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다보면 언젠가 갈래길에 서서 선택의 시간을 마주할 때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선택의 불편함을 마주할 때, 이를 회피한 채 결정을 내리지 못하거나 타인에게 결정을 맡기고 따라하는 경우를 많이 겪을 것이다. 

과유불급, 정보의 바다를 넘어선 홍수 속에 사는 우리들에게 선택은 참으로 어렵다. 신뢰의 대상이였던 매체조차 이젠 의심하고 비판적으로 봐야 하는 현대에서 ‘잘못된 선택은 아닐까’, ‘더 나은 대안이 있지 않을까’ 등 선택에 갈팡질팡하는 우리들의 모습은 언뜻 당연하게만 비춰보일 수 있다.
 
여러 선택의 갈림길에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뒤로 미루거나 타인에게 결정을 맡겨버리는 이런 선택 장애, 결정 장애 상황을 ‘햄릿 증후군’이라고 한다. 실제 우리 주변에선 결단을 내리기보다 선택과 비선택 사이의 회색지대를 맴도는 ‘햄릿족’이 적지 않다. 햄릿족은 정보과잉시대에 어느 것도 결정하지 못한 채 끊임없이 망설인다. 따라서 이들은 대개 인터넷 공간의 불특정 다수에게 선택과 결정을 부탁한다. 그 모습이 마치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로 고민하는 햄릿을 떠올리게 한다. 끊임없이 망설이기만 하는 우리들의 심리를 ‘햄릿 증후군’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이런 망설임 속에서 우리는 베스트 셀러를 추종하고 포털에서 남들이 많이 본 뉴스와 검색어를 따라 읽으며 자기 기호인냥 생각한다. 심지어 각각의 취향을 분석해 그에 맞는 선택을 추천하는 큐레이션서비스가 최근 많은 사람들에게 각광받고 있는 문제에까지 이르렀다. 선택의 폭이 다양하고 넓어진 탓에 간단한 것조차 쉽게 결정하지 못하고, 선택한다는 것에 스트레스를 느껴 나타난 이런 변화들이 우리의 생활을 완전히 바꿔나가고 있다. 결정장애가 사소한 신변잡기를 넘어 인생의 중요한 문제를 결정할 때도 나타나니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위험을 생각치 않고 눈 앞에 편안함에 취해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모른 채 선택의 편안함 속에 파묻혀 사는 것이다.
 
어느날 아프리카에 서식하는 ‘스프링벅’이 떼죽음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아프리카의 건조한 초원에서 풀을 뜯으며 생활하는 스프링벅은 수 백 마리의 무리를 형성하고 시속이 94km나 될 만큼 빠른 발을 가지고 있다. 그런 스프링벅에게 일어난 떼죽음, 이 현상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선천적으로 식욕을 타고난 스프링벅은 무리를 지으며 풀을 먹는다. 그러다 뒤에서 풀을 먹던 녀석이 앞선 녀석보다 많은 풀을 먹기 위해 더 빨리 앞으로 달려 나갔고, 앞에 있는 녀석은 자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그보다 빨리 앞으로 달려 나가게 됐다. 그렇게 수 백 마리가 어느새 목적을 상실한 채 사력을 다해 달리다가 강이나 절벽으로 뛰어 들어가 떼죽음을 당했던 것이다. 이렇게 맹목적으로 이유도 모른 체 따라 하기만 급급한 모습을 ‘스프링벅 현상’이라고 한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직면한 선택을 미루고 남들과 똑같은 생활을 추구하다 보면 인생의 중요한 문제를 결정할 순간에도 우리는 멍하니 앉아 남의 선택만을 바라만 본 채 어리석은 판단을 따를 수 있다. 우리 삶에서 선택의 주체가 아닌 객체로 전락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옛날에는 웃어른 말씀이나 사회적 관습에 따라 살면 됐기에 선택할 일이 많지 않았다. 현대사회에 접어들며 오늘 점심 메뉴를 시작으로 모든 것이 선택의 연속이다. 선택의 가지수가 많을수록 불만과 스트레스는 많아지고 선택에 따른 위험과 후회로 실망도 커진다. 그러나 완벽한 선택이란 이 세상에 없다. 우리의 삶이 우리들의 의도에 따라 좌우되진 않지만 나의 주관적인 선택에 의해 결정한다면 어떤 역경도 이겨나갈 수 있을 것이다. 
 
어떤 결정에도 반드시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은 따라온다. 그러나 자기결정에 두려워하지 말고 의미있는 삶을 살기 위한 고민이라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우리 삶의 주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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