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호진 경영학과 교수

대학생들이 취업 후 당면하는 고민 중 ‘일과 삶의 균형’에 대한 고민이 있을 것이다. 일은 결국 삶을 영위하기 위한 수단이고 일과 삶의 균형, 특히 충실한 삶의 영위는 중요한 문제다. 일로 인해 삶이 제약된다면 그것은 수단과 목적이 상치되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일은 단순한 삶의 수단이 아니라 성장과 자아실현의 과정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일과 삶의 균형은 우선순위가 높지 않을 수 있다.
 
실제로 직장인들 중 야근과 밤샘을 밥 먹듯이 하면서 높은 성과를 위해 매진하는 부류가 있는 반면, 칼 같은 정시퇴근 이후 여유 있는 삶을 즐기고 주말의 여가를 이용해 취미생활을 갖는 사람도 많다. 어느 쪽이 옳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문제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전자는 후자에 대해 ‘레저형 직장인’이냐고 비아냥거리고, 후자는 전자에 대해 ‘회사노예’라고 폄하한다. 우리는 일과 삶의 균형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고 판단해야 할까?
 
올해 3월 꿈에 그리던 제주대의 교원으로 부임하기 전, 한창 인기를 끌던 ‘꽃보다 할배’라는 프로그램과 관련해 CJ tvN의 이명한 CP와 나눴던 대화가 인상 깊었다.
 
“처음 할아버지들 몇 명을 데리고 5박6일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과정을 10회짜리 예능 프로로 만들겠다는 기획서를 접했을 때 정말 어이가 없고 황당하기까지 했습니다. 예능이 될 수 없는 소재였지요. 그러나 그 기획안이 나영석PD의 아이디어임을 알게 됐고, 그러면 당연히 된다고 믿고 진행했습니다. 나영석PD는 ‘하고잡이’이기 때문입니다.” 이명한 CP의 말이다.
 
본디 하고잡이라는 표현은 뭐든 하고 싶어하고 항상 일을 만들어 하는 사람을 의미하지만, CJ에서는 자신의 일에 미쳐서 집중하는 핵심인재의 표현으로 쓰고 있다. 특별한 재밋거리가 없을 것 같은 여행 과정에서 사소한 소재를 찾아내고 그것을 끈질기게 파고들어 한 회 분량의 재미있는 예능 방송으로 둔갑시키는 나영석PD의 집요함은 보는 이의 혀를 내두르게 한다. 실제로 그는 저녁과 주말 회사를 떠나 있을 때도 주변의 소소한 일들에서 방송거리를 찾아내기 위해 24시간 신경의 끈을 놓지 않는다. 그런 나영석PD에게 일과 삶의 균형이 지켜지고 있느냐고 물어보면 무슨 대답을 할까?
 
자신의 분야에서 성취를 이루기 위해서는 나영석PD와 같은 하고잡이가 돼야 함이 분명하고, 하고잡이들은 일과 삶의 균형 따위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러나 대다수의 직장인들은 상황이 조금 다르다. 직장생활 초반에 주어지는 업무와 이후 높은 직위에서 수행하는 업무는 그 중요도와 역할의 크기 측면에서 천지차다. 결국 다수의 직장인들은 사회생활 초반의 전초전을 거쳐 후반기에 메인 이벤트를 치르는 다소 긴 호흡을 갖게 된다.
 
긴 호흡의 관점에서 지속적인 성과와 역량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마라톤 방식의 접근이 요구된다. 일과 삶의 관점에서 삶의 달콤함에 마냥 취해있는 것이 아니다. 하고잡이가 돼야 한다는 점은 동일하나, 그 방식이 다른 긴 호흡의 장거리 레이스를 뛰는 셈이다. 마라톤 선수가 5km, 10km의 이정표마다 목표 시간대를 설정하듯, 향후 5년 뒤, 10년 뒤의 명확한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되 초반에 지치지 않도록 적절한 페이스를 유지하는 것이다. 장기 레이스 완주를 위한 최적의 속도와 적절한 휴식 등이 장기적 관점의 하고잡이가 되기 위한 필수 사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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