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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ㆍ3순례기획>4ㆍ3 영령들이여, 국화꽃 한 송이 받으소서아픔의 역사를 기억하기 위한 4ㆍ3유적지 순례-진정한 평화의 가치 구현돼야
   
▲ 4ㆍ3평화공원에 조성된 행방불명 희생자를 기리는 비석에 여학생이 조화를 꽂고 있다

4월의 첫날, 누군가에게는 그저 짓궂은 장난을 치며 거짓말을 늘어놓는 날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4월은 아물지 않은 상처를 간직한 달이다. 1948년 4월 3일, 1960년 4월 19일, 2014년 4월 16일. 이 날짜들을 보면 어느새 눈가가 촉촉해지는 것을 느낀다. 누가 ‘4’를 죽음의 숫자라고 칭한 것인지, 4월은 유독 아픈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그 중에서도 제주에서 벌어진 4ㆍ3사건은 4월에 일어난 비극적인 역사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봄볕이 따스한 4월 차가운 역사의 현장을 찾았다.

◇순이삼촌이 잠든 곳, 너븐숭이

현기영의 소설 순이삼촌은 4ㆍ3사건의 참혹성과 그 후유증을 고발하면서 오랫동안 묻혀있던 사건의 진실을 문학을 통해 공론화시켰다. 지난 2008년에 정부는 옴팡밭 부지를 매입해 순이삼촌 문학비를 세웠다. 붉은 피로 상징되는 송이 위에 눕혀져있는 비석들은 당시 쓰러져간 희생자들의 모습을 형상화 한다. 비석에는 순이삼촌에서 발췌한 글들이 새겨져 있었다.

소설에서 순이삼촌은 4ㆍ3사건의 후유증으로 고통 받고 있는 인물이다. 4ㆍ3사건의 피해자이자 생존자였던 순이삼촌은 결국 자살이라는 끔찍한 선택을 하게 되는데 소설에서 순이삼촌이 자살한 곳이 바로 이곳 옴팡밭이다. 옴팡밭은 4ㆍ3사건 당시 최대의 인명피해로 기록되고 있는 1949년 1월 17일 북촌대학살 현장의 한 곳이다.

소설의 배경이면서 비극적 역사현장인 옴팡밭은 순이삼촌으로 대변되는 4·3피해 제주도민들의 피와 눈물을 담고 있다. 아직도 많은 순이삼촌과 같은 4·3피해자를 비롯한 유가족들은 당시 사건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린다. 세월이 흘렀음에도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다는 사실은 가슴이 찢어지듯 아픈 것이고 당시 비극적인 사건은 잊혀지지 않는 법이다. 여전히 옴팡밭에는 희생자들의 원혼이 떠도는 듯 그들의 슬픔과 원통함을 풀어줄 이 없어 안타까운 마음이다.

◇핏물이 고인 땅 곤을동

항상 물이 고여 있는 땅이라는 데서 곤을동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1949년 1월 4일 아침 9시경 군 작전으로 선량한 양민들이 희생되고 온 마을이 전소됐다. 오후 3시경 국방경비대 제2연대 1개 소대가 곤을동을 포위했다. 이어서 이들은 주민들을 전부 모이도록 한 다음 젊은 사람 10명을 바닷가로 끌고 가 학살하고 마을을 불태웠다고 한다. 아름다운 자연 풍광과는 대비되게 참으로 잔혹한 역사의 현장이다. 피 묻은 역사는 무엇으로 씻을 수 있을까. 평화와 상생을 말하는 이들 중 어느 누가 이 말을 실천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4·3추념식에서 또는 선거공약으로 용서와 화해, 평화와 상생의 길로 가야한다고 말하는 것을 빈번히 듣는다.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얘기들, 공식처럼 내뱉어지는 단어들. 이제 4·3에 대한 새로운 방안을 제시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레 생각해봤다.

별도봉에 핀 유채가 유난히 더욱 노란물이 들어 예쁘게 피어있고 짙푸른 바다가 고요하게 일렁이며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같은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이 마을에서 벌어진 끔찍한 사건은 피해자들의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는데 말이다.

◇평화는 어디에

이 시는 동화 속 전설이 돼버린 곤을동 마을에 대한 그리움과 평화를 갈망하는 내용을 담았다. 4ㆍ3사건 당시 죽은 마을 사람들이 돌담 위로 환하게 웃으며 얼굴을 내밀 것 같다는 구절에서는 아직도 화자의 기억 속에 곤을동 마을이 생생함을 알 수 있다. 그림 그리듯 아직도 머릿속에 마을과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리는 화자는 4ㆍ3사건이 수십 년이 흘러 비로소 평화의 시대가 찾아왔음에도 여전히 평화는 찾아오지 않았다고 말한다.

현 정부는 4ㆍ3을 국가추념일로 지정했음에도 방관하는 자세를 취해오고 있다. 화자는 제주도민들의 희생으로 평화의 시대가 도래됐지만 후속조치 등 답답한 현실에 대해 비판을 하고 있는 것 같다.

평화의 섬 제주, 과연 이 땅에 어떠한 평화가 지켜지고 있는지 의문스럽기만 하다. 과거의 역사를 덮고자 하고 진실을 묵인하며 매년 거창하게 국가추념식이라는 이름하에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행사를 방송국 3사에서 방영하는 것이 과연 평화인지 묻고 싶다. 화자는 물론 필자 또한 제주도민들의 희생으로 얻어낸 평화라는 가치가 이 땅에 제대로 구현되는 사회를 바라고 있다.

◇언제나 늘 그자리에

4ㆍ3평화공원에는 까마귀가 많았다. 묘지에는 언제나 까마귀가 많다. 누군가는 까마귀를 불길한 새라고 말할지 모르겠으나 필자는 평화공원의 까마귀들이 억울한 영혼들의 묘를 지키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태극기가 꽂힌 깃대 위에 앉은 까마귀 한 마리를 보며 뭉클한 감정을 느꼈다.

우리들은 바쁜 하루를 보내며 살아가느라 아픈 역사를 잊고 지내다가 으레 4월이면 여러 행사들을 통해 아픈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고 소리치지만,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면 자연스레 역사의 아픔보다 자신의 아픔이 우선이 되고 당장 해야 할 일이 더 중요하게 여긴다. 그러나 까마귀들은 아무도 찾지 않는 망자들의 원혼이 떠도는 묘지에서 하염없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지 않았을까. 누군가 이곳을 찾아주기를 아픈 역사를 되새겨주기를 바라며 억울한 혼들을 추모하면서 늘 그렇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지 않았을까.

이윽고 까마귀는 검은 날개를 펼치며 날아올랐다. 까마귀가 날아간 자리를 멍하니 바라보며 죽은 자들에 대한 울컥한 감정이 휘몰아침을 느꼈다. 

◇국화꽃 한 송이

행방불명이 된 희생자들을 기리는 묘석에 조화를 꽂으며 저절로 엄숙한 마음이 들었다. 학생들이 꽂아 놓은 묘석 앞의 국화꽃들을 보며 희생자들의 혼이 달래졌기를 바랄 뿐이었다.

비록 그들 앞에 국화꽃 한 송이가 놓여 있는 것뿐이지만 그 꽃 안에는 학생들과 평화를 지키는 사람들의 마음과 정성이 깃들어 있다고 믿고 싶다. 부디 빨간 핏물로 물든 역사가 국화꽃처럼 하얗게 피어나기를.
 

김정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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