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도롱 식당의 또똣한 어머님들…

당신이 제주대학교 학생이라면 한번쯤 가봤을 백두관 식당. 여러분들이 손쉽게 주문한 학식이 얼마나 많은 어머님들의 땀과 노력이 들어가 있는지 한번쯤 생각해 보셨나요? 하루 평균 2200여인분의 주문량, 일만 아라의 ‘밥’을 책임지고 있는 ‘백두관 식당’ 어머님들의 노고를 잊지 말자는 취지에서 하룻동안 그들의 삶을 직접 체험해 봤습니다.  <편집자 주>

◇백두관 식당 그 문을 열다
 
설렘 반 기대 반 마음을 안고 백두관 식당의 문을 두드린 시간은 오전 8시 30분. 이제 막 어머님들이 출근해 일할 준비를 하고 있을 것 같다고 예상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아침식사 시간을 끝 맺어가고 점심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점심시간’이라는 거대한 전투를 치르기 전 만반의 준비를 하고 계시는 어머님들에게 찾아가 출정의사를 밝혔다. 패기어린 포부를 들으신 어머님들은 반갑게 맞아 주셨다. 그렇게 원대한 출정식은 마무리 됐고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놀랐다. 하나의 작은 산으로 착각할 만큼의 식재료가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하루 평균 2200명의 손님들이 다녀간다는 영양사님의 말이 절실히 실감 되는 순간이었다.

 

 

 

▲ 고된 일을 마치고 식당 구석에 앉아 남은 음식으로 허기진 배를 달래는 어머님들.


◇김치부터 마늘쫑까지 모두 그들의 손으로
 
본격적인 점심시간이 다가 오기 30분전. 어머니들은 그제서야 본인들의 식사시간을 마쳤다. 그들은 편안한 식탁을 마다하고 주방 구석 어딘가에 쭈그려 앉아 배를 채웠다. 어머니 세분과 같이 쭈그려 앉아 밥을 먹으며 백두관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게 됐다. 그들은 김치부터 마늘쫑과 같은 가장 기본적인 밑반찬 어느 하나 외부에서 사오지 않았다. 모두 직접 본인들의 손으로 만들어 오고 있었다. 특히 김치의 경우 한 달 평균 2000kg의 양을 담그고 있었다.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라는 말을 몸소 깨달았다. 식사 도중 어머님들은 체험을 하고 있는 모습이 안쓰럽고 신기해 보였는지 “학생 여기 왜완? 가위바위보 젼?”이라며 농담 섞인 말들을 하셨다. 그와 동시에 이름과 나이를 끊임없이 물어 보셨다. 하도 많이 물으시다 보니 한 어머님은 큰 소리로 나의 이름과 나이를 외치셨다. “경영학과 2학년 임세환!” 그 외침에 모처럼 경직돼 있던 주방에 웃음꽃이 피어났다.

◇극한의 노동, 설거지
 

 

 

 

▲ 끊임없이 밀려오는 식판들. 하루 10,000개에 가까운 식판과 매일 사투를 벌이고 있다.

점심시간이 시작되고 1시간 후 백두관 식당에는 손님들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설거지를 돕기 위해 개숫간으로 갔다. 놀랍게도 이 일을 하고 있는 인원은 단지 3명뿐이었다. 그들은 컨베이어 벨트로 전달되고 있는 엄청난 양의 식판들을 말없이 묵묵하게 닦아내고 있었다. 마치 한국전쟁에서 중공군이 시전 했던 인해전술을 보는 것 같았다. 명칭을 붙이자면 ‘기(器)해전술’이라고 할 만큼의 끝없는 양이었다. 그릇들을 쉼 없이 다루는 어머님의 모습에서 장인의 모습이 엿보였다. 이날 하루 집계된 판매량은 정식 700개, 특식 641개, 양식 372개, 라면 31개, 분식 108개, 공기 밥 243개 도합 2095개였다. 한 메뉴마다 파생되는 그릇의 양이 많기에 세척해야할 그릇들은 하루 1만개 가까이 된다. 그 중 90% 가까이 되는 양이 점심시간에 팔리니 그들은 이 점심시간 3시간에 9000개 정도의 그릇들을 꼿꼿이 닦아 내고 있었던 것이다.

◇잠시 쉬는 시간, 거칠어진 그들의 손
 
정신없이 일을 하다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라는 거대한 전투는 끝나 있었다. 일을 마친 어머니 장군들을 보았을 때 모두가 땀에 쩔어 있고 지친 기색이 보였다. 하지만 그때서야 그들의 얼굴에서 긴장의 먹구름이 걷히고 있었다. 그들은 전투 후 가진 달콤한 휴식 속에 ‘남은 음식’이라는 전리품으로 조촐한 만찬을 즐겼다. 이제는 식탁에 앉아 지친 허기를 달랠 만 했지만 그들은 또 그들만의 필드에 쭈그려 앉아 배를 채웠다. 무심코 본 그들의 손마디는 거칠었고 굵었다. 영광의 상처 또한 쉽게 볼 수 있었다. 수많은 전투를 거친 그들의 손에서 왠지 모를 깊은 슬픔이 느껴졌다.
 
“여자의 몸으로 하기에는 너무 버거워”
 
어떤 어머님이 전투 준비 중에 무심코 이런 말을 하셨다. 여인의 몸으로 이 일을 하는 것은 솔직히 너무 버겁고 힘들다고 어느 하루 몸이 편한 날이 없다고 말이다. 이러한 ‘전(戰)중진담’을 들었을 때 그들 역시 어머니이기 전에 가냘픈 여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다. 이 일을 여성의 몸 그것도 중년의 몸으로 하기에는 너무나도 힘든 일이다. 무엇이 그들을 강하게 만드는 것인지 어머니들은 쉼 없이 일하셨다.

◇제군들 마지막 전투를 준비하라
 

 

 

 

▲ 점심시간, 몰려드는 학생들에게 배급을 하고 있다.

세상의 이치인지 달콤한 시간은 쓴 시간 보다 2~3배는 빨리 지나갔다. 그렇게 길지 않은 충전의 시간을 가진 후 어머님들은 ‘저녁시간’이라는 마지막 전투를 준비 하고 계셨다. 긴 전쟁의 마지막이고 비교적 소규모의 전투 준비이기에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줄 만도 했다. 하지만 어머님들은 흔들림 없는 모습으로 더더욱 정성과 노력을 기울였다. 그들의 작은 체구에서 거대한 명장의 모습이 보인 것은 착각이 아니었을 것이다. 사령관은 내게 마지막 보직을 주었다. 그 임무는 바로 ‘급식 배급’. 맡은바 역할을 해내기전 어머님은 반찬을 남기지 않도록 적당히 줄 것을 요구했다. 더 달라고 해서 많이 주면 결국 돌아오는 것은 거대한 양의 짬밥(남는 음식)이 돌아온다는 것이다. 그 짬밥을 처리하기가 여간 쉽지 않고 버리는 음식이 너무나 아깝기에 적당한 선에서 배급해야 함을 강조했다. 그렇게 그들의 양분 있는 조언을 따라 임무를 수행 하던 중 반찬이 다 떨어지는 절체절명의 상황이 다가왔다. 당황해 어쩔 줄 모르던 누구와는 달리 어머니들은 또 어디선가 다른 반찬을 미리 만들어놔 그 반찬을 나눠주셨다. Plan B까지 감안해 놓았다는 점에서 그들의 오랜 경험 속에 나오는 현명함을 볼 수 있었다.

◇오늘도 수고 했어

더 이상 서 있기 힘들다고 느낄 때 쯤 백두관 식당이 문을 닫는 오후 7시가 코앞으로 다가 왔다. 어머님들은 성심성의껏 마무리 청소를 한 후 옷을 갈아입고 집에 갈 채비를 했다. 옷을 갈아입은 그들의 모습은 어느 어머님들의 모습들보다 아름다웠다. 하루 일과를 마친 그들의 표정에는 일이 끝나 쉴 생각에 웃음 짓는 것이 아닌 보람이 가득 차 있었다. 중간 중간 어머님들과 얘기를 나누며 알게 된 그들의 보수는 예상의 반도 안 되는 금액이었다. 본래의 예상 보수가 턱없이 많았던 것인지, 세상 물정을 몰랐던 것인지 일만 아라국의 ‘식’을 담당하고 있는 곳의 실무자들 하사품 치고는 너무 적다라고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근속년수는 놀라웠다. 10년 이상 근무하신 분들을 쉽게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많은 어머니들이 넉넉지 않은 보수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세월을 백두관 식당에서 보내셨다.

이러한 점을 볼 때 그들은 단지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절대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반찬을 만들 때도 음식을 배급 할 때도 그들의 표정에서는 보람이라는 녀석의 얼굴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백두관 어머님들은 정말 자신의 자식들에게 밥을 주는 마음으로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학교이건 집이건 밥을 먹을 때 밥을 만들어 주는 사람에게 고마움을 잘 느끼지 못하고 있다. 이런 우리의 상황을 타파하고 당신의 어머니, 아주머니들에게 감사의 표현을 전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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