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제주대학교 신문사의 편집국장이며 예비 언론인이다. 대학에 처음 입학해 학생기자를 선택한 순간 목표는 정해져 있었다. ‘학생을 위한 기사를 쓰며, 나의 기사로 누군가가 편한 대학생활을 했으면 좋겠다’ 이 생각을 가지고 2년의 시간 동안 학생기자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학교 생활에 임했다.

그런데 최근 지인이 2016년 2월 신문을 보고 “너희 신문에서 보던 기사가 네이버에 치니까 똑같이 나오던데 그거 너희가 쓴거야?”라는 말을 전했다. 평소 제주대신문을 관심 있게 읽던 지인이어서 그런지 충격은 꽤나 컸다. 2015년까지는 좋은 기사가 많다라고 칭찬했던 분인데 2016년이 되자 마자 쓴소리를 했다.

"여러가지 사정상 어쩔 수 없었다" 라는 변명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나는 그 질문에 어떠한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우리가 쓴 기사가 아니고 보도자료를 기사화한 것이기에 부끄러움을 느꼈고, 우리가 썼다고 말을 하기에는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2년간의 학보사 생활을 하면서 그 순간이 가장 부끄러웠다.

내가 생각하는 대학신문은 학내의 언론기관으로서 진실된 보도를 함은 물론이고 자료들을 재창조해 독자들에게 알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철학이 무너져 버렸다. 지인에게 그 말을 들은 후 ‘내가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지?’라는 스스로에 대한 의문을 던지는 시간은 길어졌다.

21세기는 정보의 바다이다. 이 말은 대학에서도 적용된다.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언제 어디서나 취사선택할 수 있다. 물론 대학신문의 역할 중 하나는 정보의 전달이다.  그런데 여기서 나는 한 가지를 짚고 넘어가려 한다. ‘누구를 위한 정보의 전달인가’라는 점이다. 학교에서 뿌려지는 자료들은 대학신문 외에도 학교 홈페이지, 친구들의 입소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심지어 지역의 일간지로도 확인할 수 있다. 다른매체들과 똑같은 정보를 가지고 같은 내용의 기사를 작성한다면 독자들은 대학신문의 역할에 대해 느낄 수 있을까?

또 하나 기자생활을 하면서 많이 들었던 질문이 있다. “학교 신문이 있어요?”, “주변에 아무도 모르던데”  신문을 만드는 기자로서 처음에는 화가 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 말의 뜻을 잘 파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이 학교신문을 모른다는 얘기는 관심이 없어서도 맞지만 그만큼 신문이 학생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는 소리다. 학교신문을 펼치면 나와는 너무나도 먼 이야기 같은 등 학생들의 무관심을 이끌어내기에 이만큼 좋은 것은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대학신문이 역사를 기록해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독자가 우선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교의 잘못된 점을 비판하거나 흥미성 있는 기사만을 채우자는 소리는 아니다. 목소리를 듣고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실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학신문의 기자들이 변해야 할 것이다. 학생기자들은 독자의 알권리를 위해 열심히 뛰어다녀야 한다. 전화 한통, 클릭 한번보다 한번의 발걸음이 독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다. 뉴스가 세상을 보는 창문이라면 대학신문은 학교를 바르게 내다보는 창이다. 학생기자들이 같은 말을 반복하는 앵무새를 싫어하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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