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1일 남원읍 의귀리에서 열리는 두번째 4ㆍ3길
향기 짙은 들꽃냄새가 망자의 존재같이 느껴져

▲ 남원읍 의귀리에 있는 4ㆍ3길 입구의 모습

9월 11일 서귀포시 남원읍 의귀리에 ‘4ㆍ3길’이 열린다. ‘4ㆍ3길’은 지난 4월 서귀포 안덕면 동광리에 처음 열렸고 의귀리는 두 번째 마을이다. 광복 후 격동의 세월 속에 일어났던 참혹한 사건을 기억하며 생명의 존엄함과 인간의 소중한 가치를 되새겨 보기 위해 열린 4ㆍ3길. 지금부터 의귀마을 4ㆍ3길로 들어가 보자.

의귀마을로 향하는 길. 견월악에서부터 교래리를 통과하는 길목에는 거센 비가 내렸다. 9월의 시작점에 시원한 비가 찾아들었고 모든 것을 씻어 내리는 듯한 날씨였다. 하지만 제주에서 비가 가장 많이 내린다는 남원에 접어들자 오히려 구름만 하늘을 덮을 뿐 비는 거의 내리지 않았다. 시원하지도 맑지도 않아 모든 것을 가라앉게 하는 날씨였다.

의귀마을 4ㆍ3길은 두 코스로 나뉜다. 의귀마을 4ㆍ3길 코스는 ‘신산마루 가는 길’과 ‘민오름주둔소 가는 길’ 2곳이다.

‘신산마루 가는 길’은 의귀마을 복지회관에서 출발해 의귀초등학교와 현의합장묘, 송령이골을 거쳐 다시 복지회관으로 돌아오는 코스다. ‘민오름주둔소 가는 길’은 옷귀마(馬) 테마타운을 출발해 민오름 주위를 돌게 된다. 두 곳 모두 약 7km 정도이다.

이날은 ‘신산마루 가는 길’을 걸었다. 복지회관에서 의귀초등학교로 향하는 길목에 ‘제주4.3과 의귀리’라는 비석이 보인다. 그리고 그 옆에는 동백나무가 서있다. 이곳에 서니 붉게 물들다 승천한 동백영혼들의 이야기가 들려온다.

저 멀리 육지부에서 불어온 바람은 제주에 상륙해 피바람이 됐다. 이 일대 의귀ㆍ수망ㆍ한남리에서 벌어진 초토화 작전은 1948년 11월 7일 시작된다. 토벌대는 선량한 주민들의 집을 불태우고 학살을 자행했다. 의귀리에서만 약 300명의 사람들이 스러져갔다. 그리고 마을은 폐허가 됐다.

주민들은 토벌대가 보이지 않는 산이나 돌담 밑에서 숨을 죽였다. 하지만 의귀국민학교에서 진을 쳤던 국방경비대 제2연대 1대대 2중대는 그들을 찾아내고 그들에게 방아쇠를 당겼다.

이후 국방경비대는 더 냉혹하게 주민들을 괴롭혔고 무장대와 내통한다는 구실로 주민들을 무참히 죽였다. 학살 현장에는 죽은 어미의 젖을 빨다가 함께 세상을 떠난 아이의 모습도 보였다고 한다.

이 길의 첫 장소가 바로 국방경비대가 무참하게 양민을 학살했던 현장이다. 학살 뒤에도 그들의 시신은 수습되지 못했다. 경비대가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1년이 넘는 시간 후에야 시신이 수습될 수 있었다.

그곳이 희생터 다음 장소 옛 ‘헌의합장묘’이다. 시신이 수습됐지만 그들은 여전히 침묵하고 그들의 슬픔을 드러낼 수는 없었다. 20년도 더 지난 1983년 봄에서야 비석을 올리고 넋을 위로할 수 있게 됐다. 의로운 넋들이 함께 묻혀있다는 의미로 세워진 이곳 헌의합장묘는 마을길이 넓혀지면서 헌의합장묘가 도로쪽으로 돌출되면서 숭고함이 퇴색된다는 지적에 따라 2002년 수망리에 위치한 지금의 헌의합장묘로 이전했다.

옛 헌의합장묘에서 새로 지어진 묘역에 가는 길 사이에 재미있는 곳이 코스로 올라와있다. 헌마공신 김만일의 묘이다. 문인석(묘 앞에 세우는 문관의 형상으로 깎아 만든 돌) 2구만이 그를 지키고 있다.

헌마공신(獻馬功臣) 김만일은 경주 김씨로 선조 때 의귀리 중산간지대에서 1만 마리의 말을 키우던 제주의 부호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 육지부 목장들이 황폐해지자 김만일은 자신이 기르던 말 500두를 국가에 기증했다.

이때부터 김만일은 1300여마리가 넘는 말을 국가에 바쳤다. 이후 인조 6년에는 종1품(지금의 부총리급) 숭정대부에 올랐다. 그래서 김만일의 이름 앞에는 ‘헌마공신’이라는 칭호가 붙게 됐다.

나라의 안위를 걱정해 큰 공을 세운 김만일과 그의 국가를 음해하려한다는 누명을 썼던 후손들의 처지의 대비(對比)가 아이러니하게 다가온다.

새로 지어진 헌의합장묘는 약 10분간 이어지는 가파른 산길을 올라야 한다. 이곳에는 백일홍 두 그루가 서있다. 이곳에서, 그들은 묵묵히 서서 망자(亡者)의 행복을 빌고 있다.

걷는 내내 들꽃의 냄새가 풍겨왔다. 선선한 바람 속에 실려 오는 향기와는 달랐다. 코를 시원하게 하는 청량감은 어디론가 사라져있고 풀꽃의 쓰디쓴 향기만 짙었다. 상쾌한 향은 저 지하로 침전해버린 것은 아닐까. 그리고 쓰게만 느껴지는 냄새는 하늘로 오르지 못하고 아직도 이곳에 머물러야만 하는 망자의 존재는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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