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문화를 찾아서 <3> 제9회 제주해녀축제 : 숨비소리, 바다 건너 세계로!

▲ 메역조문 공연 중 미역을 말리고 있는 해녀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기원 해녀굿 열려
해 거듭할수록 방문객 증가, 축제 성황리에 마무리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옷자락을 나부끼고 머리칼 사이를 헤집고 들어와 머리카락을 엉클어 놓으니 “아, 가을이구나”하고 하늘을 올려다보게 된다. 높고 푸른 하늘, 아이들의 손에 하나씩 쥐어 진 솜사탕 마냥 몽실몽실한 구름, 따사로운 햇살, 하늘을 보고 완연한 가을이 왔음을 비로소 알아챈다. 가을과 함께 찾아온 제9회 제주해녀축제. 여름이 그냥 가기는 아쉬워 심술을 부리는지 때 아닌 늦더위로 사람들의 옷차림은 아직 가을이 오지 않은 모습이었다. 가을 내음에 취해 긴팔을 꺼내 입은 것이 낭패였다. 한여름을 방불케 하는 강렬한 햇살에 축제를 방문한 사람들은 저마다 시원한 그늘을 찾아 자리 잡고 있었다.

◇해녀들의 축제

9월 24일 오전 11시, 구좌읍 세화리에 위치한 해녀박물관에 도착했다. 이미 거리퍼레이드와 개막식은 끝이 나 있었다. 메인무대 잔디광장에서는 메역조문(미역채취)공연이 한창이었다. 해녀들이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미역을 채취하고 그 미역을 햇빛에 말려서 장에 내다파는 과정을 연기하며 춤을 췄다. 장구와 꽹과리, 북소리가 어우러져 공연의 흥을 돋궜다. 공연의 마지막에는 춤판이 벌어졌다.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공연자와 관람객이 어우러진 흥겨운 자리였다. 원을 만들어 뱅뱅 돌다가 가운데로 모여 손을 이리저리로 흔들며 덩실덩실 춤을 추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행복함과 즐거움이 묻어났다.

또 해녀 분들을 더 즐겁게 만들었던 것은 각설이 공연이었다. 재치있는 입담으로 공연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고 이어 구수한 노래를 부르며 해녀 분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흥이 오른 해녀 분들은 넘치는 흥을 주체하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각설이와 함께 춤을 추는가하면 노래를 따라 부르며 의자 위로 올라가 박수를 치기도 했다. 어느새 무대를 벗어난 각설이는 사람들이 앉아있는 객석까지 내려와 그 안을 헤집고 다니며 열창을 했다. 무대 앞에서 춤을 추는 사람들이 점점 불어나 공연장은 댄스파티장이 되었다. 해녀 분들의 넘치는 흥에 놀랐다. 제대로 축제를 즐기는 해녀 분들과 관광객들을 보며 이토록 뜨거운 축제의 열기에 놀랐고 동시에 나까지 즐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각설이 공연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막바지에 다다랐을 때 쯤 용문사 부근에서 진행하는 해녀학교 물질대회를 보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다양한 행사 프로그램이 있어 즐길 거리가 많다고 생각하면서도 행사장으로 가는 자세한 안내 표시가 없는 것이 아쉬웠다. 용문사로 가는 바닷가에서는 한창 소라와 광어 맨손잡이 체험이 진행되고 있었다. 온 가족이 모여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소라와 광어를 잡기위해 허리를 숙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한참동안 바라보며 어릴 적 추억을 떠올렸다. 그날따라 유독 눈이 시리게 짙푸르던 바다와 햇볕에 빛나는 모래사장에서 부모님의 손을 잡고  소라를 열심히 찾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어린 시절의 나의 모습과 오버 랩 되면서 ‘시간이 이렇게 빠르게 흘렀던가’하고 잠시 바다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다는 여전히 짙푸른 물결을 넘실거리면서 내 눈을 시리게 했다.

▲ 유네스코 등재를 기원하는 풍선을 들고 사람들이 해녀굿에 참여하고 있다.


오후 2시가 되어 물질대회를 하는 바닷가에 이르렀다. 해녀학교별로 대회를 하고 있었고 내가 도착했을 때는 법환 해녀학교의 새내기 해녀들의 경기가 진행되고 있었다. “10분 남았습니다” 사회자의 말에 수면을 오르내리는 해녀들의 몸놀림이 빨라졌다. 벌써 태왁을 무겁게 채운 해녀는 제법 여유를 부리며 물속을 헤엄쳤고 태왁을 채우기에 조급한 해녀들은 숨을 헐떡이며 물속으로 다시 들어갔다. 물 밖에선 고참 해녀들이 새내기 해녀들에게 힘내라는 응원을 보냈다. 또 그 주위로 각종 언론의 취재 카메라가 새까맣게 둘러쌌다.

경기가 끝나자 해녀들이 하나둘씩 나오며 태왁에 담긴 해산물의 무게를 재기 위해 저울 앞으로 모였다. 과연 누가 1등을 했는지 취재진과 구경꾼들이 그 주위에 몰려들었다. 결과는 2등과 0.1kg 차이로 9.9kg의 해산물을 모은 해녀가 1등을 거머쥐었다. 그녀는 우승포즈를 지으며 1등의 기쁨을 만끽했다. 즐거운 축제 분위기가 계속 이어졌다. 해녀 불턱가요제에서는 해녀 분들이 마음껏 가창력을 뽐냈고 초대가수 설운도씨가 등장하자 나이를 잊은 듯 연신 “운도 오빠”를 외치며 말괄량이 소녀로 변해 있었다.

◇숨비소리, 바다 건너 세계로!


메인무대 옆의 원형무대에서는 오후 4시부터 해녀굿을 벌였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와 제주해녀문화의 전승을 기원하며 그곳에 모인 사람들 모두 해녀굿에 집중하며 관람했다. 관광객으로 보이는 외국인들도 흥미로운 눈으로 지켜보았다. 영화에서만 보던 굿을 직접 볼 수 있어 색다른 경험이 됐다고 생각한다. 마치 춤을 추는 것처럼 발걸음을 총총거리며 손을 흔들거리고 노래를 부르듯이 읇조리는 모습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해녀들의 속담 중에 ‘저승에서 벌어 이승에서 쓴다’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해녀의 물질 작업이 매우 위험하다는 뜻이다. 해녀들은 바다를 관장하는 용왕신에게 의지한다. 해녀굿은 해녀들이 바닷가에 있는 해신당에 찾아가 제물을 준비해 물질작업의 안전과 풍요를 기원하는 것을 말한다.

해녀굿이 끝나고 유네스코 등재를 기원하기 위해 준비된 풍선날리기 순서. 시원한 가을 바람을 타고 노랑, 분홍 풍선들이 날아갔다. 풍선을 따라 올려다 본 하늘은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유네스코 등재의 꿈과 각자의 소망을 담은 풍선들이 검은 점이 되어 구름 너머로 사라질 때까지 그렇게 바라보고 서 있었다.

행사장 곳곳에는 향토음식을 판매하거나 아이들을 위한 퍼즐 맞추기, 페이스 타투 등의 부스가 마련돼 있었다. 축제기간동안 해녀박물관은 무료 개장해 많은 사람들이 방문했다. 특히 어린 자녀들과 함께 박물관을 찾은 부모들은 해녀 문화에 대해 이해하고 아이들에게도 설명해주며 유익한 시간을 보냈다. “엄마, 왜 남자 해녀는 없어?”라는 아이의 순진무구한 물음에 “남자는 원래 없어”라고 대답하는 부모의 모습을 보고 제주도민 조차 잘 알지 못하는 해녀문화를 세계적으로 알린다 해서 ‘무엇이 달라질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해녀축제를 담당하는 제주특별자치도 해양수산국 김근태씨는 “비록 사라져 가고 있는 문화이기는 하지만 해녀의 서로 나누는 공동체문화를 본받고 이 가치 있는 문화를 전승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번 축제는 해녀문화의 유네스코 등재를 기원하는 자리여서인지 많은 방문객들이 다녀갔다. 혹시라도 등재가 된다면, 해녀문화가 더 알려지고 그 가치가 인정받는다면 더 이상 사라지는 문화가 아니라 오래도록 전승될 수 있을 것이라는 일말의 희망을 걸어본다. 축제가 오래 이어져서 이제껏 거친 파도에 몸을 맡기며 가족을 위해 희생했던 해녀 분들이 이 축제에서 나마 웃고 즐기며 고생했던 것은 다 잊으시길.

◇눈이 시린 해녀의 바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 몸을 싣고 열린 창문으로 바람에 실려 오는 바다내음이 좋았다. 지평선 너머로 붉은 노을이 물들어 있었다. 낮에 뜨겁게 내리쬐던 태양은 가을을 담은 불그스름한 노을이 되어 바다 속으로 잠기려 하고 있었다. 바다에 반쯤 잠긴 태양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제주의 바다는 어쩌면 해녀의 눈물이 모이고 모여 그렇게 눈이 시리도록 짙푸른 것은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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