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와 스티브 잡스-표범가죽과 개가죽

時間的 空間的 차이가 엄청난 孔子와 Steve Jobs를 함께 이야기 하자면 다른 점이야 당연히 수없이 많을 수 밖에 없겠지만, 그 공통점을 찾을 수 있을까?
 
흔히 스티브 잡스를 옷차림에 있어서 무격식의 대표주자라고 여기지만, 이러한 관점은 참으로 순진한 것이다. 그의 검정 터틀셔츠와 청바지는 무격식이 아니라 오히려 의도된 ‘고도의 드레스 코드’이다. 그의 자연스러운 PT가 오랜기간의 많은 연습의 결과였듯 평범한 캐주얼 역시 고도로 계산된 드레스 코드였던 것이다. 고도로 계산된 드레스 코드를 통한 이미지 메이킹 전략으로 자신의 경영철학이나 제품의 성능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의 디자인론도 여기에서 멀지않다.
 
잡스의 디자인론은 ‘외관과 성능은 분리될 수 없다’로 요약할 수있다. 디자인은 어떻게 보이느냐의 문제를 뛰어넘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느냐의 문제를 담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런 생각은 외관과 성능은 별개의 것으로 이해하던 종래의 관점을 파괴한 것이었다. 바로 아이폰이 그의 이러한 관점을 통해 만들어진 집요한 추구의 산물이다.
 
‘외관과 성능은 분리될 수 없다’는 관점은 일찍부터 동양에서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서예이다. 서예는 형태라는 외관을 지니고 있는데, 서양의 경우, 그 형태인 ‘글씨’는 다만 내용을 소통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서예는, 글씨가 그것이 함의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그 함의하는 내용 이상의 무엇까지 담을 수 있다는 신념에서 출발한다. 글씨는 외관일 뿐 아니라, 그 자체가 내용의 일부라는 것이다.
 
〈論語〉 안연(顔淵)편에도 다음과 같은 대화가 있다.
 
棘子成曰 : 君子質而已矣, 何以文爲. 子貢曰 : 惜乎. 夫子之說, 君子也, 駟不及舌. 文猶質也, 質猶文也, 虎豹之곽, 猶犬羊之곽
 
극자성이 말했다. “군자는 바탕(質)일뿐, 어찌 외관(文)이리오?” 그러자 자공이 말했다. “안타깝도다. 그대의 말씀이 군자다웁게 여겨지나, 빠른 四頭馬車조차도 그대의 혀를 따라 갈 수 없겠구려.(당신! 입 빠른 소리를 하고 있구려). 외관은 바탕과 같은 것이요, 바탕 또한 외관과 같은 것이니, 호랑이와 표범의 다름가죽은 개와 양의 다름가죽과 같은 것이다.”
 
質과 文(紋)의 관계는 質이 옷감이라면 文은 옷감위에 그려진 무늬를 말할 수 있다. 猶는 ‘같다’로 해석한다. 다름가죽이란 털을 깎아낸 알가죽을 말한다.
 
즉, 가죽벨트나 구두 등에 쓰이는 가죽이 그것이다. 위 해석을 재해석하면, ‘호랑이나 표범의 가죽이 호랑이나 표범의 가죽인 것은 그 털이 호랑이나 표범의 털이기 때문이다. 만약 호랑이나 표범의 가죽에서 털을 깎아낸다면, 털을 깎아낸 개나 양의 가죽과 무엇이 얼마나 틀리겠는가? 그러니 외관은 바탕이요, 바탕이 외관인 것이다.’이다.
 
여기에 2,500년이라는 시간과 10,000여㎞의 거리를 뛰어 넘어 스티브잡스에 까지 이르는 아주 놀라운 미학적 관점이 숨어 있다. 文猶質也 즉, ‘겉으로 보이는 것이 바로 속에 든 내용이다’라는 것이다. 우리의 일반적인 생각은 ‘외관은 본질을 가리고 있는 껍질일 뿐이다’라는 것이었는데, 그게 아니라 외관 자체도 본질의 일부이거나 본질의 또 다른 전체라는 생각이다.
 
형상이나 허울이라고 할 수 있는 털이 내용을 결정할 수도 있다. 호랑이와 표범의 가죽은 가죽 자체의 차이에서가 아니라, 디자인의 차이에서 정체성이 생겨난 것이다. 이 전도적인 발상이 바로 잡스의 미학인 것이다.
 
서구인인 잡스가 인류를 매료시킨 방식이, 공자가 통찰했던 ‘文猶質也, 質猶文也’라는 미학적 명제의 참신한 실천이었다는 점은, 향후 새로운 잡스의 출현을 기다리는 우리에겐 상당한 교훈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이 바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다시 〈論語〉를 읽어야만 하는 명료한 이유 중의 하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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