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동주를 찾아서

▲ 도시샤 대학에 위치한 윤동주 시비, 그의 시 ‘서시’가 쓰여있다.

“윤동주 시인의 시비가 어디 있습니까?” 선선한 바람에 실려 온 한국말. 영화 ‘동주’가 개봉하기 전이었음에도 도시샤 대학에 세워진 윤동주 시인의 시비를 찾는 발걸음이 적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도시샤 대학은 일본 교토에 위치한 기독교 대학으로 1875년에 설립돼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붉은 벽돌로 지어져 있는 건물들은 교토 안에서는 보기 드문 건축 양식으로 이국적인 느낌을 준다. 본래 윤동주 시인은 연희대학(현재 연세대) 졸업 후 릿쿄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랜 향수병으로 고종사촌이자 단짝 친구인 송몽규가 있던 도시샤 대학으로 전입학 하게 된다. 동경하던 정지용 시인이 다니던 학교였다는 것도 전입학 하는 이유였을 것이다. 현재 도시샤 대학의 윤동주 시인 시비 옆에는 정지용 시인의 시비도 함께 있다.

윤동주 시인 시비에 쓰여 있고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서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잎새에 이는 바람에도/나는 괴로워했다” 이 시를 썼을 때 윤동주 시인의 나이는 갓 스물. 이 시대의 대학생들보다 어렸을 적 쓴 시다. 청소년과 성인, 그 기로에 서있을 때 쓴 서시를 통해 윤동주 시인의 순수성을 엿볼 수 있다.  시를 통해 일제의 굴복한 자신의 부끄러움을 가감 없이 표한한 윤동주. 서시가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는 이유가 아닐까.

윤동주 시인은 저항 시인으로 불린다. 29세 라는 나이에 모진 고문을 받다 죽게 된다. 불합리한 사회 문제에 대해 끝없이 괴로워하며 번뇌하는 모습. 이 시대의 청년들에게 필요한 자세가 아닐까. 상라서는 빛을 발하지 못했지만 순국 뒤 청년 윤동주는 그가 사랑하던 별처럼 시를 통해 우리안에서 끝없이 빛나고 있다. 시비에 깃들여 있는 청년 윤동주의 숭고한 죽음은 여행객을 조용히 묵념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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