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존재인가?

▲ 앙드레 지오르당|이규석 옮김|동문선

이 책은 13년 전, 그러니까 이 책이 번역ㆍ출간된 지 1년 만에 내가 접했다. ‘나는 어떤 존재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기회를 포착하지 못한 채,‘나만의 약점’ 때문에 자존감이 결여된 상태에서, 20년 가까이 강의와 연구에 종사하고 있던 나에게 이 책은 소중한 나를 발견하게 해준 아주 고마운 책이었다. 그래서 13년 전부터 지금까지 나의 문학강의는 늘 이 책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되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제목에 끌려 손에 잡게 된 논문이나 책을 다 읽을지 여부를 나는 서론과 결론을 읽어보고 정한다. 그런데 이 책의 마지막 네 문장이 나를 사로잡았다. “당신의 습관을 버리게 될 것이라고 장담했었다. 이 책을 덮고 말없이 거울 속의 당신을 바라보라. 당신에게 다가가서 마주하라. 세상에서 가잘 훌륭한 기적이 아니던가?” 다시 서문을 보니,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누구라도 “예전처럼 자신을 바라볼 수 없으리라”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포켓북보다 조금 더 큰 판형의 168쪽에 불과한 이 책은 단숨에 독파할 수 있었다. 간혹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큼직한 수치들이 걸림돌이 되기는 했지만, 핵심만 짚으면서 내달렸다. 다행이 제목이 붙은 11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핵심만 짚고 내달리는 읽기가 어렵지 않았다.

이 책의 핵심내용은 사람은 누구나 ‘세상에서 가장 큰 기적’이라는 것이다. 십여 년 전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우리나라에도 로또열풍이 불고 있었다. 수백억짜리 로또벼락을 맞은 사람에 관한 불길한 소식도 전해졌지만, 거의 모두가 로또당첨이라는 기적을 희구하던 때였다. 그런데 이 책은 바로 우리 자신의 몸이, 훨씬 더 희박한 확률로 탄생한, ‘세상에서 가장 큰 기적’임을 역설하고 있다.

각 장은 바로 이 기적의 구체적인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부모의 만남부터만 셈하더라도 이미 복권에 여러 번 당첨될 확률보다 더 희박한 확률로 내가 탄생했다는 기적적인 사실, 나는 지구 전체 인구의 1만 배에 달하는 세포들을 고용하고 있는 초대형회사의 회장이라는 기적적인 사실 등을.

기적을 학수고대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 기적‘만’ 일어난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고 한다. ‘더 이상 바랄 게 없다’는 것은 욕심이 없는 상태를 말함이니, 조금 과장하면 해탈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고통의 근원인 욕심을 버리고 이미 내 것이 된 기적의 효과를 충분히 누리는 여유 있는 삶은 우리 모두의 꿈이 아니겠는가! 

1996년 노벨화학상을 공동수상한 파울 크루첸 Paul Crutzen이 2002년 과학저널 네이처誌에 기고한 논문에서 ‘인류세 the Anthropocene’ 개념을 제안한 이래로, 지질학적 세력으로 성장한 인류가 초래한 기후변화에 관한 담론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지구에 무임승차하여 지구 곳곳에 생태발자국을 남기며 생태위기를 야기한 인간이 이제는 지질구조에까지 영향을 미칠 정도로 큰 영향력을 지니게 되었다는 인식을 일부 학자들이 공유하게 된 것이다. 1980년대에 한국의 한 물리학자는 당시의 생태위기를 초래한 인간을 ‘치졸한 거인’이라고 명명했다. 힘은 거인이지만 자신이 거인임을 깨닫지 못한 인간이 생태위기를 야기했다는 것이다.

이 ‘치졸한 거인’이 자신이 거인임을 인식하여 ‘당당한 거인’이 되어 자신이 초래한 생태위기에 대처함은 물론 세상에서 가장 큰 기적인 자신의 몸의 가치를 오늘 당장 충분히 누리는 데에도 이 책은 보탬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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