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했던 천년 역사 자랑했던 제주읍성 일대 원도심… 인구공동화 현상 심각-무분별한 재개발이 아닌 과거의 흔적과 현대의 문화가 결합된 재생이어야

▲ 옛 제주의 행정 업무 처리를 담당했던 목관아지. 투명한 호수에 비치는 곳은 연회장소로 사용됐던 우련당. 뒤쪽에 있는 건물은 절제사가 사무를 보던 홍화각이다.

겨울이 점차 물러가고 있다. 올해는 제주를 방문한 관광객 전체를 가둘 정도로 눈이 많이 내렸다. 찬바람도 쉴 새 없이 불었다. 하늘은 이렇게 혹독한 날씨를 견딘 제주에게 보상을 내린 것일까. 유채꽃이 만개하고 맑은 하늘이 모습을 비췄다. 사람들의 옷차림이 가벼워졌다. 도민과 관광객들 너나 할 것 없이 아름다운 제주를 만끽하기 위해 모여 들었다. 제주의 외모를 담당하는 풍경과 함께 천년동안 제주를 우직하게 지키고 있는 제주다움이 있다. 바로 ‘원도심’이다. 보존과 재개발의 기로에 서 있는 원도심을 기자가 방문했다.

◇제주의 역사를 품은 원도심

사실 구도심이 맞는 표현이다. 옛 시가지를 뜻하며 세월의 흔적을 나타내는 단어다. 다만 ‘구(舊)’라는 문자가 노후되고 낙후 됐다는 부정적인 표현이라는 점 때문에 원도심이라는 용어가 탄생했다. 실제로 많은 도민들은 원도심 속 구제주보다 연동과 노형동 등 신제주 지역을 좀 더 발전된 곳으로 인식하고 있다. 원도심은 제주시 일도1동, 이도1동, 삼도2동, 건입동 등 옛 제주읍성 일대의 도심지역을 일컫는다. 역사학계에 따르면 제주성의 원도심 지역은 고려시대부터 현대까지 약 천년간 제주 정치ㆍ사회ㆍ경제ㆍ문화 등을 활성화시킨 중심지다.

예로부터 제주성은 외적들의 침입으로부터 도민들을 안전하게 보호했다. 또한 홍수로 산지천이 범람할 때마다 피해를 입는 도민들을 위해, 당시 정부는 간성 2문까지 증축했다. 탐라국 시대부터 성곽도시의 역사성을 지녔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제주성 근처에는 적지 않은 역사와 문화 그리고 관광자원이 있다.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제주목관아와 관덕정부터 제주성지, 향사단, 오현단 등 제주의 속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즐비하다. 또한 각종 국가지정문화재와 도지정문화재도 제주다움을 뽐내는데 한 몫 기여하고 있다.

◇찬란한 과거는 어디에

원도심은 제주 역사의 중추적인 심장부 역할을 담당해 왔다. 그러나 1980년대부터 신제주지역이 점차 개발되면서 원도심은 천천히 몰락했다. 관공서는 몰론 자영업자들까지 새로운 터전에 자리를 잡기 위해 원도심을 떠났다. 행정과 경제, 심지어 교육까지 신제주에 뺏긴 원도심 지역은 인구가 점차 줄어들었다. 자본이라는 적이 너무 막강한 탓일까. 역사의 보루로서 가장 활성화돼야 할 지역이 힘을 잃어가고 있다. 현연경(생활환경복지학부 4)씨는 “중학생 때 제주대병원이 중앙로 근처에 있어 자주 다녔던 기억이 난다”며 “예전에는 친구들과 만날 때 항상 중앙로가 만남의 장소였으나 요즘은 낡기도 했고 더 놀 곳도 많은 곳으로 눈을 돌린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원도심 지역이 점점 도민들의 관심에서 벗어나고 있음이 이제 실감난다”고 덧붙였다.

버스를 타고 제주시 중앙로 근처에 하차했다. 주말 오후임에도 불구하고 거리는 한산했다. 하하호호 떠드는 여고생들이 서둘러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영화시간에 늦은 듯, 서로가 불평을 하는 모습이 웃기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안타까웠다. 오직 미디어만이 그들을 사로잡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 슬펐다. 선인들의 지혜와 생활 모습이 생생히 담긴 이 거리가 초라해 보였다. 그나마 도민들이 많이 찾는 곳은 동문재래시장이다. 다양한 제주 토산품과 더불어 저렴한 가격탓에 인근 주민들이 애호하는 장소 중 하나다.

◇대표 관광지, 제주 목관아지와 관덕정

중앙로에서 5분 정도 걸었다. 제주 목관아지와 관덕정이 눈에 띄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주변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대부분 관광객들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걷는 속도를 높였다. 제주 목관아지는 제주 목사가 직접 거주하며 관료들과 함께 행정을 처리하는 곳이다.

기업이 여러 부서로 나뉘어 있듯이, 목관아지도 여러 구조로 나뉘어 있었다. 건축물마다 설명문이 게시되어 있었는데,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영어, 중국어 등 외국어 설명도 준비돼 있었다. 그리고 목관아지를 파헤쳐 볼 수 있는 작은 박물관도 있었다. 이외에 많은 돌하르방과 감귤 나무들이 제주의 모습을 나타내기에 충분했다. 건축물 속에는 그 당시를 재현하기 위해 작업하고 있는 모습의 인형이 있었다.

문화와 역사를 동시에 느낄 수 있었지만 역시 도민들은 없었다. ‘제주도민 무료입장’이라는 파격적인 혜택은 수줍게 자리만 차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실제로 관덕정과 함께 목관아지를 관리하는 직원은 도민들보다 육지 사람들이 많이 방문한다고 밝혔다. 또한 한국인보다 외국인들이 유적을 찾는 경우가 훨씬 많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수치도 제주의 자연 경관을 보기 위해 찾는 관광객 수보다 절대적으로 적다고 했다. 정문 옆, 유적과 함께 제주의 역사를 짚어주는 작은 건축물에 진입했다. 사람들이 손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간결한 연표와 지도가 비치돼 있었다. 파괴됐거나 복원된 건물들의 수도 알 수 있었다. 목관아지를 나와 군사훈련을 담당했던 관덕정으로 접근했다. 유적지를 방문한 많은 관광객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었다.

▲ 원도심 속 이도1동은 과거의 성벽과 현대의 도로가 서로 어울러져 보이지 않는 교류가 일어나는 듯 하다.



◇역사담은 벽화와 건물 그리고 예술인

다시 걸어서 동문시장을 지나 제주 성지 근처에 도착했다. 도로 옆에 강직하게 서있는 성벽은 내 마음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지금도 이렇게 든든한데, 적들의 침입이 잦았던 과거에는 얼마나 의지가 됐을까. 익숙한 탓일까? 성벽 아래를 지나는 도민들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목적지를 향했다. 셔터를 계속 누르는 도중 연세가 지긋한 할아버지께서 다가왔다. 목적을 밝히자, 원도심에 관한 일화를 말씀해 주셨다. 일제강점기 시절, 개발을 위해 원도심 일대 건물이 철거되고 있었다며 그 당시를 회상했다. 어렸기 때문에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했으나 공부하면서 무너지는 억장을 감출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일도동으로 진입하자 건물에 그려진 벽화가 눈에 띈다. 제주에서는 신천리의 벽화마을이 유명한데 이에 버금갈 정도로 아름다웠다. 주로 옛 제주의 모습과 선인들의 생활 모습이 담겨 있었다. 또한 제주의 자연 경관을 담은 곳도 있었다. 실제로 원도심에는 예술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아이들이 천사 같은 미소를 지으며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더 걷다보니 또 다시 성벽이 나왔다. 역사적인 흔적과 생동감 있는 문화가 결합된 모습이었다. 이것은 개발이 아닌 ‘재생’이다. 낙후됐다고 무작정으로 바꾸지 않고 일보 양보해서 맞춰간다면 아름다움이 배가 됨을 보았다. 해가 점점 질 때, 다시 칠성로에 도착했다. 아름다운 선율이 귀에 들린다. 탐라문화광장 앞에서 기타를 튕기는 연로한 노인이었다. 그는 제주 민요를 노래했다. 구경꾼들은 많지 않았으나 모두가 노인의 목소리에 빠져 들었다.

◇꾸준한 관심과 사랑만이 유일한 대안

지난 1월, KT&G와 우리대학 취업전략본부가 주관한 취업캠프가 강원도 춘천에서 열렸다. 캠프에서 ‘원도심 살리기’라는 주제로 조아영(언론홍보학과 4)씨가 발표했다. 그는 “원도심의 핵심 관광지인 관덕정을 중심으로 새로운 민속마을을 조성해야 한다”며 “용인에 있는 한국민속촌처럼 배우들도 활용할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조명으로 현재 어둡고 슬럼화 돼 있는 원도심 거리를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원도심 자체가 제주 역사의 의미가 깊어 죽어가도록 방치하지말고 반드시 살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무작정 재개발을 하는 것이 아닌 역사를 간직한 채 새로운 탈바꿈을 하자는 주장으로 들렸다. 정부도 원도심을 살리기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제주도는 국토교통부가 공모한 ‘2016년도 도시재생공모 근린재생형사업’부문에 선정돼 2020년까지 5년 동안 200억원을 받는다. 오로지 원도심을 재생하기 위한 예산을 받아낸 것이다.

최선의 대안이 마련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의 의견수렴이 필수적이다. 즉 도민들의 꾸준한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다. 실제로 우리대학 탐라문화연구원에서는 제주가 인문도시로 성장하기 위한 사업에 동참하기도 했다.. 많은 예술인들도 원도심으로 이주하며 터전을 재생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제주시가 발전되고 확장되면서 도심공동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좁은 땅에 뭉쳐있다가 개발로 확산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나, 역사까지 내팽겨치고 있다면 문제다.

번듯한 고층 건물과 신세대의 건축물이 매력적이라는 이유로, 혹은 시간이 흘러 후손들이 낡았다는 이유로 우리가 살았던 터전을 훼손한다고 생각해 보자. 기분이 좋지는 않다. 투명한 바다를 배경 삼아 자신의 모습을 담아내는 사진 촬영만이 여행이 아니다.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만끽하는 식사만이 역시 여행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손을 잡고 선인들의 생활 터전을 걸어보자. 역사를 여행하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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