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균, 쇠 (Guns germs and steel: the  fates of human societies.)
 저자: 제레드 다이아몬드 

 요즘 한국에서도 학문의 융·복합, 혹은 통섭이 화두가 되고 있다. 대학에서 뿐만 아니라 초·중등학교 교육과정도 ‘융합교육과정’을 지향하고, 실제로 고등학생용 ‘융합과목’을 만들고 있다. 문제는 융합 또는 통섭에 대한 논의는 분분한데, 이것이 도대체 어떤 의미인지 그 개념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일찍이 이들 개념을 한국에 소개하고 논의를 주도해온 생태학자 최재천 교수는 그 의미를 비교적 명료하게 정리하고 있다. 통합(統合)은 둘 이상을 하나로 모아 다스리다는 뜻으로 이질적인 것들을 물리적으로 합치는 과정이며, 융합(融合)은 둘 이상이 녹아서 원래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화학적으로 합쳐지는 과정을 말한다. 그럼 통섭은? 통섭(統攝)은 원래 구성성분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녹아 없어지는 게 아니라 그들의 속성을 잘 섞어 새로운 실체를 탄생시키는 것, 곧 생물학적 합침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개념 정의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들 논의가 모두 학문의 경계를 넘어 진리의 참 모습에 보다 가까이 다가가려는 목적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좁은 분과 학문의 경계를 넘어 진정한 학문통섭의 사례를 보여주는 경험적 연구성과 중 하나로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를 들 수 있다. 최종 빙하기 이후 지난 1만년 동안 왜 인류 문명의 발전은 각 대륙마다 다른 속도로 진행되었는가? 왜 아프리카나 아메리카가 아니라 유라시아 대륙에서 먼저 문명이 발달하고, 이 지역의 민족들이 여타 대륙을 지배해 왔는가? 이 질문에 대해 현재 UCLA 지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다이아몬드는 그의 저서 〈총, 균, 쇠〉에서 매우 설득력 있게 답하고 있다. 그것은 어떤 민족들은 총기, 병원균, 쇠를 비롯한 여러 요소들을 발전시켜 남보다 먼저 정치 경제적 힘을 얻은 반면, 어떤 민족들은 끝까지 그러한 힘의 요소들을 발전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이런 차이는 왜 발생했는가? 그것은 각 민족의 생물학적 차이 때문이 아니라 지리적, 환경적 차이 때문이라는 것이 다이아몬드의 설명이다. 다시 말하면 선사 시대부터 동식물의 가축화와 작물화에 유리한 지역, 곧 유라시아 대륙에 살게 된 ‘우연’이 오늘날 세계 문명의 우열을 가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유라시아는 지구상에서 가장 큰 땅덩어리이며, 따라서 처음부터 가장 많은 야생동물의 종을 가지고 있어 이들을 가축화하기에 유리한 조건이었다. 유라시아 대륙이 다양한 동물과 식물을 길들이고 이를 널리 확산시킬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요인은, 다른 대륙들은 대개 남북 방향으로 뻗어 있는데 반해 유라시아 대륙은 동서 방향을 축으로 길게 뻗어 있기 때문이다. 어느 한 지역에서 길들여진 동식물 종이 유사한 위도 상에서는 수천 마일 떨어진 곳까지도 쉽게 퍼져나갈 수 있지만, 위도에 큰 차이가 나면 기후환경이 달라지기 때문에 확산이 어렵다. 따라서 저자는 만일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남단의 원주민과 유라시아의 민족들이 선사시대 때부터 거주 지역이 바뀌었다면 오늘날의 문명화 양태는 정반대가 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책은 1997년 퓰리처상을 수상하였으며 문명의 불평등 기원을 다룬 획기적인 명저로 평가받고 있다. 한국에서도 최근 수년 동안 대학생이 가장 많이 대출한 도서로 꼽히고 있으며, 특히 문명의 불평등 원인을 생물지리학, 생태학, 유전학, 병리학, 문화인류학, 언어학, 역사학 등의 다양한 접근을 통해 명쾌하게 규명하고 있어 학문 융복합, 혹은 통섭의 훌륭한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특정 학문의 경계를 벗어나 진리의 참 모습에 보다 가까이 다가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경험적 수준에서 어떻게 가능한지 의문을 가진 이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매우 포괄적이고 전문적인 내용을 학부생들도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을 만큼 평이하게 서술하고 있다는 점도 이 책이 지닌 중요한 미덕 중 하나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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