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윤용택 철학과 교수

▲ 사회의 공익적 이익을 배제하고 개인의 이기주의로 환경을 소비하면 사과나무 한 그루도 안 남을지도 모른다.

◇철학적으로 본 환경과 환경보호는 무엇인가?
 
환경이라는 의미는 영어로 environment, 한자로 ‘두를 환’자를 써 환경(環境)이다. 모두 주위를 둘러싼다는 의미입니다. 그럼 무엇을 둘러치는 거냐하면, 인간을 둘러친다는 겁니다. 인간을 둘러싼 모든 것들을 환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환경’이라는 단어 자체에 다분히 인간중심적인 생각이 들어있다고 봐도 됩니다.
 
‘환경보호’라 하면 대체로 인간에게 어떻게 유익한 환경을 조성할 것이냐 여기에 초점이 있죠. 물론 인간이 아니라 개구리를 위한 환경이 있을 수 있죠. 하지만 ‘환경보호’는 인간을 위한 환경을 보호하자는 것이 강하게 들어있습니다. 따라서 요즘은 환경이라는 말 대신 생태라는 표현을 씁니다.
 
생태계는 영어로 ecosystem입니다. 이 단어의 접두사 eco-의 어원은 oikos라는 고대 그리스어에요. oikos는 집, 거주지라는 뜻입니다. 생태계는 인간뿐만 아니라 다른 생명도 또 물, 공기, 바위와 같은 무생물까지도 그 요소들이 하나의 집을 이뤄 아우르는 것을 일컫습니다. 그러므로 생태계에서는 서로 다른 생명과의 ‘관계’를 강조합니다.

◇환경보호는 무엇인가?
 
환경보호라는 말보다 환경보전이나 환경보존이라는 말을 씁니다. 보전과 보존은 비슷한 것처럼 보이지만 다분히 다릅니다. 보전(保全, preservation)은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호하자는 겁니다. 보존(保存, conservation)은 인간의 관점에서 환경을 잘 보호하는 것으로 동의어로 ‘보호관리’라고도 합니다.
 
〈어떻게 보면 보전이 보존보다 더 강한 의미를 가진 것인가요?〉 그렇죠. 보전의 관점에서는 자연 상태가 좋다고 한다면 자연의 순리대로 그대로 맡겨두는 거죠. 그렇지만 사람들은 자연을 이용하려 합니다. 자연을 좀 더 인간에 이롭게 활용한다는 측면에서 보호관리를 하는 거죠. 이를테면 곶자왈 같이 인간에 이롭던 그렇지 않던 다양한 생물 종들이 혼재된 상태 그대로 보호하는 것을 보전이라 하고, 사람이 황폐화된 땅에 숲을 조성하는 인공림은 보호관리의 측면이라고 볼 수 있겠죠.

◇환경보호와 파괴의 기준은 어떻게 되나?
 
보호와 파괴는 분명히 구분이 되겠죠. 인간의 관점에서 보호관리를 넘어서 개발을 하는 것은 파괴에 해당된다고 봅니다.
 
개발의 문자적 의미는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곶자왈을 개발한다 생각해 봅시다. 과거에는 가치가 어느 정도 있었죠. 땔감을 얻거나, 약초와 같은 야생식물을 채취하고, 동물을 방목했죠. 그 당시는 곶자왈이 쓸모없는 땅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땔감을 때지 않아도 되고, 야생식물도 캐지 않고, 동물도 키울 필요가 없어졌어요. 그래서 가치가 낮게 평가됐죠. 그래서 개발론자들은 숲에서 버섯이나 약초를 캐면 얼마나 캐겠느냐, 골프장을 만들고 관광시설, 레져단지를 조성해야 더 많은 가치가 나오는 거라고 생각해 개발하는 것이죠.
 
그런데 가치라 하는 것이 알았을 때와 몰랐을 때가 상당히 달라지거든요. 그냥 기능이 없는 그런 역할을 하는 곳으로 생각을 했는데, 나중에 알면 알수록 가치가 무궁무진하다는 걸 알게 되죠.
 
예를 들어 곶자왈의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지하수 함양기능입니다. 제주도에서 지하수는 매우 중요한데 그것을 만들어 내는 곳이 곶자왈이랑 오름이에요. 비가 오면 그 빗물 100%가까이 지하수로 흡수됩니다.  아스팔트가 깔린 땅은 비가 오면 흡수하지 못하고 흘러 바다로 가잖아요. 그리고 산에서도 비가 많이 오면 물이 내로 모여 넘치잖아요. 그러면 빗물이 다 담아내지 못하고 하천으로 모여 결국 바다로 흘러가요. 또 다른 지역에 비해서 식생이 상당히 다양한 지역이에요. 남방계식물과 북방계식물의 서식지가 만나는 지점이 제주도에요. 그 식물들이 우거진 곳이 곶자왈이에요. 그만큼 식물들이 다양하면 동물들도 다양해질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제주도의 허파노릇을 하는 곳이 곶자왈입니다. 그 동안 돈으로 환산되지 않은 그 가치들을 다 모아 경제적 가치로 환산해보면 엄청난 거죠.
 
숫자적으로 비교를 해보면, 제주대가 1평방킬로미터(1㎢), 30만평이에요 이게 골프장 하나 크기인데. 1평방킬로미터당 경제적 가치가 얼마나 되냐 봤을 때 곶자왈 같은 숲은 연간 17억원의 가치가 있어요. 거기에는 여러 복합적인 것이 있겠죠. 1평방킬로미터의 감귤 밭이 있을 때 얻는 연간 순이익이 4억5000만원임을 고려했을 때 숲은 경제적으로도 엄청난 가치가 있는 거죠.

◇이렇게 경제적으로도 가치가 높은데 왜 개발하려는 걸까요?
 
환경의 주인은 누구냐? 모두입니다. 이게 바로 환경이 어려운 점이에요. 제주의 대부분의 땅은 사유화됐고 심지어 오름이나 곶자왈도 개인이 소유하는 곳이 많아요. 환경은 공유하는 것이고 혼자만의 것이 아니에요. 내가 숲을 1평방킬로미터를 가지고 있다 고했을 때 그 17억원이 내게 오는 것이 아니거든요. 그것은 사적 가치가 아니라 공익적 가치에요. 그런데 여기에 허점이 있습니다. 모두가 주인이다 하면 모두가 자기 맘껏 이용해도 된다는 논리가 생기거든요.
 
환경 철학분야에서 가렛 하딘(Garrett Hardin)의 ‘공유지의 비극’이라는 유명한 논문이 있어요. 소 100마리가 들어갈 수 있는 한 목초지가 모두에게 개방되어 있어요. 100명의 사람이 1마리 씩 키우면 딱 정당하죠. 그런데 욕심이 생겼어요. 소를 몇 마리 더 키우면 나에게는 그 만큼이 이득이 있고, 그로 인해 생기는 손해는 100분의 1이 되기 때문에 상당한 이득이죠. 문제는 모든 사람들이 같은 생각을 한다는 거죠. 결국 땅은 황폐화되고 남은 건 없죠.
 
공유지에서 개인의 극단적인 이기주의는 공동체가 파멸되고 그로인해 그 개인까지도 파멸되는 상태까지 이르게 되는데 환경도 이와 똑같다는 거죠. 이것은 국가와 국가 간에도 해당됩니다. 중국, 일본, 한국 어느 지역에서든 개발을 많이 하면 대기가 오염되고, 해양이 오염되며, 방사능이 퍼질 수 있습니다. 문제는 세 나라 모두 자국중심으로 생각을 하는 거죠. 대기가 오염됐다 해도 경제적 이득은 자기 나라가 얻는데 손해는  세 나라가 얻어 갖는다. 그러면 세 나라 모두 개발중심으로 가게 되죠. 결국에는 모두가 파괴되는 거에요.  그래서 그와 관련된 많은 고민이 있는 거죠. 협약을 맺어 어느 선까지 반드시 지켜야하는 서로의 약속이 필요해요.

◇어떤 환경적 현상이 일어날 때 여러 개체에 영향을 끼친다. 그렇다면 환경은 누구의 관점으로 봐야하는가?
 
그것은 아직도 논란이 많아요. 예를 들어서, 우리나라와 미국을 비교해보자면, 산불이 낫을 때 보통 사람들은 꺼야한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자연현상에 의해 생겨난 산불일 수도 있고, 사람의 부주위로 일어난 산불이 있을 수 있잖아요. 공기가 건조하면 나뭇가지의 마찰로 인해 정전기가 일어나 산불이 일어날 수 있어요. 이 때 어떻게 해야 하느냐. 어떤 사람들은 그것도 자연인데 그대로 놔둬야 하지 않느냐. 산불이 일어나서 손해 보는 것도 있지만 이득 보는 것도 있거든요. 예를 들어서 껍질이 아주 두꺼운 씨앗 같은 경우 보통에는 싹을 못 틔우다가 산불이 오면 껍질이 벗겨져 싹을 틔울 수 있어요. 그러면 그 씨앗입장에서는 산불을 기다리고 있는 거겠죠.
 
여기서도 보전이냐 보호 관리냐 하는 문제가 생기겠죠. 자연계가 순환할 때 인간이 어디까지 개입해야 되는지를. 지금까지도 어느 것이 정답이다 하는 건 사실은 없죠.

◇과거의 역사를 보면 인류의 발전과 성장은 환경에 반비례했다고 볼 수 있다. 성장과 환경보전은 양립할 수 있는 요소인가?
 
환경과 경제 성장은 반비례한다고 보지만 꼭 그렇다고도 볼 수 없어요. 초기에는 급속하게 환경이 파괴되죠. 근데 또 어느 시점이 지나면 자신들이 파괴해 오염된 생태계에 대해서 반성을 하게 되죠. 이 미세먼지 속에서 숨을 쉴 수 없고, 오염된 물을 먹으면서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거죠. 그래서 어느 경제 수준에 이르게 되면 환경을 다시 생각하게 되고 환경과 생태계를 보존해야한다는 인식을 하게 됩니다. 지금 상당수의 선진국들은 생태 환경이 상당히 좋습니다.
 
하지만 그게 또 제3세계 후진국의 환경을 훔친 것 아니냐는 생각도 합니다. 예를 들면, 일본에서 젓가락을 많이 사용하는데 그 젓가락을 만드는 나무들은 일본 것이 아니고 인도네시아와 같은 동남아 국가에서 올 겁니다. 그러면 인도네시아의 나무를 자연을 훼손하면서 자신들의 환경을 지킨 거죠.
 
경제와 생태는 상당히 유사합니다. economy, ecology. 두 단어 모두 eco-를 접두사로 사용하죠. eco는 살림살이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경제가 집안 살림살이를 뜻하는 거라면 ecology는 좀 더 넓은 차원에서 생태계 나아가 지구의 살림살이를 말하는 거죠.

◇‘생태적 합리주의의 철학적 기초’에 따르면 “인류의 지속가능성이 경제적인 효율성, 생산성, 합리성보다 상위의 가치”라는 취지의 내용이 있다. 이에 대한 근거는 어떤 것이 있나?
 
효율성의 개념 자체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합니다. 지금까지는 속도 중심의 경제적 가치를 얘기 했거든요. 빨리빨리 더 많은 상품을 생산한다는 것은 더 많은 자원을 더 빨리 고갈시킨다는 것이거든요. 그리고 그것이 쌓이고 쌓여 더 많은 폐기물을 빨리 양산하는 거죠. 빨리라고 하는 것은 인류의 지속가능성과는 반대의 길이죠.
 
그래서 효율성의 개념이 달라져야 한다. 더 적은 자원을 가지고 더 적은 에너지를 가지고 똑같은 상품을 만들어 낼 수 있어야 되는 거죠. 또 더 적은 폐기물을 만들어내는 제품을 개발합니다. 이러한 방식의 생활양식을 우리가 채택해야 되죠. 그 합리성의 기준을 속도에서 더 적은 엔트로피를 위해 나아가야 합니다.

◇상당수의 대중들은‘환경을 보호해야 한다’는 의견에 상식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실생활에는 환경을 하위의 가치로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이유와 해결하기 위해 어떠한 방법이 필요한가?
 
제가 철학을 공부하게 된 이유는 ‘왜 사람들이 선이 좋다는 걸 알면서도 왜 선을 해하지 않고, 악이 나쁘나는 걸 알면서도 왜 악을 행할까’ 그것이 알고 싶어서 철학을 공부하게 됐거든요. 제 물음과 질문과 같은 맥락 속에 있습니다.
 
사람들은 우선 무지에 의해 그럴 수 있다고 봅니다. 또 다른 이유는 개인적인 이득 때문에 알면서도 안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행위로 인해 개인이 같게 되는 이익이 사회적 피해와 대비했을 때 더 크기 때문에 그런 행위를 하는 겁니다. 개인의 사소한 이익을 위해 사회와 집단에 피해를 입히는 거죠.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 강력한 법적인 제재가 필요하다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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