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고등학생 때였던 듯한데, 김소운의 「가난한 날의 행복」을 보며 가난 속에서도 웃음과 여유를 잃지 않고 행복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큰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수필을 읽으며 받았던 감동은 시나 소설을 읽으며 받았던 감동과는 질감이나 강도에 있어 다소 차이가 있었다. 

안성수의 <수필 오디세이>는 지금까지 문학을 읽고 연구하면서도 그 감동의 비밀을 풀어볼 염조차 내지 못 했던 이유를 어렴풋이나마 깨닫게 해준 책이다. <수필 오디세이> 저자의 말에 의하면, 그것은 ‘누구나 쓸 수 있는 문학’이라거나 ‘붓 가는 대로 쓰는 문학’이라는 수필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에 내가 사로잡힌 결과였을 것이다.
 
“수필 시학을 찾아서”라는 부제를 단 <수필 오디세이>에서 저자는 수필이라는 장르가 알려진 것처럼 그렇게 누구나 쉽게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수필이 문학의 한 장르로서의 위상을 충분히 가지고 있으며, 독립된 여느 장르와 마찬가지로 그것만의 고유한 이념과 작법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다소 도발적으로 들릴 수도 있는 저자의 이 말이 만만치 않은 하중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20여 년에 걸친 강단과 창작 현장에서의 치열한 고민 과정에서 체득된 경험적 진실이 그곳에 담겨 있을 뿐 아니라, 문학 이론은 물론, 철학, 역사, 종교, 과학 등 다양한 영역의 이론적 논거들을 활용해 그것이 치밀하게 논증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책의 문면을 통해 저자가 보여주는 놀라운 사고의 진폭은 자못 경탄을 자아내기까지 한다. 서양 고대의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바슐라르에 이르기까지, 선비정신의 전통에서부터 포스트모던 시대의 문학적 실험까지, 그리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서부터 신생 학문인 문학치료에 이르기까지, 말 그대로 다양한 시공간은 물론 학문적 영역을 가로지르는 저자의 자유로우면서도 방향을 잃지 않는 여정은 그것 자체로 매우 흥미진진한 통섭의 과정을 보여준다.
 
그러면 오디세우스의 여정과도 같은 저자의 오랜 통섭의 결과 구축된 수필 시학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을까? 저자는 수필의 장르적 이념을 진실한 경험에 오랜 반성적 사유와 미적 상상력을 가미함으로써 세계와 우주의 보편적 진리를 체득하는 과정으로 정리한다. 저자는 이런 경지를 ‘영성체험’ 혹은 ‘절정체험’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저자는 수필이 독자를 이 같은 ‘절정 체험’에 이르도록 이끌기 위해 다양한 작법을 활용한다고 말한다. 인간 언어의 한계를 넘어선 ‘영적 체험’을 표현하기 위해 수필에서 활용되는 고도의 반어는 수필 작법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저자는 수필 시학이 세계와 우주의 진리를 계시하는 철학성과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고유한 작법이 함유한 문학성의 변증법적 통합을 통해 구축될 수 있다고 결론짓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이런 통합의 과정이 이미 완수된 것이 아니라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며, 그런 의미에서 수필은 과거의 문학이 아니라 미래의 문학이며 완성된 문학이 아니라 가능성의 문학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자신의 수필시학 탐구의 길을 50년으로 설계했다고 한다. 그리고 <수필 오디세이>는 그 과정의 “중간휴게소”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수필 오디세이>가 보여주는 논의의 풍성함과 높이만으로도 은근한 압박을 느끼는 나로서는 저자의 남은 탐구의 길, 아니 차라리 구도의 길에 도달하게 될 도저한 경지가 얼마나 멀고 높을 것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후학은 다만 묵묵히 그 뒤를 따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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