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문화를 찾아서<1> - 사라져 가는 이발소 문화

동네 주민들의 놀이터이자 소식통이었던 곳
이제는 사라질 위기에 놓인 이발소 문화

▲ 옛날에 사용하던 가위를 이용해 이발을 하고 있는 모습


오래된 문화가 사라져 가고 있는 현대사회.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가고 이제는 사라지고 있는 오래된 문화를 찾아보기로 한다.

“죽는 날까지는 이걸 해야 될 거 같아마씸” 어려운 시절, 생계를 위해 어린나이 이발일을 시작했다는 임정주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연세는 어느덧 70세.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시작해 이발경력은 어언 50여년이 된다. 70세임에도 할아버지는 여전히 이발일을 손에서 놓지 않고 있었다. 세월이 흘러 예전과 달리 이발소를 찾는 사람들이 현저히 줄어들고 미용실을 찾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이발소는 이제 설 자리를 잃고 말았다. 과거 남성들뿐만 아니라 동네주민들의 휴식공간이었던 이발소는 이제 후미진 뒷골목에 위치한 낡은 시대의 유물로 전락하고 말았다.

제주시 용담동에 위치한 오래된 이발소를 찾았다. 이발소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손님들이 앉아 기다리는 테이블에 장기판이 눈에 띈다. 안으로 들어가면 검은 벽면에 달린 거울들과 갈색 의자들이 즐비해 있고 바로 옆에 머리를 감는 세면대가 있다. 의자 뒤로 각종 이발 도구들이 보인다. 하얀 가운을 입은 이발사 할아버지. 연세에 비해 훨씬 젊어 보이는 인상에 놀랐다. 밝은 얼굴로 맞아주시는 이발사 할아버지. 자리에 앉자마자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으셨다.

▲ 가위, 면도칼 등 현재 사용하는 이발 도구



◇별의별 이야기가 가득한 곳

“비가 오는 날이면 사람들이 여기서 놀곤 했지” 이발소는 동네사람들의 놀이터였다. 무더운 여름, 더위를 피해 이발소로 찾아온 어른들은 “장군이오”, “멍군이오”하며 해지는 줄 모르고 장기판을 벌였더란다. 장기판을 둘러싸고 구경꾼들이 한마디씩 거들며 장기판의 열기를 더했다고. 할아버지는 옛 기억을 떠올리며 살포시 웃으셨다. “참 북적북적해서. 이발소는 마을 소식통이었주. 어느 집이 오늘 식게 지냄신지 여기 오면 다 알 수 있어서”라고 말하시는 할아버지를 보며 마을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마을의 대소사를 얘기하던 시절이 정답게 느껴졌다.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추억거리로 남은 모습이었다. 옆집에 살면서도 서로 관심조차 두지 않고 각자 살아가는 것이 당연해져 버린 지금, 테이블에 놓인 빈 장기판을 보며 씁쓸해져 버리고 말았다. 이제는 단골손님과 50대가 넘은 손님들만이 전부라고 했다. “예전에는 머리를 깎으면서 아이들이 울던 소리가 이발소 밖까지 들렸었주” 이제 젊은 층은 찾지 않는 이발소는 과거 아이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던 것과 달리 고요하기만 하다. 시끌벅적했던 이발소는 이제 추억이 돼 버렸고 그 추억을 기억하고 있는 이들만이 찾는 곳이 됐다. “어떤 곳은 하루에 두 세 손님이 전부인 곳도 이서. 수입이 많이 열악하지. 옛날에는 이발해서 밭도 사고 집도 사고 했주만은 다 옛날 얘기지” 할아버지 말씀에서 씁쓸함이 배어났다. 다시금 씁쓸하게 하는 요즘 이발소 상황을 전해 들으며 과연 이발소 문화를 지켜나갈 수 있을까 고민에 빠졌다. 요즘 바버샵이라는 남성 전용 헤어샵이 생겨나고 있다는 기사를 접했다. 이발소를 현대식으로 변화시킨 것이라고 보면 된다. 과거 이발소처럼 남성들이 머리와 수염을 정돈할 수 있는 휴식공간이 새롭고 세련되게 변하는 것은 좋은 변화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예전처럼 동네주민들의 놀이터 겸 휴식공간이자 소식통 역할까지 했던 이발소는 사라지고 없어져 버릴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먼저 드는 것이 사실이다. 

“지금은 기계로 하지만 예전에는 다 가위로 잘랐지. 옛날에 썼던 가위가 있는데 그 가위는 손님들이 아파했어. 오죽했으면 아이들이 이발소를 무서워했겠어. 이발소만 오면 울음을 터트렸다니까” 할아버지는 옛날이야기를 하며 껄껄 웃으셨다. “그때 그 가위를 보여주겠다”고 하시며 직접 사용하시면서 설명해주셨다. 머리카락을 가위로 잡아 자르는 가위였다. 자르는 부분이 전기바리깡과 닮아 있다. 수동식 바리깡인 셈이다. 예전에 썼던 면도칼도 보여주셨는데 가죽띠에 칼날을 갈면서 “옛날에는 면도도 다 칼로 해서”라고 하셨다. “지금은 드라이로 하는데 옛날에는 불고데라고 해서 숯불에 구워서 사용했지. 참 그때는 환경이 열악했지” 도구와 환경은 열악했지만 그 당시 이발소는 사람들로 넘쳐났고 사람들로 인해 참 즐거웠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별의별 이야기가 가득한 곳이니 말이다.

◇낡은 것의 소중함

▲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이발 가위

 

한 쪽 벽면에 걸린 가운들이 눈에 띄었다. 이제껏 입으셨다는 하얀 가운들은 빛바래고 주름이 져 있었다. 그 가운들에서 세월이 느껴졌다. 이제는 낡아버린 가운이 할아버지의 세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인터뷰를 하며 입고 계셨던 가운은 팔 이음새부분이 해져 찢어져 있었다. 그럼에도 개의치 않고 가운을 입고 계신 할아버지의 모습에서 낡았다고, 옛날 것이라고 해서 쉽게 물건을 버리는 우리의 모습이 떠올라 부끄러워졌다. 낡은 것은 버려야 한다는 우리의 생각이 오래된 문화를 사라져가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낡고 해져도 추억이 담겨 있고 간직해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이 있다. 혹자는 이렇게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낡은 것이 무슨 쓸모가 있냐”고. 그렇지만 물건이 낡지 않는다면 새 것이 필요할까. 인간이 늙어가듯이 물건은 낡아가고 세월이 흘러 과거의 문화는 전통이 된다. 세상에 낡지 않는 것은 없다. 낡은 것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오래된 문화를 통해 새로운 문화를 창출해 낼 수 있다. 오래된 문화는 낡았다고 버릴 것이 아니라 간직하고 보존해서 문화를 더욱 풍성하게 해주는 것이다.

◇이발소의 미래는

이제껏 이발소를 운영하고 계신 까닭을 여쭸더니 할아버지는 이렇게 답하셨다. “먹고살기 위해서 지금까지 하고 있는 겁주. 배우는 사람도 없고 돈도 안 되는 직업을 누가 하쿠과” 그런 할아버지의 바람은 이발 기술의 계승과 손님들이 찾아와주었으면 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가고 이제는 사라질 위기에 놓인 이발소. 단순히 이발을 하는 곳이 아니라 사람들의 추억이 깃든 곳이 사라져가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 한켠이 저릿해 온다. 아이울음소리가 들리고 장기를 두는 어른들이 보이는 이발소는 이제 다시 볼 수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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