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입은 자아, 치유의 바다를 향해…

독서의 계절이 어디 따로 있을까? 그곳에 책이 있고 당신이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방학동안 여행은커녕 책 한 권도 읽지 못한 학우들을 위해 준비했다. 책도 읽고 여행도 하고 꿩 먹고 알 먹고 도랑 치고 가재 잡는 일석이조 기획. 흔히 독서의 계절이라 불리는 가을이 아직 시작되지도 않은 8월의 어느 무더운 날, 한동안 책을 놓아두었던 손에 다시 책을 쥐고 책상 앞에 앉았다. 그리고 책장을 넘기는 순간, 이미 책상 앞이 아닌 소설 속으로 여행을 떠나고 있었다. 호랑이는 왜 바다로 갔을까? 상처 입은 자아를 치유해나가는 영빈의 제주도 생활기. 이제 그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여름이 끝나기 전에 눈이 시리도록 푸른 제주의 바다에서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모래사장을 걸으며 소설 속 영빈처럼 제주의 바닷바람을 느끼고 싶다면 자, 이제 같이 읽자. 여행이 시작된다.
 〈편집자주〉

◇〈호랑이는 왜 바다로 갔나〉줄거리
 
소설가 영빈, 동화 일러스트 작가 해연, 재일 한국인 히데코. 이 세 사람의 미묘하고 위태로운 관계와 그들의 속사정에 대한 이야기. 취재차 제주도를 방문한 영빈은 사람 발자국 화석 산지에서 삶을 다시 시작해보고 싶다는 열망을 느끼게 되고 제주도에 머물기로 결심한다. 제주에서 그는 낚시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 소설 속 영빈이 넘었던 출입금지 표지판이 붙어있는 울타리 너머 사람 발자국 화석, 바다, 형제섬이 보인다.


◇사계리 해안도로 - 사람 발자국 화석 산지
 
8월 17일 따가운 8월의 햇빛에 살갗이 타들어갈 듯한 정오. 뜨거운 날씨 속에 산방산으로 가는 750번 버스를 탔다. 사람발자국 화석이 산방산과 송악산 사이 해안가에 있다는 단서만 들고 무작정 산방산행 버스에 올랐다. 1시 반이 되어갈 무렵 산방산의 거대한 모습이 버스  창문에 가득 찼다. 그 거대함에 눈이 빼앗겨 버스가 어디로 향하는지 알지도 못한 채 한참을 산방산만 바라보았다. 어느덧 정신을 차려보니 버스는 사계리를 이미 지난 후 였다. 도저히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는 아니었고 버스의 도착시간도 알 수 없어 결국 택시를 타고 사람발자국 화석 관리사무소에 도착했다. 택시 기사님께서 가는 도중 거기는 뭐하러 가냐고 물어보셨다. 자세히 설명하기 어려워 그냥 답사하러 간다고 얼버무렸다. 택시기사님은 의아한 듯한 표정을 지어보이셨다.
 
곧 통나무로 지어놓은 관리사무소가 눈에 들어왔다. 급조된 듯한 통나무집. 관리소 문을 두드리니 한 남자가 나왔다. 사람 발자국 화석을 보러 왔다하니 옆에 있는 통나무집으로 안내했다. 통나무집에는 화석 복제본이 전시되어 있었다. 남자가 “이건 사람발자국 화석을 본떠서 만든 복제본이고요.”하고 작은 목소리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굉장히 민망한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그제야 택시 아저씨의 그 표정이 무슨 의미인지를 깨달았다. 상황을 보니 사람들이 거의 드나들지 않는 듯 했다. “구경 더 하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관리인으로 보이는 그 남자는 밖으로 나갔다. ‘아시아 최초 사람 발자국 화석’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전시관이라는 곳은 초라하고 허술하기 그지 없었다. 그래도 명색히 문화재인데 이렇게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방치되어 있는 모습을 보니 씁쓸하고 안타까웠다. 사진을 몇 장 찍고 밖으로 나갔다. 화석은 통나무 집 맞은편에 있었다. 울타리가 둘러져 있었다. 출입금지라는 표지판이 눈에 띄었다.

# 영빈은 미리 준비한 랜턴을 들고 접근금지 라인을 넘어 안으로 들어갔다. (중략) 순간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전율이 영빈의 온몸을 휘감았다. (중략) 지금 서 있는 곳이 어디든 바로 이 지점에서 삶을 다시 시작해보고 싶다는 열망에 휩싸여, 그것은 마치 하늘의 계시처럼 영빈의 마음을 흔들어 놓 고 있었다.  
 - 책 내용 中 p.70

 
영빈은 발자국 화석을 밟으며 어쩐 전율을 느꼈다. 그때 그 전율이 영빈을 제주로 내려오게 이끌었다. 울타리 너머 발자국 화석이 보였다. 차마 울타리를 넘어서 들어 가지는 못하고 그 앞으로 한참 서성였다.

# 해연은 접근금지 표지판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 책 내용 中 p.328
 
소설에서 해연이 그랬던 것처럼 출입금지 표지판 너머를 바라보았다. 형제섬이 보였다. 사람 발자국 화석, 바다, 형제섬. 그 미묘한 어울림. 영빈, 해연, 히데코. 그들의 미묘한 관계를 보는 듯 했다. 화석 산지에서 인생을 돌아본 영빈, 바다 제비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해연, 그리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 하는 고독한 섬 같은 히데코. 발자국 화석과 바다 그리고 그 위의 섬까지 마치 이 세 사람을 한 폭의 풍경 속에 담아놓은 듯 했다.

▲ 발자국 화석 산지 옆 사계리 해안가에 산방산이 보인다. 영빈이 처음 낚시를 시작한 곳이 바로 이 곳이었다.

 

◇바다, 치유의 공간

# 영빈: “나는 조금씩 회복되고 있어. 바다가 그 일을 해주고 있더군”   - 책 내용 中 p.330
“호랑이는 상처 입고 몸부림치는 자기 환영에 불과하니까”   - 책 내용 中 p.332

 
영빈의 눈에 보이는 호랑이의 정체는 상처 입은 자아였다. 이 소설에서 바다는 단순한 공간적 배경을 넘어 치유의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빈은 제주의 바다에서 그의 상처와 마주하고 있었다. 바다를 보고 있노라면 막혔던 가슴이 뻥 뚫리는 것처럼 시원해질 때가 있다. 그건 아마도 그 깊이와 끝을 가늠할 수 없는 바다의 속성 때문이 아닐까. 바다는 너무 거대해서 자신의 고민 따위는 넓고 깊은 바다에 다 떨쳐낼 수 있다고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 소설 여행을 준비하면서 이번 여름, 바다는커녕 책 한 권조차 읽지 않은 것은 사실은 나였다는 것을 자각했다. 아직도 형제섬이 떠 있던 사계리 바닷가가 내 머릿속에 맴돌고 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영빈처럼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나 보다. 바다는 어쩌면 사람들의 고민을 다 들어주느라 점점 더 깊어지고 넓어진 것이 아닐까. 지금 수많은 고민들로 머리가 복잡한 그대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여름이 가기 전에 어서 바다로 떠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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