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언저리에 쓰던 일기장을 들춰봤다. 스물다섯엔 어떤 어른(스물다섯 정도면 어른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이 되어 있을지 상상하며 쓴 대목이 눈에 띄었다. 고전과 명작을 독파하고 재즈 레이블을 줄줄 외우고 있으며 세계 지도에 가본 곳을 동그라미 치는 낙으로 사는 우아한 신여성이었다. 아직도 독서 목록은 줄지 않았고 듣지 못한 앨범이 쌓여 있으며 여행은 번번이 순위에서 밀려난 채 스물하고도 일곱 살이 되었다. ‘오늘만’ ‘이번 주만’ ‘이번 기회만’ 겨우 때우며 지내기에 급급한 4년차 직장인으로 살고 있다.
 
그럼에도 주눅 들지 않는 건 우연히 맞닥뜨린 지금의 일상이 마음에 들어서다. 이제와 고백하자면 언론홍보를 전공으로 고르면서도 ‘기자’가 될 줄은 상상도 해본 적이 없다. 장차 내가 어떤 직업을 가지고 밥벌이를 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던 철부지였다. 학교에 다니던 4년 동안은 내내 방황과 표류의 시기였다. 하고 싶은 일도 뚜렷하지 않았고 되고 싶은 것도 마땅히 없었다. 장래희망을 물으면 머뭇대기 일쑤. 그저 호기심에 촉이 서서 덥석 지역 언론사에 입사하고 만 것이 오늘에 이르렀다.
 
그렇게 4년이 지났다. 따져보면 대학교를 한 번 더 다닌 셈이다. 사실이 그렇다. ‘학교 다닌다고 생각하자’ 입사하면서 스스로에게 다짐했던 바다. 허우적댈 때마다 되뇌던 ‘4년차’에 드디어 접어들다니. 이대로 졸업을 하는 것도, 누가 알아줘서 학위를 받는 것도 아닌데 감개무량이 남다르다. 동문칼럼 청탁을 받아든 이유도 이를 기념하기 위한 엉큼한 속셈이 숨겨져 있다.
 
돌이켜보니 우연이 아니라 운명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꿈은 아니었지만 평소 그려오던 가치관과 잘 맞아떨어졌다. 내 길은 아니라고 여겼는데 걷고 뛰고 구르다보니 깨닫게 되는 매력도 쏠쏠했다. 운이 좋아서일 수도 있지만 뭐든 멈추지 않으려던 노력이 컸다. 사회의 다양한 영역과 접점을 찾으려고 바동댔던 것이 큰 밑천이 되었다. 학생회 활동, 아르바이트와 공모전, 프로젝트 기획 등 다양한 시도가 도움이 됐다. 번듯한 이력은 아니지만 적어도 나는 누구인지, 스스로와 가까워질 수 있는 시기였다. 또한 익숙하지 않은 자극으로 나의 한계를 넓혀가는 성취감도 무엇보다 큰 보상이었다.  
 
대학에 입학하고 가장 당황스러웠던 건 내가 나를 잘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해야만 하는 공부가 아니라 재량껏 시간표를 짤 수 있고, 교복이 아닌 내 멋대로 옷을 골라 입을 수 있고, 가욋돈도 제법 늘어나는 자유가 주어졌지만 뭘 어째야 할지 몰라 쩔쩔 맸던 기억이 난다. 나를 알아가는 방법은 다른 게 없다. 여러 기회에 나를 밀어 넣고 뭐든 해보는 것이다. 해보고 나서 재미를 붙인다면 그 영역을 넓혀 가면 되고, 맞지 않으면 관두면서 자신에게 맞는 것을 취사선택해 나가면 된다. 
 
한마디 더 잔소리를 하자면 ‘연애하라’는 말을 덧붙이고 싶다. 소개팅도 할 수 있는 만큼 해볼 것을 권한다. 연애는 단순히 좋아하는 누군가와 시간을 보낸다는 것 이상으로 여러 자극을 가져다준다. 나와 남을 한꺼번에 알 수 있는 도구이자 수단이기도 하다. 상대의 한 마디에 종일 나사 빠진 사람이 돼 보기도 하고, 나답지 않은 모습에 당황도 해봐야 하고, 이별에 부딪혀 일상을 내동댕이 쳐보기도 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나다운 나를 만날 수 있다고 믿는다. 그 모든 경험은 분명 온통 남으로만 이뤄진 사회를 이해하는 데도 영향을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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