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의 기본 원칙〉
 빌 코바치·톰 로젠스틸|역자 이재경 |한국언론재단

“언론의 공적 영역을 사적 영역으로 끌어 들여 부관참시(剖棺斬屍)하듯 과거사를 끌어올려 난도질 하는 것은 언론의 정도일 수가 없다. (중략) 적어도 건전 언론이라면 공정하고 객관적이고 건전한 이성적 비판과 쓰레기 같은 감정의 배설물 같은 비난은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지난달 제주투데이 김덕남 주필(전 제민일보 편집국장)이 자신의 기명칼럼에 남긴 글이다. 그의 말대로 제주지역의 저널리즘은 위기이다. 다시 그의 칼럼을 보자. “지난해 제주도가 도내 언론사에 지급한 보조금은 34건에 18억1495만원으로 알려지고 있다. 도민 세금으로 조성된 돈이다. 시쳇말로 ‘돈 받고 조지는 언론의 자화상’을 보는 것 같아 여간 씁쓸하지가 않다.”

이 대목에서 헷갈린다. 언론이 (정부나 지자체) 돈을 받으면 보도기사를 통해 행정 정책 홍보에 열을 올려야 정상(?)이다. 작금의 전국언론의 보도행태가 그러하다. 미디어오늘이 정부부처 언론홍보 내역을 확인한 결과다. 그런데 제주지역의 저널리즘은 다르다. 돈은 돈대로 받고, 비판은 비판대로 한다. 더 큰 문제는 일부 언론사의 경우 지자체나 국가기관에서 돈을 받아내는 것도 기자의 몫이고, 비판을 하는 것도 기자의 몫이 돼버렸다. 그래서 언론의 본령과 사명의 자세로 저널리즘을 하려는 기자들은 허무함과 참담함으로 그 직을 그만두려 한다. 독자나 시청자들은 이러한 속내를 알아차린 이상 더 이상 뉴스를 신뢰하지 않는다.

이럴 때일수록 저널리즘의 정도(正度)를 지켜야 한다. 이 정도가 무엇인지를 날카롭게 파헤친 책이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이다. 기자를 꿈꾸거나, 기자를 직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에게 훌륭한 지침서와 같다. 현대사회의 언론을 이해하려는 일반인들이 읽을 만한 교양서로도 충분하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알고자 하는 본능’을 갖고 있다. 우리는 바다 끝 지평선이나 언덕 너머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알아야 한다. 실제로 보고 듣고 겪을 수 없는 세상의 일들을 알고 싶은 욕구다. 불확실한 환경에서 명확한 결론을 찾는 힘을 의미한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새로운 정보와 지식은 안전과 평안을 준다. 그래서 저널리즘은 지금 어떠한 일이 진행되고 있고 앞으로는 어떠한 일이 발생할지에 대한 정보를 공급하기 위해 인간이 고안해 낸 최고의 사회 시스템이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인간이 만들어낸 시스템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바로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기술의 발전이다. 이로 인해 언론사와 기자의 뉴스 생산 독점 체재가 해체 됐다. 언론사와 기자들은 사람들이 무엇을 알아야 하고, 어떤 것은 알 필요가 없는 지를 자신들이 결정했지만, 이제 그 권력이 사라지게 됐다. 누구나 컴퓨터나 스마트폰만 있으면 저널리즘을 할 수 있는 시대가 돼버렸기 때문이다. 제주도 같은 지자체 역시 언론을 대체할 수 있는 다양한 도구들을 확보하고 있다. 이러한 도구들은 홈페이지를 만들고 각종 SNS를 통해 자신들이 직접 저널리즘을 공급하며, 보도자료의 제작과 배포, 정책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는데 협조할 의사가 있는 언론사에게 금전적 보조금을 지급하는 일까지를 포함한다. 지역언론이 아니더라도 이제 대중과 직접 접촉할 수 있는 무수한 채널을 유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변화 속에서 저널리즘의 정도를 찾을 해법은 무엇인가? 그 해법이 바로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에 녹아 들어있다. 저자들은 책에서 모두 10개의 원칙을 제시한다. 이 가운데서도 2번째, 5번째, 9번째 원칙을 명심해야 한다. 2번째 원칙은 “저널리즘의 최우선적인 충성 대상은 시민들이다”, 5번째 “기자들은 반드시 권력에 대한 독립적인 감시자로 봉사해야 한다”, 9번째 “기자들은 그들의 개인적 양심을 실천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이다. 읽어버린 신뢰를 되찾고, 언론의 사명을 되새기기 위해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으로 돌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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