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주는 위로 <4> 도심별길 칠성로

▲ 칠성로의 일곱 개 표지석 중 북두칠성 제5도 옥형성.

한때 ‘제주의 명동’이 제주 원도심 문화벨트로
젠트리피케이션의 그림자를 걷어낼 수 있어야

가을비치고는 꽤 많이, 오래 내린다. 도시는 차창을 적시는 빗물을 따라 젖어 번진다. 8호 광장 교차로에서 시청으로 내려가는 내내 몇 번이고 엉거주춤 들어오는 브레이크 등과 만난다. 광양사거리는 3차로로 들어가 1차로로 주행하는 게 좋다. 구도심을 잇는 도로는 폭이 좁은 2차선 도로다. 중앙로, 관덕로, 칠성로, 오현길, 동문로. 중앙사거리를 싸고 도는 길은 도심을 지탱하는 평면의 아케이드(arcade)다.

◇ 비에 젖은 도심, 아케이드(arcade)

시계를 본다. 오전 아홉 시 사십오 분. 시침과 분침이 만나려면 초침이 세 바퀴쯤 더 돌아야 한다. 비에 젖어 번지는 도심에서 우산을 펼치지 않아도 되는 곳. 줄지어 늘어선 기둥으로 지탱하는 아치 또는 반원형의 천장 등을 연속하여 가설한 구조물과 그것이 조성하는 개방 통로 공간, 아케이드. 시침과 분침이 만났다. 칠성로(七星路)다.

◇문화 관광 쇼핑 벨트에서 문화예술벨트로

탐라시대부터 지금까지 제주 중심지였던 제주성 일대에는 ‘별 따라 걷는 도심별길’이 있다. 탐라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를 올리던 칠성대가 있었다는 칠성로다. 2006년 6월부터 2008년 4월까지 일도1동 칠성로 서쪽 입구에서 동쪽 산지천 방향 4개 구간 435m에 폭 3.9m, 높이 11.6m의 아케이드 시설이 들어섰다. 목관아지, 탑동테마거리, 산지천, 동문시장 등을 연결하는 문화, 관광, 쇼핑벨트를 조성해서 원도심을 활성화하려는 것이었다. 아케이드가 완성된 2008년 12월에는 제주시 구도심 도시재생시범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기도 했다. 하지만 2011년 12월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경영악화에 따른 사업 불참 선언, 주민재산권 제약과 구도심 슬럼화 우려 등을 이유로 구도심 재정비촉진지구 지정이 해제되었다.

전국적으로 구도심활성화사업이 한창이다. 2016년 지금 문화예술의 섬으로 주목받는 제주는 말할 것도 없다. 2015년 한 해에만 국토교통부에서 공모한 도시재생활성화 일반지역에 근린재생활성화 구역으로 최종 선정되었을 뿐 아니라, 문화체육관광부에서 공모한 ‘문화도시조성사업’에도 선정되었다. 1970년대에서 1990년대까지 연동신시가지, 일도지구 택지개발, 외환 위기 등으로 상권 분산과 위축을 겪었던 제주 원도심은 ‘오래된 미래, 모관[城內] 옛것을 살려 미래를 일구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문화예술벨트를 두를 기회를 맞이한 것이다. 오늘도 제주는 ‘역사문화 도시, 문화 관광도시, 자연친화 도시, 사회경제 도시’라는 달뜬 희망으로 설렌다. 대규모 프랜차이즈 점들이 칠성로를 차지하고 있는 데도 말이다.

◇일곱 개의 별, 별의 나라 탐라

칠성로는 제주시 일도 1동 칠성 1로에서 칠성 2로에 걸쳐 있다. 일제강점기 때는 제주읍 성안이었던 이 주변을 본정통(本町通), 지금의 관덕로를 원정통(元町通)이라고 불렀다. 관공서와 주택이 몰려 있었던 이곳에 근대적 상점들이 들어서면서 상권이 형성되었다. 특히 관덕로에서 칠성로로 방향으로 미곡 등 생필품을 팔던 삼화상점(三和商店, 현 한국투자신탁 제주지점)과 반상점(伴商店, 현 한양상사), 양과자를 팔던 경성실(京城室) 등이 있어 ‘제주 상권의 원조’로 인정받았다. 광복 이후에는 문화와 낭만의 중심지가 되었다. 도내 최초의 다방 ‘파리원’이 생긴 이래, 1970년대에는 시설이 고급화된 다방들이 들어서면서 문화계 장년층이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이때 도내 처음으로 백화점 형태의 대형매장인 아리랑백화점이 입점(1973년)하면서 최대호황을 누렸다. ‘제주의 명동’이라는 말이 나온 것도 이때다.

칠성로라는 지명은 이곳에 칠성단(七星壇)이 있었다는 <증보 탐라지>의 기록에서 비롯되었다. 기록에 따르면, 제주 성안에 돌로 만든 옛터 7개소는 삼을나(三乙那)가 북두성(北斗星)을 따라 세운 대(臺)라고 한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북두칠성의 제단을 만들어 탐라의 안녕을 위한 제를 지냈다. 2000년 6월 새천년준비위원회에서 이 거리를 ‘새 즈믄해 거리’로 지정하면서 칠성대 위치에 표지석을 설치하였다. 21세기 제주시가 전세계로 무한히 나가자는 상징적인 의미와 ‘칠성골’의 의미를 담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7개의 표지석을 연결하면 북두칠성의 형태가 나오는데, 칠성대와 삼성혈의 위치는 북두칠성과 북극성의 위치와 유사하게 조성되었다. 성주(星主)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지만 탐라는 ‘별의 나라’였던 것이다.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그 빛과 그림자


1960년대 영국의 사회학자가 사용한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ication)이라는 용어는 ‘중산층화(gentry)’라는 말에서 비롯되었다. 낙후된 지역에 외부인들이 들어오면서 지역 전체의 구성과 성격이 긍정적으로 변화하여 지역이 활성화되는 ‘구도심 활성화’를 가리킨다. 최근에는 외부인들이 들어오면서 본래 거주하던 주민들이 쫓겨나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로 더 자주 인용된다. 쉽게 설명하면 이렇다. 공동화현상을 겪으면서 도심의 임대료는 저렴해진다. 그 덕에 독특한 분위기의 갤러리나 공방, 소규모 카페 등의 공간들이 생겨나면서 유동인구가 늘어난다. 이것을 본 대규모 프랜차이즈 점들이 입점하면서 부동산 가격과 임대료가 치솟는다. 결국 도심을 활성화시켰던 소규모 가게와 주민들은 그 지역을 떠나고, 대규모 상업지구만 남는다. 이것이 구도심 활성화의 빛과 그림자다.

지난 9월 제주도와 제주도영상위원회는 지난해 말 불거진 영화문화예술센터(이하 센터) 재계약 문제가 원만히 해결되지 않아서 사실상 임대 종료 수순을 밟게 되었다고 밝혔다. 문화예술벨트가 야심차게 시도되는 이때에 정작 센터는 칠성로 시대를 접게 된 것이다. 센터는 2010년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코리아극장(1965년 개관) 건물을 임대하여 지금껏 활용해왔다. 그런데 제주 개발 붐으로 부동산 가격이 급상승한 데다 원도심 활성화 사업 영향으로 주변 상가와 건물의 임대료가 치솟았다. 관계자들은 영상위원회 건물을 리모델링하거나 원도심 내 또 다른 멀티플렉스 건물을 임대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센터가 칠성로가 광복 이후 문화 중심지였음을 기억하는 매개물이었다는 점을 상기하면, 이번 일은 젠트리피케이션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초침 세 바퀴, 과거와 미래가 포개지는 데 지연되는 거리

비에 젖은 도시가 번지는 것은 차창을 타고 흐르는 빗물 탓이다. 비에 젖더라도, 도시의 형태가 번지는 것은 아니다. 입체파의 추상화처럼 다만 일그러져 보일 뿐이다. 일그러진 도시의 형상은 우리 인식의 투사(投射)다. 재생이니 활성화니 하는 명분을 내걸고 도심을 부수고, 뜯어내어도 공간은 일그러지지 않는다. 이다음 언젠가 다시 한 번 재생, 활성화를 내걸었을 때 부서지고 뜯어내어질 ‘금’이 그어지는 것에 불과하다. 아홉 시 사십오 분에는 분침과 시침이 만나지 않는다. 초침이 세 바퀴 더 돌아야 한다. 이 세 바퀴가 ‘현재’의 실제 거리다. 우리는 늘 지금이 과거의 완벽한 결론이라고 생각하거나, 그러기를 바란다. ‘현재’란 이런 생각과 실제의 ‘차이’, 그 때문에 ‘지연’되고, 초점불일치를 메울 수 있는 ‘길이’를 가진다. 우리의 삶은 과거를 거쳐 현재로, 현재를 지나 미래로 가는 길이 아니라, 언제나 초침 세 바퀴만큼의 거리를 더 필요로 하는 ‘길’이다.

9월 29일부터 10월 2일까지 영화문화예술센터에서는 제17회 제주여성영화제가 열렸고, 센터 앞 광장인 칠성로 야외무대 일대에서는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에 ‘2016 문화가 있는 날 지역 거점 특화 프로그램 문화로 통하는 칠성로’가 열린다. 우리 대학에서 칠성로로 가려면 6, 7, 10, 28, 37, 43, 43-1, 87, 500번 버스를 타고 중앙로 사거리 정류장에 내려, 바다 방향으로 372m 이동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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