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50-60대인 분들에게 ‘평화봉사단’이라고 하면 대뜸 학창시절의 영어 학습이 떠오를 것이다. 아마도 이는 1966년부터 1981년까지 한국에서 활동한 미국 평화봉사단원들로부터 영어를 배웠기 때문이리라. 1961년 케네디 대통령의 주창으로 시작된 평화봉사단은 후진국에서 절실히 필요했던 기술의 보급과 양국 간의 상호 이해증진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16년 금년은 미 평화봉사단의 한국 프로그램 추진 50주년이 되는 해가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한국에서의 이들 활동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시도된 바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다만 이 경우 평화봉사단 출신으로 크게 성공한 전 주한 미국대사 캐슬린 스티븐스와 <한국전쟁의 기원>을 쓴 시카고 대학의 부르스 커밍스 등이 약방의 감초처럼 거론되곤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최근 한국정부가 주도했던 것으로 2008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Peace Corps Revisit to Korea> 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이를 통해 당시의 평화봉사단원들을 한국에 초청해서 양국 간의 친목과 우정을 다시 한 번 다지고 있음을 본다.

이렇게 보면 일단 한미 양국 사이의 상호이해 증진이라는 외교적 성과에 있어서는 대체로 긍정적인 인상을 갖게 되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평화봉사단의 이 외교적 성공을 한국영어교육의 성공으로 바로 직결시켜 생각할 수 있을까의 문제는 고민해 보지 않을 수 없다. 평화봉사단의 이 두 목표는 서로가 연관되어 있는 것이 분명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별개의 문제일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다.

1966년 한국으로 파견된 평화봉사단 제1진에게 배포된 매뉴얼에 한국에서 ‘훌륭한 교사와 훌륭한 친구가 될 수 있도록 하되, 다만 혹시 훌륭한 교사는 될 수 없을지언정 반드시 훌륭한 친구/이웃만은 돼야 한다’라고 명시되어 있는 것을 보면 미국 입장에서 볼 때 그 우선 순위는 어디까지나 외교에 있었던 것 같다.

다시 말하자면 60년대 당시 미국의 외교전략 중 제4부문인 ‘교육문화’ 정책을 수행하기 위한 도구로써의 영어교육으로 봐야할 것 같다. 즉 한국에서의 영어교육은 미 평화봉사단의 본질적 목표는 아니었고, 다만 이를 통한 미국 주도의 한국인의 변화, 특히 미래를 짊어지고 나아갈 한국 젊은이들의 의식변화를 추구하려는 강한 의도가 있었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5년간 한국영어교육의 현장에서 행했던 평화봉사단의 노력은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간 뿌리 깊은 문법위주의 영어교육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음에는 틀림없다. 이들이 도입해온 화청각교수법(audio-lingual method)을 비롯해서 한국인 영어교사들을 위한 교수법 책인 MFT의 저술 및 보급, 그리고 TEFL을 통한 영어교사 연수 프로그램의 운영 등 나름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당시 한국의 전반적인 영어교육환경의 악조건과,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한국의 입시중심의 영어교육이라는 난공불락의 요새를 뚫지는 못했다. 따라서 한국 학생들에게 원어민 영어에의 노출이라는 효과 정도는 있었지만 의사소통을 위한 언어로서의 영어교육체계 자체를 변화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 같다.

이 점을 아쉬움으로 남기고 1981년 미 평화봉사단은 한국의 경제발전을 이유로 들면서 전격 철수하기로 한다. 그러나 당시 광주민주화 운동을 위시한 한국의 불안정한 정국을 고려할 때 그 갑작스런 철수는 전적으로 미국의 정치적 결단이 아니었을까 하는 상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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