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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불 속의 장인정신을 기억하며오래된 문화를 찾아서 <2> 이젠 찾아 보기 어려운 대장간

자급자족 농어촌에서 필수적이었던 대장간
현대화ㆍ기계화로 전통적인 옛모습 사라져

   
▲ 손잡이에 거로대장간이라고 적힌 낫


오래된 문화가 사라져 가고 있는 현대사회.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가고 이제는 사라지고 있는 오래된 문화, 그 두 번째는 전국적으로 찾기 힘든 곳이 된 대장간이다.

옛날에는 시골 장터나 마을 단위로 반드시 대장간이 있었다. 무딘 농기구나 각종 연장을 불에 달구어 벼리기도 하고 새로 만들기도 했다. 자급자족하는 농어촌에서 대장간은 필수적인 곳이었다.

도로 옆 수풀이 우거진 곳, 제주시 화북2동에 위치한 거로 민속 대장간을 찾았다. 제주도에서도 이제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대장간. 이곳은 포털사이트에서 제주도내 유일하게 위치 검색이 가능한 대장간이다. 대장간 안으로 들어가자 흥겨운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할아버지 한 분이 작은 의자에 앉아 낫을 손질하고 계셨다. 어두침침한 대장간 안에 노란 전구가 이른 아침, 햇살을 대신해 대장간 안을 비추고 있었다. 대형 선풍기가 소음을 내며 노랫소리와 섞여 고요한 아침의 정적을 깨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라디오와 선풍기를 끄자 사방은 어느새 고요해졌다.

60년 동안 대장장이로 살아오신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연세 일흔 둘. 몸도 예전과 다르고 일이 줄어 일주일에 3, 4일, 하루 2~3시간만 일을 하신다고 한다.

“옛날에는 마을마다 대장간 하나씩 있었는데... 이제는 사라지는 일이 돼 버린거라” 아쉬운 표정의 할아버지를 보았다. 각종 농기구는 물론 자동차의 부품까지 만들어내던 대장간은 이제 거의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강철검 대신 농기구를 만드는 곳

주위를 둘러보니 기계들이 가득하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대장장이가 호미 하나를 만드는 시간은 줄잡아 한 시간이 걸리지만, 기계로 제작하면 한꺼번에 수십 개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농기구 주문이 들어오기도 하주만은 가게에서 사서 쓰는 사람들이 많지.”

검은 먼지가 덮인 선풍기가 눈에 들어왔다. 열악한 작업환경에서 검은 먼지를 다 뒤집어쓰시고 일하시는 것이 걱정돼 괜찮으신지 여쭙자 “그래도 이거 해서 폐병 걸려 죽은 사람은 없었다”며 너털웃음을 지으셨다. 힘든 환경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할아버지의 모습에서 저런 여유와 웃음은 모진 풍파와 같은 세월 속에서 얻은 연륜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일을 하실 때 사용하는 기구에 대해 여쭈니 할아버지는 직접 보여주시며 설명해주셨다. “지금은 다 기계로 하지. 옛날에는 ‘메’라는 도구가 있었는데...” 이제 대장간에서 ‘메’를 볼 수는 없었지만 할아버지는 ‘메질’을 하는 시늉을 해 보였다. ‘메’는 망치를 말하며 불에 달군 쇠붙이를 두드리는 도구이다. 불에 달군 쇠붙이를 모루(재료를 올려놓는 단)에 올려놓고 커다란 ‘메’로 힘껏 두드리던 것도 이제는 기계망치가 대신하고 있다. 이렇게 기계망치로 두들겨 어느 정도 형태를 잡은 후 마무리 작업만 직접 손 망치로 두들겨 완성한다.

이제는 현대화·기계화돼 화덕에 바람을 불어 넣는 풀무도 팬 모터로 바뀌었다. 이제는 직접 망치를 사용하지 않아도 기계가 알아서 두드려주니 편리해졌으나 대장간하면 생각나는 망치로 쇠를 두드리는 모습을 이제는 다시 볼 수 없게 돼 아쉬운 마음이 컸다. 어렸을 때 즐겨 봤던 드라마 주몽에서 대장장이로 분한 이계인씨가 빨갛게 달궈진 칼을 메로 두드리는 장면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강철검을 만들었습니다”하고 호탕하게 웃는 장면을 보며 대장장이는 저런 느낌이겠거니 어렴풋이 상상해 봤었다.

   
▲ 검은 먼지가 뒤덮힌 선풍기, 그 뒤로 작은 의자 오른쪽에 화덕, 그 옆에 기계망치, 왼쪽에 담금질을 하는 곳.


농촌 지역의 상거래뿐만 아니라 경제생활의 대부분이 오일장을 중심으로 이뤄지던 1960~1970년대 까지만 해도 장이 서는 곳마다 여러 대장간이 영업을 했다. 그러나 공장의 대량 생산제품에 밀려 대장간은 하나 둘 자취를 감췄다. 할아버지는 4일과 9일에 열리는 한림민속오일장에서 일을 하시기도 한다. 한림민속오일장의 대장간은 시장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이미 많이 알려져 있다.

◇대장장이로 산다는 것

“지금 제주시에 이 일을 하는 사람은 두 사람밖에 엇수다. 내가 거의 제일 오래 일했는데 옛날처럼 돈벌이는 안 되지만 나이 들고 할 게 없으니까 붙들고 있는거지”

일흔 둘에 아직도 대장간을 운영하시고 계신 할아버지를 만나 뵈면서 체력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60년 동안 하나의 일에 매진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정작 아르바이트도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어하는 내 자신이 지난번 이발소편에 이어 또한번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대장간이 하나 둘씩 사라져 가다 보니 이제 제주도내에서 찾아보기 힘든 문화가 됐다. 이런 오래된 문화가 이어지지 않는 까닭 중 첫 번째로 꼽는 것은 역시 ‘돈’이었다. 결국 자본에 의해 문화는 소멸되고 마는 것일까. 사회 전반을 움직이고 있는 ‘돈’이라는 것이 문화를 앗아가고 우리는 ‘돈’을 위해서만 움직이는 메말라버린 인간이 되고 말았다. 문화를 누리는 감성이 이렇게 메말라가고 있으니 말이다.

“배울 사람이 엇수다. 대장간하면 다 천하게 보주게. 일도 힘들고 인식도 안 좋아서... 사라지고 있는 거 보면 아쉽긴 하지.”

대장장이. 검은 먼지를 뒤집어쓰고, 사람들이 하기 꺼려하고, 돈이 안 되는 기술을 익히는 직업은 다 천한 직업인가. 사람에 귀천이 없듯이 직업에도 귀천은 없다. 오히려 오래된 문화를 지키고 있는 그분들이 더 귀하다고, 더 대단하고 존경스럽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대장간의 유일한 냉방기기라고는 검은 먼지가 달라붙은 선풍기 3대 뿐이었다. 올해 유독 더웠던 폭염 속에 뜨거울 불 앞에서 쇠붙이 하나하나에 장인정신을 담아내고 있었을 할아버지를 생각하니 눈앞이 흐려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누군가는 이런 문화가 사라지거나 말거나 관심조차 없을지라도 필자는 기억하고 싶다. 이 분이 대장장이로 살아온 세월과 이 오래된 대장간을.

김정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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