 가치
 
▲ ‘트멍 공방’ 내 위치한 그녀의 작업실에 가지각색의 재료와 함께 세월을 보낸 도구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비싼 비행기 값을 지불하고 관광객들이 제주에 내려와 이중섭 거리에 있는 내 공방을 방문할 때, 가장 보람차고 가슴이 뛰죠. 내가 손수 만든 작품들이 다른 사람에게 보여지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몰라요. 금상첨화로 칭찬까지 해준다면 그날 하루는 성공했다고 볼 수 있죠.”
 
그녀는 공방에 전시된 대부분의 작품들을 만들곤 하지만, 육지에 나가서 작품들을 공수해오기도 한다. 잠을 설쳐가며 예술품이 판매되는 매장에서 발품을 팔 때 색다른 보람도 느낀다는 그녀. 이러한 활동들이 예술에 대한 안목도 키워준다고 말했다.
 
“작품은 재밌어야 해요. 스토리텔링이 돼야 하죠.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작품에 내재돼 있다면 그것이 바로 최고의 예술품인 거죠. 제가 아무리 공예를 공부했어도 저보다 뛰어난 사람들, 작품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고생을 피할 순 없어요.”
 
자신을 낮추어 겸손을 표하던 그녀는 좋은 작품들을 얻기 위한 노력만큼 재료를 구하는데도 심혈을 기울인다고 한다. 목공예를 위해 목재를 구매할 때, 그녀는 작은 트럭에 목재를 가득 담아 몇백만원씩 금액을 지불한다고 밝혔다.
 
“제주도 나무가 정말 좋아요. 바람을 넘어선 돌풍이 불기 때문에, 나무들이 단련돼 있죠. 일반적인 톱으로 자르면 날이 나가요. 이렇게 최고의 재료로 작품들을 만들 수 있다면 이보다 행복한 활동은 없죠. 쌀은 안사도 나무들은 꼭 산답니다. 하하.”

◇예술계의 팔방미인 ‘그녀의 꿈’
 
“제주도는 정말 아름다운 섬이에요. 저희 집도 산방산 근처에 지었는데 얼마나 아름다운지 몰라요. 나만의 보금자리에서 남편 환갑을 기념해 작은 전시회를 개최하는 것이 제 꿈이에요. 또 제가 주도하는 ‘응가비’의 이름을 가진 동아리가 있어요. 도자기를 전시하는 것이 주활동이죠. 전부 미숙한 아마추어 작가들이지만, 열심히 하는 모습들이 얼마나 예쁜지 몰라요. 응가비 모두가 성공했으면 좋겠어요.”
 
문화콘텐츠가 살아야 관광지도 발전한다는 그녀. 인생의 흐름에 따라 꿈, 전공도 바뀐 그녀는 자신의 도자기가 마지막 과제라고 선언하지는 않는다. 조형물을 만드는 것과 같이 제주의 문화를 창조하는 그녀는 자신의 꿈을 정성스럽게 빚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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