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데오 거리’에서 ‘바오젠 거리’로 변모-거리는 어느새 중국인들로 몸살을 앓고…

▲ 바오젠 거리를 방문한 중국인 관광객들이 모국어로 표시된 간판을 가르키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제주를 향한 중국인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한류 열풍 덕분일까. 신(新)제주 시내 곳곳에서 연예인 ‘이민호’와 ‘김수현’의 마네킹과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이들은 앞서 말한 추측의 근거로 부족함이 없다. 그들의 얼굴에서 찾을 수 있는 행복한 미소는 그리운 임과 재회한 듯 환했다. 삼삼오오 모인 단체 중국 관광객들 중 문신을 한 남성이 왁자지껄 떠들며 손가락으로 어느 장소를 가리킨다. 아마 동료들에게 함께 가자며 의견을 제시한 듯 보였다. 본래 성격이 급한 걸까. 빠르게 이동하는 중국인 무리 속에 슬그머니 몸을 맡긴 채 움직였다.

◇이 곳은 한국입니까, 중국입니까?
 
“@#$%@#$%”. 어렸을 때 봤던 ‘소림 축구’에서 들려오던 언어가 거리 속에서 활보했다. 확실한 사실은 내가 유일하게 듣고 말할 수 있는 한국어와 영어는 아니었다. 바로 중국어다. 하지만 나만 소외된 것일까. 중국어는 거리의 공통 언어인 듯 사람들은 어색함 없이 의사소통을 하고 있었다. 이곳이 바로 제주시 연동에 위치한 ‘바오젠거리’다. 기존에는 제주 로데오 거리였다.
 
2011년 9월, 중국 건강용품기업 ‘바오젠그룹’이 직원 1만1000명을 제주로 관광을 보냈다. 이들로 인해 중국에서 입소문이 돌은 듯 수많은 중국인들이 제주를 찾기 시작했다. 정부는 생각지 못한 관광사업 성공을 기념하기 위해 이 거리를 ‘바오젠거리’로 명명했다. 거리에는 육안으로도 한국인보다 중국인이 훨씬 많아 보였다. 자세한 통계로는 차이가 얼마나 극명할까.

◇거리의 상점가, 요우커 입맛 맞추다.
 
정체불명의 언어는 바오젠 고객들의 심(心)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곳곳에서 사람들을 호객하는 행위가 이뤄졌다. 손님은 역시 왕이었던 것일까. 왕들을 모시기 위한 점원들의 행동은 안타까움과 열정을 동시에 자아냈다. 지금까지 봐왔던 호객행위와 다른 점이 있다면, 국어가 아닌 중국어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중학생 때 친구들과 함께 인천 ‘차이나타운’을 방문한 기억을 떠올렸다. 그 당시 아주 유명했던 중국 전통 음식점에서 밥을 먹었다. 회전 식탁을 돌려가며 친구들과 왁자지껄 떠들었던 추억에 젖었다.
 
바오젠거리에서 중국 음식점을 찾기 시작했다. 없었다. 정말 없었다. 흔히 먹을 수 있는 고깃집이나 술집, 횟집들이 거리에서 주를 이뤘다. 단순히 게시돼 있는 메뉴판과 점원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중국어일 뿐이었다. ‘차이나타운’은 중국 고유 전통을 부각시켰으나 ‘바오젠거리’는 단순히 중국인 관광객을 유치시키기 위해 조성된 것처럼 느껴졌다. 중국이라는 공통의 범주 속에서 이렇게 전혀 다른 문화로 나눠져 있는 것을 보고 매우 신기했다.

◇언제 열리는 걸까요, ‘바오젠 버스킹’
 
생소한 무대 세트장이 거리에 설치돼 있었다. 규모가 크진 않았지만 관광객들의 이목을 사로잡기엔 충분한 크기였다. 공연의 장르와 향후 일정이 궁금했다. 카페 ‘망고식스’의 야외 발코니에서 친구와 함께 커피를 마시고 있는 어느 여고생에게 물었다. 반가운 답변을 받았다. 거리에서 주기적으로 공연이 열린다고 말했다. 자신도 여름방학동안 공연을 무려 3번이나 관람했다고 밝혔다. 평화통일에 관한 공연이 가장 기억에 남았고, 음악회들도 감상하기에 매우 좋았다고 덧붙였다. 세트장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했다.
 
지난 7월에 열렸던 ‘바오젠 콘서트’의 정보가 게시된 표지판이 보였다. 가을에 열리는 공연 일정을 알고 싶어 제주시청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나와 있지 않았다. 포털사이트에 ‘바오젠거리’라고 검색하자 해당 홈페이지가 나타났다. 반가운 마음으로 공연 일정을 확인했으나 전혀 나와있지 않았다. 당황스러운 마음에 연동 주민센터로 통화를 걸었다. 센터 소속 직원은 “즉흥적으로 공연하는 버스킹을 모티브로 삼아 체계적인 일정표를 게시하지는 않았다”며 “필요하다면 학생에게 표를 만들어 팩스로 보내주겠다”고 말했다. 친절한 직원의 태도에 오히려 미안했다. 그러나 공연을 보고 싶지만 일정을 알 수 없는 사람들의 입장을 상기한 후 직원으로부터 일정표 게시의 약속을 받아냈다.

◇거리가 앓고 있는 남모르는 지병
 
바우젠 거리 중간에 정말 특이한 벌금 부과 경고문이 있다. 경고문에는 △무단행단=2만원 △쓰레기 투척=5만원 △담배꽁초ㆍ껌 투척=3만원 △침 뱉기=3만원 △노상방뇨=5만원 등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 기타 경고문과 다른 점이 없어 보이나, 이 게시판은 중국어도 함께 기재돼 있다는 것이다. 쓴웃음을 지으며 제주서부경찰서 연동지구대에 문의했다. 해당 경관은 “깨끗한 바오젠거리 관광을 돕기 위해 이 경고물을 설치했다”며 “특히 바오젠은 중국인 유동인구가 절대적으로 높아 중국어도 함께 포함시켰다”고 말했다.
 
불법 주차 문제도 심각해 보였다. ‘바우젠 거리’의 또다른 이름은 “차 없는 거리”다. 현재 공사를 진행하고 있는 ‘칠성통’도 이 거리를 모티브로 삼았다. 하지만 거리 곳곳에 보행자들의 통행을 방해하는 차량들이 많이 보였다. 특히 상점들이 많아 물품을 조달하는 큰 트럭들을 자주 목격할 수 있었다. 또한 도내 대부분의 언론사에서 ‘바오젠거리’의 세입자 문제를 다뤘다. 실제 우리 대학 건축학부 김태일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2010년부터 중국인들의 도내 토지 점유율이 급격하게 증가됨을 알 수 있다. 특히 신시가지에 많은 분포가 이뤄져 있어 바오젠거리의 세입자 문제는 당연하게 파생됐다는 사실을 눈으로 볼 수 있었다.
 
바오젠거리는 정말 ‘중국인’만을 위한 거리다. 중국어로 적혀 있는 간판과 제품 설명들은 신비함과 함께 쓸쓸함을 내게 선사했다. 본래 신시가지의 문화를 도맡던 거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요우커를 상대하기 위한 거리로 변질된 것처럼 보였다. 심지어 로드샵이나 패션 브랜드 상점들에는 중국인 점원들도 종종 있었다. 제주도가 국제자유개발도시로 탈바꿈 돼 관광사업이 발전한 것은 사실이나 제주 전통의 문화가 점점 사라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항간에는 ‘차이나 머니’로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많다고 말한다. 그래도 심란했다. 직접 느끼지 않고 서야 도민들의 안타까움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계속된 취재로 목이 탔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인근 편의점으로 발길을 돌렸다. 시원한 이온음료를 구매하기로 다짐한 뒤 문을 열었다.
 
“Ni-hao!”. 점원이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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