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제주인 생활사 연구 이지치 노리코 교수를 만나다

▲ 이지치 노리코 교수가 취재진에게 자신의 제주 유학 생활 이야기가 담긴 책을 소개하고 있다

제주대학교 신문방송사는 1월 27일부터 30일까지 일본 오사카 지역으로 해외취재연수를 다녀왔다. 시인 윤동주부터 정착한 재일제주인까지, 오사카는 우리의 아픈 현대사를 품고 있었다. 그 현장의 이야기와 이런 아픈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교육방송 기자들이 생생하게 전해보려 한다.
 <편집자 주>


1월 29일 오사카시립대학 문학연구과 건물에서 만난 이지치 노리코 교수(오사카 시립대 문학연구과)가 기자 일행을 반갑게 맞아줬다. 비행기로 2시간을 날아 도착한 일본 오사카, 그 곳에서 들은 제주 사투리가 무척이나 반가웠다. 그녀는 놀라는 취재진에게 한국어를 배울 때, 제주 사투리를 먼저 배워 제주 말이 편하다고 했다.

◇“여기 앉읍써. 차 드실쿠과?”

“삼춘들 보래 매년 제주도 가는디 작년엔 못 간마씸” 이지치 교수는 인터뷰하는 내내 ‘삼춘’이라는 단어를 즐겨 사용했다. 두 차례 제주 유학을 하면서 알게 된 사람들을 개인 명칭이 아닌, ‘삼춘’이란 보편적인 호칭으로 부르는 것이다. 평범한 재일제주인들, ‘제주 삼춘’들의 역사가 알고 싶어 연구를 시작했다는 그녀다운 단어였다.

재일제주인도 아닌 토종 일본인인 그녀가 제주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차별에 무관심한 시대,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알고 싶었다.

연구를 시작하기 전까지 그녀의 일생은 차별과는 거리가 멀었다. 일본이 경제적으로 부흥하던 시기라 취업 걱정도 없었고, 국제화 흐름에 따라 고베시외국어 대학교 영어영미학과를 다녔다. 재일코리안, 또는재일제주인이라는 집단이 있는 것도 연구를 시작할 때야 알았다고 한다.

그런 그녀가 사회적 차별에 대해 눈을 뜬 것은 영국 유학시절 떠난 배낭여행부터였다. 중국 난징을 갔을 때 들린 난징 대학살 박물관에서, 방치된 해골들을 보고 역사와 내셔널리즘에 대해 연구하려는 마음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연구를 준비했다. 당시 쟁쟁했던 회사들의 취업 기회도 포기하고 사회학 대학원으로 진학한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차별’에 대한 근대사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논문을 식민지 내용으로 적고 싶었어요. 그래서 주제를 고민하다가 교수님께 상담을 요청하니 그 분이 재일코리안에 대해서 써보는 것이 어떠냐고 했어요. 그 당시에 나는 조선반도에서 온 사람들이 있는 줄도 몰랐어요.”

연구를 시작한 후 그녀의 관심사는 ‘재일코리안들의 귀화’였다. 한국인들이 어떤 이유로 타국에 옮겨와 살게 됐는지가 궁금했던 것이다. “그 당시가 1989년인데 서점에 가도 재일코리안 서적이 전혀 없었어요. 정말 찾아봤자 몇 권정도? 그것도 그냥 일반서 정도였고” 그녀는 생활사에 대한 자료가 없자 오사카에 있는 재일코리안들을 직접 찾아가서 인터뷰를 시작했다.

◇재일제주인과의 만남, 그리고 제주 유학

그녀가 지금 몸담고 있는 오사카 시립대학으로 온 것도 그 때였다. 대학원 교수의 후배교수를 소개받게 됐는데, 그도 생활사 연구자였던 것이다. “석사 때 이곳으로 와서 ‘재일 코리안 1세 여성의 생활사’를 주제로 논문을 준비했어요. 근데 인터뷰를 해야 하잖아요? 그 당시에 이코노구에 가면 4분의 1이 재일제주인이라길래 찾아갔죠.”

이지치 교수는 상대와의 두터운 신뢰관계를 바탕으로 한 인터뷰를 원했다. 그래서 그 당시 사회복지법인 성화사회관에서 운영하는 일본어 교실에 참가했다. 일주일에 두 번 야간 일본어 수업을 들으러 오는 재일제주인 할머니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쳤다. “내가 간 곳이 유난히 재일제주인 할머니들이 많은 곳이었어요. 나는 할머니들에게 일본말을 알려주고 할머니들은 내게 한국어와 한국 얘기를 해줬는데, 그걸 녹음하고 들으면서 공부했어요.”

그렇게 할머니들을 인터뷰하면서 그녀는 ‘일반인들의 입장에서의 일제시기와 해방시기 제주 역사’를 알게 됐다고 한다. 그리고 할머니들이 살았다던 제주에 직접 찾아가 그 곳을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녀는 알고 지내던 재일제주인 3세와 야간중학교에 계셨던 할머니의 도움을 받아 구좌읍 행원리로 유학을 떠났다. 조선어 사전 하나만을 들고 떠난 그녀를 마을 주민들은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제주대학교 유학시절동안 그녀는 행원리 삼촌들을 따라 농사 품앗이나 제사 준비, 심지어 물질까지 도왔다.

이런 생활을 통해 그녀는 현대사 속 제주인들의 이야기를 알게 됐다. 전쟁이나 분단, 4.3과 같은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계속 재일제주인들과 관계를 유지하고 왕래를 했다는 것에 주목했고, 그들의 인식을 논문에 담으려 노력했다. 이 자료를 바탕으로 2년을 연구한 끝에 그녀의 박사 논문이 탄생한 것이다.

▲ 그녀의 책 마지막에는 제주도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이 적혀 있었다


◇재일제주인 5세 시대 … 앞으로의 연구는.

그녀는 그동안의 현대사 연구가 국가적인 시각에서만 이뤄져 왔다고 말했다. 그래서 재일제주인 연구는 해당 시기의 또 다른 역사를 보여주기 위해서 필요하다는 것이 그녀의 주장이었다. 그렇다면 5대째를 맞는 재일제주인 사회에서 이 연구의 방향과 갖는 의미에 대해 그녀에게 물었다.

“요즘 젊은 재일제주인들이 남과 북이 분단된 상황에서 어떤 움직임을 보이는지를 잘 지켜봐야 해요. 지금 재일제주인 가족을 보면, 조선 국적 할아버지 밑에 한국 국적의 아들이 있는 집도 있어요. 이게 현실이에요. 이런 복잡한 가정사와 복잡한 세계정세 속에서 어떨지가 궁금해요.” 그녀는 젊은 세대들의 정치, 사회적 입장이 앞으로의 상황을 크게 좌우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젊은 교포들은 역사보다는 자신의 취업과 관련된 관심사에만 문제를 두는 것 같아요. 국가문제는 그대로 생각해봐야 하지만, 자신의 정체성처럼 삶에 밀접한 것도 배워야 해요. 자신의 가족 안에 있었던 현실이 일상생활에서 보이잖아요. 그들의 고민을 위해서 생활사 연구는 계속해서 이어져야해요.” 자신의 역사가 어떤 흐름에서 온 것인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자료, 바로 그것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게 되는 것이 그녀가 추구하는 연구의 목적이었다.

◇냉전시대 지역의 생활사 연구 원해

그녀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제주인생활사에 관한 책과 해녀 관련 연구를 진행하던 그녀는 이미 더 넓은 범위의 연구를 생각하고 있었다. “냉전시대 역사와 관련해서 연결되는 지역의 생활사를 연구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바다와 관련된 사람들도요” 이 계획의 일환으로 그녀는 작년 11월달 제주도 잠수사, 베트남 여성, 일본에 있는 재일제주인, 말레이시아 여성들을 모아 인터뷰를 해서 논문으로 발표했다고 한다.

또한 제주도에 대한 관심도 빼놓지 않았다. “제주도 유학시절 직접 겪어봤던 제주도의 상호 도움 문화에 대해서 제가 지금까지 연구했던 것을 기본으로 연구를 이어나가고 싶어요. 수눌음 정신 말이에요.”

그녀는 앞으로 언젠간 제주도로 다시 돌아와 세화리 마을사를 연구하면서 수눌음 정신을 다루고 싶다고 했다.

정말 제주도를 제2의 고향으로 여기는 그녀다운 모습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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