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고래
문소연 (국어교육과 2)

엄마가 죽었다. 전화선을 타고 전해진 소식은 음성만큼 빨리 와 닿지 않았다. 발끝부터 천천히 저릿함이 올라오더니 곧 정수리에서 머물다 사라졌다. 나는 이것이 나의 유일할 애도임을 알았다. 수연아, 엄마가 죽었어. 목에 막힌 숨을 입 밖으로 뱉어낼 때까지의 시간동안 침묵이 유지되었다. 그래. 침을 삼키는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언니의 울음보가 터졌다. 전화기를 잡지 않은 한 손으로 비행기 표를 알아보았다. 불분명한 울음소리는 계속되었고 나는 똑같은 말을 반복하며 언니를 달랬다. 최저가는 이미 매진된 상태였다. 하지만 비수기였기에 가격은 그리 비싸지 않았다. 끅끅거리며 멈추지 못하는 언니의 목소리를 들으며 전화를 끊었다. 귓가가 싸늘했다. 나는 울지 못했다.
 
오랜만에 간 제주도는 낯설고도 익숙했다. 장례식장엔 어설프게 낯이 익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엄마에 대해 내게 이것저것 떠들었다. 어릴 때부터 지겨울 정도로 들어온 내용이었다. 막내보다 작은 키의 엄마는 작은 시골 마을에서 수 없이 많은 사람을 만났다. 엄마는 더욱 넓은 곳에 있어야 할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의 마지막은 손바닥 두 개만한 작은 액자였다. 오만원에서 오천원을 깎은 안경의 보랏빛이 처연했다. 한 달 전 입원했을 때 보았던 엄마의 입술 색이기도 했다. 사진 속 엄마의 선명한 붉은 입술은 나를 과거로 데려가는 것 같았다.
 
장례식이 끝났다. 집의 처분을 결정해야했다. 언니는 결혼을 했고, 동생은 이미 취직해 따로 나가 살고 있었다. 나 역시 서울에서 살고 있었다. 집에서 살던 4명의 여자가 모두 사라진 것이다. 시외버스터미널로 갔다. 나는 아직도 운전면허가 없었다.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매일 지하철이나 택시를 이용하다 버스를 타니 생경한 기분이 들었다. 고등학생 시절, 학교가 집과 멀어 나는 늘 종점에서 종점으로 가야했다. 좋아하는 시간이었다. 몇 채워지지 않은 버스 좌석, 조용히, 햇빛을 커튼으로 가리며, 어쩔 땐 다시 커튼을 걷어 풍경을 응시하다, 눈을 감았다. 이어폰에선 늘 듣던 노래가 나왔다. 향수가 들려왔다. 종점에 도착하면 버스를 환승해 10여분을 더 가야했다. 집으로 가는 길은 마늘 냄새로 가득했다. 어릴 땐 맡지 못했던 냄새였다.
 
13평 남짓의 작은 집은 내 기억보다는 조금 더 낡아있었다. 페인트칠이 벗겨져 있었으며, 벽에는 곰팡이가 올라왔다. 5년 여 만에 다시 왔지만, 이 집에 대한 내 기억은 막 지어졌던 14살에 머물러 있었다. 새하얀 벽. 촌스럽다고 투덜거렸던 청테이프 색의 방수페인트 옥상.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보니 연두색이 되다 못해 아래로 시멘트가 드러나 있었다. 집 안엔 딱히 값나가는 물건이 없었다. 처분이라는 말은 사실 어울리지 않았다. 패물은 물론이거니와 침대 하나 없었고, 덜렁거리는 옷장과 꽃 패턴의 시트지가 너덜거리는 오래된 냉장고가 하나 있었을 뿐이었다. 비싼 냉장고 같아 보인다고 시시덕대며 엄마와 붙였던 시트지였다. 새삼 내 추억이 낡았음을 느꼈다.
 
심장이 굳었다. 언젠가 친구가 내게 한 말이었다. 너 심장이 굳었구나. 그녀는 국문과 출신답게 감성적인 말을 자주 던지곤 했었다. 그 내용은 늘 상투적이고도 진부해서 그녀가 글로써 성공하지 못한 이유를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의 어설픈 작가놀음에 항상 어색하게 웃어주던 나도 그 날은 웬일인지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장에서부터 근질거림이 올라와 뱉어내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런 말 좀 그만 좀 하라고. 혹시 아직도 글을 쓰는 꿈을 접지 못한거냐며 깔깔거리고는 그녀를 밟아 내렸다. 다시는 기억날 리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이 문장은, 집을 살펴보던 중 문득 떠올랐다. 왜인지는 알 수 없으나 내 웃음소리에 붉어진 친구의 얼굴까지로 세세하게 떠오르는 것이었다. 새삼 진위여부를 확인하려고 심장 부근을 툭하니 건드려보았다. 사실 나는 심장의 위치를 정확히 몰랐다. 스웨터의 먼지가 그 충격으로 인해 떨어졌다. 보는 이는 없었지만 관성의 법칙이라는 답이 날 민망하게 만들었다. 성급히 먼지를 주으려 허리를 숙였다. 그러다 침대 바닥 밑 이질적인 선이 보였다. 색이 바랜 누런 장판과 그 장판을 가른 어설픈 선. 여태 잊고 있던 그 선은 끈이 되어 나를 묶고 과거로 잡아당겼다.
 
아. 낮은 음의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순식간에 끌려들어가는 바람에 한 동안은 정신을 추스릴 수 없었다. 어린 아이가 느릿느릿 걸어오고 있었다. 천천히 장판을 들어올렸다. 일기장 여러 개가 나란히 누워있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추억인데도 그리 반갑지는 않았다. 그저 이 공간을 잊고 있던 내 자신이 조금 신기했다. 남들이 알까 밤에 손전등으로 불을 비춰가며 몰래 써내려간 일기장들이었다. 아이는 어느새 내 앞에 도착해 있었다. 순수하고, 유치했으며, 부끄럽고, 풋풋했던 내가 빼꼼히 고개를 들고 나를 쳐다보았다. 머리를 쓰다듬어주려다 손을 거두었다. 내 손이 그녀에게 닿지 않을 것 같았다. 바닥 가장 구석에 있는 일기장 하나를 꺼내들었다. 그 당시 인기 있던 애니메이션 주인공의 분홍색머리가 하얀색에 가까워져있었다. 펴 볼 생각은 하지도 않은 채 멍하니 표지만을 바라보았다. 김수연. 내 이름이 삐뚤빼뚤하게 적혀있었다. 마치 그것이 진품을 증명하는 낙관이라도 되는 듯 조심스레 글자를 더듬었다. 어설프게 휘어지는 선에 따라 내 손가락도 흔들렸다.
 
난기류라도 만났는지 비행기는 불안하게 흔들렸다. 그 반동으로 무릎이 앞좌석에 닿았다. 그리 큰 키도 아니건만 좁은 좌석은 버거운 듯 나를 눌러왔다. 매번 불평하지만 싼 맛에 계속 저가항공을 선택하는 나였다. 몸을 구기며 바닥에 놓았던 가방에서 일기장을 꺼내들었다. 이미 구겨진 일기장이 구겨질까 두려워 한 행동이었다. 비행시간은 20여분 정도 남아있었다. 그 시간에 쫓기며 일기장을 볼 생각은 없었다. 다만 엉거주춤하게 일기장을 안고 창문에 머리를 기댔다. 곧 서울에 도착한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았다. 이제 다시 시작할 일상이 어색했다. 생각은 안정적으로 육지 위에 발을 내딛지 못하고 허공을 맴돌 뿐이었다. 집. 집을 어떻게 했더라. 물건들은. 팔았나. 다 태웠나. 모든 기억은 사라져 일기장을 꺼낸 그 순간만이 남아있었다. 창밖으로 익숙한 바다가 보였다. 아름다웠다.

    바다가 나를 먹었다.
    초록 고래를 보았다.

 이십여 년 전, 어린 나는 까맣게 탄 피부와 발간 볼을 가지고 있었다. 가족과 함께 바다에 간 날이었다. 아마 엄마는 보말을 줍거나 조개를 캐고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의외로 단순히 가족끼리의 나들이였을지도 모른다. 어찌됐든 엄마는 다른 두 딸과 자신의 일에 신경을 쓰느라 바빴고, 그 사이 나는 바다에 빠졌다. 날씨가 무척 좋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비극적인 일은 도저히 낄 수 없는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금방 내가 빠진 사실을 안 엄마는 사색이 되어 달려와 날 바다 속에서 꺼냈다. 이상하게도 엄마의 품에 안긴 나는 전혀 겁에 질린 상태가 아니었다. 울기는커녕 눈을 빛내며 엄마한테 이렇게 말한 것이었다. 엄마, 나 초록고래를 봤어.

잊고 있던 시간들이 글자를 통해 튀어나왔다. 3평 남짓한 방은 일기장에서 쏟아져 나온 짜지 않은 바닷물로 가득 차올랐다. 이질적인 물결 색 너머 보이는 곰팡이 핀 벽지에 현실인지 허상인지 알 수가 없었다. 펼쳐진 일기장은 여전히 내 손에 들려있었다. 무의식적으로 참고 있던 숨을 내뱉었다. 공기방울 여러 개가 위로 솟아  올랐지만 숨 쉬는 데에는 지장이 없었다. 어색해서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내뱉기를 반복했다. 눈이 부셨다. 시야를 가득 채운 초록색에 눈이 데굴데굴 굴러갔다. 먼지가 가라앉은 창으로 손을 뻗었다. 작은 손이었다. 주먹을 쥐고 피기를 두어 번 반복한 뒤, 고개를 들어 창문으로 향했다. 고래가 보일 것 같았다. 심장 위로 개미 한 마리가 기어 다니는 듯 간지러웠다. 창문으로 걸어가다 멈추어 간지러운 부근을 긁다, 다시 앞으로 나아가다 멈추기를 여러 번, 창문틀에 손끝이 닿자마자 내 이름을 외치는 커다란 목소리와 함께 문이 벌컥 열렸다. 바다는 순식간에 도망가 버렸다.
 
정육점에 진열되어 있는 고기를 본 적이 있다. 왜 정육점들은 붉은 조명을 쓰는 거죠. 문득 들어 한 질문에 점원은 친절하게 대답해줬다. 그래야 맛있게 보이거든요. 싱싱하게. 답하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았다. 내게 있어 정육점의 붉은 조명은 공포영화 속 살인자의 별장마냥 섬뜩함만을 줄 뿐이었다. 가끔 시장 같은 곳을 지나다니다 보면 천장에 매달린 돼지를 볼 수 있었다. 그 옆에는 목이 잘린 채로 웃고 있는 돼지의 얼굴이 있었다. 그럴 때면 그 위로 어릴 적 돼지 잡는 날마다 들어야 했던 끔찍한 비명소리와 미소를 만들기 위해 돼지의 입가를 찢는 영상이 중첩되어 보여 졌다. 그런 날엔 성급히 가게로 돌아가 밧줄로 발목을 강하게 묶은 뒤 똑같이 천장에 매달려 있곤 했다. 멀리서 보기엔 두렵기만 했던 장면에 막상 속하게 되면, 우습게도 두려움은 사라지고 안정감만이 남게 되는 것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리에 피가 쏠렸다. 두통을 없애려 질끈 눈을 감았다 뜨기를 여러 번. 붉은 조명에 눈이 아려왔다. 온통 붉은 방에 사람을 놔두면 미쳐버린다는 내용을 어디선가 읽었던 것 같다. 언젠가 나도 그렇게 되는 걸까. 새삼 드는 걱정 위로 몇 년 째 썩지 않고 유통되는 다른 고깃덩어리를 통한 그럴듯한 위안이 올려 졌다. 그러다 과연 저들이 썩지 않았는가에 대한 새로운 의문. 두려움과 자위와 회의.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덮어버리는 자기 합리화를 반복하다보면 결국엔 건조함만이 남는다. 그것을 눈동자에 심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유리창에 나의 벌건 몸이 반사되었다. 그 위로 시선들이 떨어졌다. 내가 그들에게 무엇을 바라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결국 남는 것은 얼마 되지 않는 푼돈인지, 백마 탄 왕자님의 판타지인지. 어쩌면 이렇게 매달려 있고만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건조함은 내게 결론을 내려주지 못했다.
 
나는 매달려 있는 그 자리에서 바로 팔려가거나 때로는 낡은 승합차에 실려 배달되기도 했다. 사람들은 내 색이며 마블링이며 어쭙잖은 지식과 유치한 미학을 뽐내다가 주인에게 돈을 쥐어주고 나를 불판으로 가져간다. 그들은 웃기게도 고기를 파는 가게에서 고기만을 위해 돈을 지불하진 않았다. 타들어가는 나의 살 내음과 그 옆에 놓인 술, 취한 척 늘어놓는 그럴듯한 청승과 과거에 대한 향수, 과장뿐인 자만과 허영심. 그리고 그것을 비웃기는커녕 달콤한 맛으로 입 안을 가득 채워주는 나. 그들은 타오르는 연기와 향에 허우적대며 감탄사를 연발하다 다음날 가게를 나서면 맛없는 고기에 비싼 값을 치뤘다며 혀를 차곤 하는 것이었다. 다시 낮은 등급의 도장이 찍힌 나는 똑같은 장소에 똑같은 방법으로 매달려 다른 결과를 기다린다. 그렇게 또다시 손님이 들어와 돈을 치루고, 내 몸은 다시 한번 가위로 잘게잘게 나눠지는 것이다.

불판 위 벌겋게 익은 내 몸은 하얗게 튼 입술 속으로 들어가 누런 이빨에 부딪힌다. 내 몸을 이루는 것은 단백질이 아니라 합성고무가 아닐까. 탄성은 어디까지 유효할 것인가. 쓸 데 없는 생각에 빠진 사이, 내 몸을 씹던 쯥쯥거리는 불유쾌한 소리가 멈추며 몸 위로 침이 줄줄 흘러내렸다. 체온 위에 놓인 차가움이 주는 섬뜻한 느낌에 몸서리를 쳤다. 옆구리가 딱딱한 이빨에 뜯겨져 나간다. 살이 찢기는 고통에 작게 비명을 지르며 남자를 보았다. 눈이 벌겋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숱이 많은 머리. 살집 있는 몸과 쇄골 아래의 점. 오빠. 나도 모르게 단어를 내뱉었다. 사기죄였던가. 기억나지 않는 무언가의 죄로 지금은 감옥에 있는, 그 안에서 새해엽서를 보냈던 나의 사촌오빠. 이제는 새사람이 되겠다는 진부한 멘트와 나를 아낀다는 어설픈 문장에,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그리고 뭐라고 말했던가. 기억나는 것은 부모님의 눈치를 보며 그 엽서를 찢지도 버리지도 못했던 상황뿐이었다.
 
십여 년 전 추석 연후. 친척들은 애매하게 커버린 나와 사촌오빠에게 불편함을 완곡하게 표현하면서 돈을 쥐어 주었다. 우리는 그 돈을 갖고 시내로 향했다. 그때의 나는 꽤 들떠있던 것 같았다. 그 당시 오빠는 나와 얘기가 통하는 유일한 가족이었다. 또한 또래들 사이에서 꽤 인기가 있었기에 어린 나에게는 동경의 대상이기도 했다. 날씨는 선선했다. 우리는 가장 먼저 영화를 보았다. 진부한 코미디였다. 끝나고는 파스타를 먹으러 갔다. 내 주머니 사정으로는 분식도 가볍지가 않았었기에, 조금 어색했던 기억이 난다. 처음으로 먹어 본 까르보나라는 느끼하고 거북했다. 그 뒤 함께 거리를 쏘다니며 나는 볼을 붉혔고 그 색은 곧 파란색으로 물들어갔다. 오빠는 어둠 속에서 내 머리채를 잡았고 나는 들리지 않는 비명을 내뱉으며 질질 끌려갔다. 그날 밤 내 몸 위로 뱀 한 마리와 수천마리의 거미가 기어 다녔다.
 
변한 것은 없었다. 사촌오빠는 평소와 같이 내게 다정하게 웃어주었다. 몇 달을 머뭇거리던 나는 엄마에게 입을 열었다. 말은 두서없이 주변만을 빙빙 맴돌았다. 아니, 아니다. 엄마. 사실 전에. 이 때 까지가 내가 엄마를 가장 존경하던 시절이었다.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도덕적이고 이상적인 사람이었다. 엄마는 내 말을 끊었다. 여자는 참을 수밖에 없어. 너무나 덤덤한 눈에 도저히 말을 이어갈 수 없었다. 그 뒤 사라진 것이라 여겼던 거미는 환각이라는 변명을 둔갑한 채 내 곁으로 기어 올라왔고, 나는 섬뜩한 감각에 밤 새 진저리를 쳤다. 날이 갈수록 거미의 수는 점차 줄어들었지만 한동안 거미들과의 동침은 계속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한 마리의 거미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러나 감긴 시야 속 오빠를 다시 보게 된 지금, 나는 내 몸을 다 덮치고도 남을 커다란 거미를 보았다. 시커먼 거미의 뱃속에는 내가 있었다. 나는 거미에게서 벗어났지만 그로인해 평생을 벗어날 수 없게 된 것이다.
 
벌건 눈이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바닥은 온통 시뻘겋게 변했다. 이 색의 시작점을 찾다 붉은 내 손을 보았다. 그리고 그 손에 쥐어진 칼. 순식간에 인과관계는 명확해졌다. 사촌오빠와 똑같이 생겼던 남자는 점점 완벽한 타인의 얼굴로 되돌아갔다. 칼을 쥔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런 몸과는 반대로 머리는 점점 차가워졌다. 나는 남자의 잠바 주머니를 뒤져 라이터를 꺼냈다. 남자의 입에서 알 수 없는 신음소리가 나왔다. 순간 온 몸이 굳었다. 그러나 그 뒤 남자에게선 어떠한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다시 움직였다. 내가 쥔 칼의 손잡이는 나무로 되어있었고, 우습게도 여기서 나무는 불에 잘 탄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나는 남자의 머리카락에 불을 붙이고 그 위에 칼을 올려놓았다. 멈추지 않는 손의 떨림 때문에 꽤 오래 걸렸는데, 이러한 시간의 압박은 내 몸의 진폭을 더욱 크게 만들었다. 칼의 손잡이가 그을리고 남자의 머리가 녹아내리는 것을 보면서 급하게 옷을 입은 나는 천천히 문을 열고 나갔다. 내 얼굴은 그 누구보다 해사했다. 호텔의 입구를 나선 순간, 나는 미친듯이 뛰기 시작했다. 마치 뒤에 살인범이라도 쫓아오는 것처럼 말이다. 나의 범법행위로부터인지, 화마 속에서인지, 혹은 뫼비우스의 띠에서의 탈출인지는 몰라도 나는 계속해서 도망갔고, 여전히 내 얼굴을 그 누구보다 밝았다.
 
엄마가 죽은 지 일 년도 지나지 않아 돌아온 제주도였다. 공항에서 내린 나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멍하니 서있을 뿐이었다. 발목까지 오는 긴 치마는 깃발을 따라 펄럭였고, 머리카락이 내 뺨을 때렸다. 차가웠다. 회귀본능이라는 게 정말로 있던 건지, 당장 생각나는 곳이 고향밖에 없었다. 물론 고향 말고는 갈 수 있는 곳이 없기도 했다. 나에겐 사람과 돈을 포함한 그 어떠한 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삶의 빈곤을 새삼스레 확인할 수 있었다. 허무했다. 공항을 나와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몇 분 기다리지도 않았건만 터미널로 가는 버스가 다가왔다. 천이백 원. 가방에서 허둥지둥 지갑을 꺼냈다. 천 원짜리 한 장과 오백 원과 오십 원 사이 갇혀있는 백 원짜리 두 개를 꺼냈다. 오랜만에 타는 버스였다. 시외버스터미널에 내려 집으로 가는 버스를 찾았다. 늘 타던 평화로는 750번으로 바뀌어있었다. 노선을 확인했는데도 불안한 마음으로 좌석에 앉았다. 창문 밖 풍경은 여전히 느렸다. 시내를 지나자마자 바다와 작은 마을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러나 도착은 순식간이었다. 쫓겨나듯 머뭇거리며 버스에서 내렸다. 느릿하게 옮겨지는 걸음 걸음에 자소를 뿌렸다. 발에 추라도 달린 듯 무거웠다. 감정은 뒤죽박죽이었다. 빨리 집으로 가 따뜻한 이불에 눕고 싶었다. 그동안의 안부를 묻고, 밥을 먹고, 그렇게 쉬고 싶었다. 하지만 정리되지 않은 마음과 말할 수 없는 일련의 과거들이 나를 짓눌렀다. 나는 스스로가 창피했다. 걸어가는 동안 익숙한 풍경이 이어졌다. 가장 가고 싶지 않은 곳임과 동시에 유일하게 내가 갈 수 있는 곳.?늘어진 돌담과 어설픈 시멘트 길의 끝엔 남은 평생을 보지 않아도 익숙할 수밖에 없는 집이 하나 서있었다. 대문도 초인종도 없는 낡은 집이었다. 천천히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할머니. 작은 목소리였다. 언제부턴가 내 목소리는 작아져 있었다. 시골아이답게 목소리가 커서 친구들의 핀잔을 듣던 나였다. 그들은 내 목소리가 민망하다고 했었다. 다른 사람들도 있으니 조금 작게 말하라고. 더 크게 말했다. 할머니. 계세요. 방 안에서 인기척이 났고, 누렇게 바랜 창호지가 달린 문이 열렸다. 집과 마찬가지로 절대 낯설어지지 않을 색이었다. 수연이냐. 네. 네, 할머니.
 
외가는 대대로 농사를 지어왔었다. 당연히 집안 형편은 여유롭지 못했고, 언니나 동생은 주말이나 방학이면 항상 밭에 가야 했었다. 하지만 나는 늘 농사일에서 빠졌었다. 과외나 학원 같은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머리가 좋았는지 나는 꽤 공부를 잘했다. 엄마는 거기서 희망을 본 것 같았다. 지겨운 궁핍에서 벗어날 기회로 내가 선택된 것이었다. 새벽같이 일어나 작업복을 입는 엄마와 언니, 어린 동생을 보며 나는 잠에 취한 채 배웅을 하곤 했다. 한 때 집에서 편히 쉬는 내가 불만이던 언니는 날 억지로 밭에 데려가려고 했었다. 싫다는 나를 때리고 욕을 했었다. 왜. 왜 너만 안 가. 그러면 엄마는 언니의 머리를 아프게 잡아당기며 내게 말하곤 했다. 너는 공부해. 내가 아는 엄마의 가장 무서운 얼굴이었다.
 
그게 내 위치인 줄 알았다. 삼십오도가 넘는 열기 아래 계속해서 몸을 움직이는 그들의 고통이 우스웠다. 그랬다. 나는 도서관 에어컨으로 인한 냉방병이나, 새벽까지 졸음을 참으며 하는 공부, 혹은 그러다 구부정해진 허리 따위에 아파했다. 등에 파스를 붙이고 방바닥에 누워 서로에게 장난을 치는 언니나 동생이 한심했었다. 나는 그들과는 다른 층에 위치해있었고, 그 것을 증명해내기 위해 공부에만 매달렸다. 시간이 지났고, 나는 누구나 알아주는 명문대학에 입학하게 되었다. 그제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엄마와 나는 너무도 순진했다. 공부만 하면 모든 것들이 다 해결될 줄 알았던 것이다. 학교 안에선 느끼지 못했던 강한바람이 나를 짓눌렀다. 학비는 휴학을 하지 않고서는, 아니 휴학을 하고서도 감당하기 어려웠고, 아르바이트에 치이느라 장학금은 꿈도 못꾸었으며, 가난으로 인해 비뚤어졌던 성정을 그제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천재가 아니었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아이였으며, 엄마의 삶을 건 기대는 내 어깨를 계속해서 짓눌렀다. 나는 문드러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경멸하던 텐프로조차 되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머리가 곪아 내렸다. 그러나 농사 따위는 거들떠도 보지 않았던 날들이었다.
 
그러니까 결국은, 벗어날 수 없는 굴레였다는 것이다. 할머니가 나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고만히 앉앙 뭐햄시냐. 눈치를 보며 손의 속도를 조금 올렸다. 친척의 농사일을 돕기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나있었다. 급작스럽게 내려온 제주도에서 일을 찾는 것이 마땅치가 않았다. 사실 찾으려 하지도 않았다. 사람에게 너무 지친 상태였다. 잠시 쉬고 싶었다. 새벽에 일어나 해가 질 때까지 밭에 있는 일상이 계속 되었다. 가족들에게는 당연했고, 나에게는 생소한 일상이었다. 몸은 힘들었으나 머리와 가슴은 가벼워졌다. 단순한 반복 작업과 시선에서의 자유로움. 속세를 피해 산으로 들어간 사람 마냥 굴었다. 자아도취에 빠져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는 오래 가지 않았다. 세 달이 지났다. 근육통은 계속 되었고, 온 몸이 멍으로 도배되었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너무나 힘겨웠다. 금방 적응 될 줄 알았던 일상이었다. 처음의 고통은 얼마 가지 않아 사그러들 줄 알았다. 하지만 두 달이 지나자 문득 늘 지친 몸으로 집으로 돌아오던 엄마가 생각났다. 항상 앓는 소리를 내며 이부자리에 눕곤 했었다. 엄마는 그 일을 몇 십 년 동안 해온 사람이었다. 그 순간 모든 것이 싫어졌다. 이불 속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아침에 왜 나오지 않냐는 삼촌에게 아프다는 말만을 반복했다. 그러다 욕이 섞인 재촉에 다시 억지로 일어나 밭으로 향하곤 했다. 매일 같이 들어야하는?친척과 노복들의 쨍알거리는 목소리를 더 이상 부드럽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일하는 속도가 느렸으며 둔했다. 그 위로 쏟아지는 질타에 나는 이런 대접을 받을 사람이 아니라는 상처받은 자만이 이어졌다. 나는 내가 밑바닥에까지 내려왔다고 생각했지만, 그 밑바닥에서도 누군가를 깔고 앉아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고개를 치켜들고 나를 비웃었다.
 
넓게 펼쳐진 땅 위로 해가 뜨고 지는 경이로운 장면이 계속 되었다. 아름다웠다. 그리고 더 이상 그에 마음을 뺏기지 않게 되었다. 지평선을 만든 마늘밭이 바람에 흔들리며 초록색의 파도가 생겨났다. 내 코를 괴롭혔던 마늘 냄새는 더 이상 맡아지지 않았다. 냄새가 나지 않는 만큼, 더 이상 저 초록의 바다가 내게 감흥을 줄 일은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지쳐가고 있었다. 머지않아 사람이 싫다던 과거의 내가 우스워졌다. 힘든 일을 해 본적 없는 어린아이의 투정이었던 것이다. 나에겐 엄마처럼 묵묵히 고통을 감내할 인내심이 없었다. 열 살 때부터 밭에서 일을 도왔던 언니와 동생과 달리 스무 살이 훨씬 넘은 나는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해낼 수가 없었다. 자괴감과 낮은 자존감과 좌절감은 나를 다시 창녀촌으로 데려다 놓았다. 존엄이 무너지는 건 그리 아프지 않았다. 내 나약함에의 인정은 이미 오래였다.
 
전과 똑같은 일상이 계속되었다. 나는 조금 더 싼 고기가 되었고 좀 더 싼 사료를 먹고 좀 더 싼 숙소에서 지냈다. 순수와 향수였던 나의 제주도는 촌스러운 서울이 되었다. 더 이상 이십대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내 피부는 푸석푸석해졌고, 그것을 감추려 비싼 기초화장품과 선크림을 사서 바르기 시작했다. 분에 맞지 않는 가격의 화장품은 내 피부에도 맞지 않았는지 얼굴이 하얗게 일어났다. 주름이 푹 패었다. 삼십대 중반이라고 해도 믿을 얼굴이었다. 그러다 한껏 거드름을 피우는, 하지만 감출 수 없는 풋내를 가지고 나를 사러 오는 고등학생들을 볼 때면 귀여움에 미소 짓다, 그들조차 살 수 있는 나의 가격에, 내겐 없는 그들의 봄에 슬퍼하는 것이었다. 그러다 내 나이는 아직 봄이라 불린다는 것을 깨닫고, 그러나 묶여있는 내 발을 보다가, 또, 또, 그렇게 건조하게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서울과는 다르게 제주도는 색을 가지고 있었다. 어디를 봐도 저 멀리, 조금이나마 파란 지평선이 보였다. 눈으로 지평선을 따라 선을 그리다보면 어느새 루치오 폰타나의 칼이 내 가슴에 닿았다. 그 찢겨진 틈 사이로 겨우 숨이 드나들 수 있었다. 가끔 여유가 있을 때면 바다에 가보기도 했다. 비수기의 겨울바다에서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바다는 여름의 그 찬란한 색과는 조금 달랐다. 

날씨 탓인지 보다 탁하고 가라앉아 있었다. 그러나 그 빛을 잃지 않은 바다의 색을 몇 시간이고 물끄러미 쳐다보고는 했다. 어릴 땐 너무나 흔했기에 알지 못한 아름다움이었다. 모래사장 위에 놓인 쓰레기 옆에 쭈그리고 앉아, 차가운 엉덩이를 느끼고, 잠바를 추스르고, 다시 바다를 보다 그 색에 시리고, 그렇게 시간이 지났다. 나는 끊임없이 바다를 보았고, 바다와 멀어졌다.
 
그 날도 별 다를 것 없었다. 승합차를 타고 다른 아가씨들과 주점 안으로 들어갔다. 어두운 룸 안에서 촌스러운 조명이 반짝였다. 취기가 오른 중년 남성 네댓 명이 앉아있었다. 그리고 그 중의 한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내가 바다의 색을 가졌던 시절의 선생님이었다. 나는 꽤나 열의에 넘치는 학생이었고, 덕분에 많은 예쁨을 받곤 했다. 가장 나를 아껴주시던 선생님이었다. 그렇기에 선생님은 단 번에 나를 알아보았다. 그리고 서로의 인지를 동시에 깨달았다. 입가에 경련이 일었다. 손이 잘게 떨려왔다. 너 오늘 지각했니. 아, 선생니임. 한 번만 봐주세요. 청소. 아침에 일어나는 거 너무 힘들어요. 복도. 창문. 그래도. 선생님. 선생님. 수업. 칠판. 그래, 수연아. 선생님, 성적이 올랐어요. 연필. 장하다. 모의고사. 컴퓨터 사인펜. 충분히 갈 수 있어. 성적표. 선생님. 고마워요. 최고다. 운동화. 존경합니다. 시계. 노을. 그래. 밤하늘. 교복을 입은 나. 나의, 바다.
 
선생님은 나를 거부했고, 나는 눈으로 감사를 표시했다. 소파에서 일어난 나는 짧은 원피스를 조금이나마 밑으로 끌어내리려 애썼으며, 선생님 역시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본능과도 같은 이성의 명령이었다. 우리는 서로 서로의 수치심을 숨겼다.
 
바다로 향했다.?새벽 네 시였다. 의도하진 않았지만?어릴 적 내가 빠졌던 바다였다. 무의식의 이끎도 의도로 볼 수 있을까. 어두워 바다와 하늘의 구분이 어려웠다. 어둠에 익숙해지고 나서야 어렴풋이 하늘에서 푸른빛을 볼 수 있었다. 별이 밝았다. 습관처럼 국자모양의 북두칠성을 찾았다. 제주도에 오고 나서 생긴 습관이었다. 서울에선 별을 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었다. 그래서 아직도 이 행위가 낯간지럽긴 했지만, 국자모양을 발견하는 그 순간의 희열이 좋았다. 그 뒤 나는 그저 모래사장에 앉아, 모래와 파도가 부딪히는 소리를 들었다. 조용하리만치 선명했다. 추위에 온 몸이 떨려왔다. 그리 두껍지 않은 가디건 하나만을 걸친 상태였다. 검은 바다는 아름답기보다는 처연했으며, 무서웠다. 어쩌면 이 것이 내 떨림의 이유일지도 몰랐다. 텄는지 입술 각질이 씹혔다. 손으로 각질을 뜯어내다, 기어이 피가 새어나왔다. 입술을 핥자 비릿한 맛이 입 안 가득 맴돌았다.
 
가방을 벗었다. 허한 공기가 어깨에 걸려있던 가방 끈 자국 위를 스쳐 지나갔다. 백만 원을 겨우 넘긴 명품백이었다. 그것은 내 자존심의 가격이었다. 하지만 내 어깨가 버틸 무게는 아니었다. 파도는 가을밤의 벌레소리를 내다가도 맹수의 목 울림소리를 들려주곤 했다.?유자여! 더럽다. 범이 나를 비웃었다. 더럽다, 더럽다. 그 말이 메아리처럼 귓가에서 울렸다. 스스로가 너무나 끔찍했던 적이 있었다. 언제부터였을까, 내가 더럽지 않게 된 것은. 혀가 있고 노래할 수도 있지만 결국은 던지기 노리갯감밖에 되지?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부터였던가. 아마 모든 것에 건조해졌을 때부터일 것이다. 내 건조함을 꾸짖는 바다는 습기 낀 바람으로 내 얼굴을 강하게 치고 지나갔다. 뺨이 얼얼했다.
 
나는 천천히 일어나 바다를 향해 걸었다. 모래에 파묻힌 가방이 멀찍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물에 가까워지자,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놓았다. 드라마나 영화 속, 자살한 사람들 뒤로 남아있는 신발들을 볼 때마다 진부한 클리셰를 비웃곤 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생은 뻔하게 흘러갔고, 나도 그러한 인물 중 한 명일 뿐이었다. 나는 특별한 이야기의 주인공일 수 없었다. 삶에의 미련을 벗어던졌다. 신발은 조금 삐뚤어졌지만 그렇다고 다시 완벽한 평행을 만들 정도로 강박증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차가운 모래가 발바닥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곧 발가락에 물이 닿았다. 모래와는 비교도 되지 않은 차가움이었다. 천천히, 천천히 발을 담갔다. 철벅. 의미없는 발장난을 몇 번 한 뒤,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갔다. 내 옷의 색은 점점 짙어졌다. 추위가 뼛속까지 차올랐다. 소리를 질렀다.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큰 비명이었다. 후련할 줄 알았던 소리는 처절함만을 남길 뿐이었다. 아. 아아. 입안으로 물이 들어왔다. 짰다. 컥컥거리며 물을 내뱉고, 삼키고를 반복했다. 돌아가고 싶어. 그러나 어디로 돌아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태어난 바로 그 순간부터 내 삶은 예정되어있었을지도 모른다. 숨이 막혀왔다. 한치 앞도 못 볼 줄 알았지만, 오히려 바다 속은 바깥보다 밝았다. 해초더미와 작은 쓰레기, 물결이 내 앞을 지나갔다.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나는 커다란 고래의 눈과 마주쳤다?
 
덮인 눈가 위로 햇살이 떨어졌다. 천천히 눈을 떴다. 순식간에 나를 찌르는 빛에 다시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깜빡인 뒤 다시 눈을 떴다. 어떻게. 잔뜩 잠긴 내 목소리가 말했다. 몸을 일으켰다. 온 몸에 모래가 달라붙어있었다. 오른손으로 왼손바닥을 쓸었다. 모래알갱이 몇 개가 우수수 떨어졌다. 그러다 해변의 모래를 두 손으로 들어올렸다. 모래는 선을 그리며 아래로 떨어져갔다. 나는 다시 모래를 주워들었고, 이는 빠져나가는 것을 반복했다. 모래의 감각이 선명했다. 나는, 살았다. 죽음의 아가리가 나를 향한 순간, 거미의 뱃속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죽음의 뱃속은, 거미의, 그 끔찍하고 선연한 감각보다는 편안할 거라고, 그렇기에 가만히 서서 잡아먹히길 기다린 그 순간이었다. 고래의 눈은 내 시야로는 다 채우지 못할 만큼 커다랬다. 새까만 눈동자는 수많은 색의 빛을 반사해내고 있었다. 거미의 검은색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아름다운 색이었다. 순간 눈물이 차올랐다. 방울진 눈물은 곧 선이 되어 떨어졌고, 마르기도 전에 새로운 방울이 계속해서 만들어졌다. 입술에 묻은 모래가 짰다. 뺨에서 김이 일어났다. 그 모든 것이 따뜻했다. 나는 아이처럼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눈물은 멈추지 않고 나를 먹어갔다.
 
   초록고래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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