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문화를 찾아서 <4> 그 많던 헌책방은 어디로

헌책방, 서점의 쇠퇴, 색다른 서점 등장
독립출판물 판매 등 차별화 전략

▲ 제주에서 제일 오래된 헌책방 책밭서점


국제 여론조사기관 ‘NOP 월드’는 세계 30개국 3만명을 대상으로 ‘국민 1인 평균 주당 독서 시간’을 조사했는데, 그중 한국이 3시간 6분으로 ‘꼴찌’를 했다. 올해 초 발표한 문화체육관광부의 ‘2015 국민 독서실태 조사’ 결과도 성인 연간 도서 구입량이 3.7권에 불과했다. 성인 10명 중 3명 이상은 1년에 책을 한 권도 안 읽었다고 했다. 독서를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47.5%가 ‘시간 또는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라고 답했다.

◇서점의 변화

요즘 서점에는 각종 기출 문제집이 책장의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웬만해서는 서점에서 읽을 만한 소설을 찾기가 어렵다. 동네서점이 점점 문제집 구매점으로 변질되고 사람들의 발길이 줄어드는 가운데 헌책방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제주도에서 제일 오래된 헌책방 ‘책밭서점’은 1985년에 시작해 제주시 광양로터리 인근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골목에 위치해 있어 찾기 쉽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다. 제주에 몇 안 되는 헌책방 중 가장 오래된 곳으로서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새로운 형태의 서점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독립출판물이 진열돼 있고 커피를 마시거나 미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다양한 문화가 가득한 복합문화공간인 셈이다. 독립 출판이란 작가가 직접 콘텐츠를 제작하고 인쇄, 홍보, 유통까지 직접 해내는 출간물을 말한다. 이런 독립 출판물이 시작을 한 것은 2000년대 중반부터다. 2009년 독립출판물 페스티벌인 언리미티드 에디션이 처음 열렸고 일반 서점에서 볼 수 없는 책들이 점차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독립 출판물 위주로 판매하는 독립 출판 서점이 생겨났다.

◇독립출판물의 등장

출판업계 종사자들은 “이제 출판은 사양산업”이라며 미래가 어둡다고 말한다. 책의 유통 구조뿐 아니라 출판 기술이 발전하면서 ‘1인 출판’이 늘어나는 등 출판 환경 또한 급변하고 있다. 너도나도 종이책을 수집하듯 사던 시대는 이제 지났기 때문이다. 다만 좋은 책은 여전히 종이책으로 살아남을 것이고, 디지털 시대라 해도 종이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서점을 찾아갈 것이라는 것을 믿는다. 그래서 전체 독자 수는 줄어도 여전히 존재하는 다양한 독자와 소통하는 ‘다품종 소량 출판’이 새로운 출판 트렌드가 됐다. 책의 미래를 종이책 판매 부수와 연결시켜 말하는 것은 이제 옛말이 돼버린 것이다.

책의 미래가 여전히 밝다 해도 옛날식 서점은 경쟁력을 잃었다. 종이책 판매량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중소 서점은 문을 닫거나 변신을 꾀해야 한다. 이제 서점에서 커피를 파는 것은 더 이상 신기한 일이 아니고, 서점에서 술과 안주를 파는 것이 새롭지 않다. 방송인 노홍철, 가수 요조 등 유명인이 작은 책방을 열었다는 소식과 함께 더 많은 동네 책방이 생겨나고 있다. 언제부턴가 우리 생활로부터 멀어져 있던 책방들이 다시 골목 어귀에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Like it(라이킷)

▲ 제주에서 제일 오래된 헌책방 책밭서점(사진 위). 독립출판물, 인문서적, 아기자기한 소품을 판매하는 라이킷(아래).


제주에도 이러한 서점의 흐름에 따라 다양한 책방이 생겨나고 있다. 그 중 칠성통에 위치한 ‘라이킷’을 찾았다. 칠성통은 한때 제주시내 최대 번화가 중 하나였다. 몇 년 전부터 상권이 쇠락해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졌으나 최근 개성 있는 공간들이 하나 둘씩 문을 열면서 점차 거리에 활기가 살아나고 있다.

라이킷은 칠성통에서도 인적이 드문 골목에 위치해 있다. 안주희씨가 운영하는 예술서적ㆍ독립출판물 중심의 라이킷과 노우정씨가 관리하는 인문서적 위주의 트멍으로 공간이 나뉜 독특한 구조다. 독립출판물의 주고객은 아무래도 젊은 여성에 한정돼 있으니 남성들이 읽을 만한 책도 갖추면 좋겠다고 생각해 두 공간으로 구성했다고 한다.

책방에선 매달 주제를 정해 관련 서적과 디자인 소품을 함께 판매하는 작은 이벤트를 연다. 이달의 주제는 바다이다. ‘엄마의 바다’, ‘제주 바다 물고기’, ‘텅 빈 바다’ 등 바다에 관한 여러 가지 서적이 진열돼 있었고 돌고래 인형을 판매하고 있었다.

앉아서 책을 볼 자리는 없지만 트멍에 벤치가 마련돼 있어 잠깐 쉴 수 있다. 책뿐만 아니라 제주지역 디자이너들이 만든 엽서와 그림, 아기자기한 소품들도 눈에 띈다. 이곳을 방문했을 때는 날씨가 흐리고 바람이 많이 부는 오후였는데, 책방 안에는 두 사람정도의 손님이 있었다. 그 이후에도 여러 명의 손님이 이곳을 찾았다.

대부분의 손님은 젊은 여성이었다. 책방 안에는 인디음악이 흘렀다. 노르스름한 조명과 포근하고 따뜻한 분위기의 내부 디자인이 어우러져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단순히 책을 구매하는 서점이라는 느낌보다는 책을 읽고 노래를 들으며 휴식을 취하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신생 서점들은 다른 곳들과 다른 차별성을 두며 그 나름대로 경쟁력을 키워가고 있다. 비록 오래된 헌책방은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독특한 개성으로 독자들에게 더욱 친숙하게 다가가는 서점들이 생기고 있어 종이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그나마 위안이 된다.

◇새로운 서점의 역할

비록 순수문학이 주목받고 있지 못하는 상황이지만 이러한 다양한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서점들이 많아지고 책이 다시 읽히는 시대가 온다면 언젠가 순수문학이 다시 조명 받는 날이 오지 않을까. 책을 읽는 즐거움을 아는 사람들이 많아지길 바라면서 비록 과거의 오래된 서점들은 사라져 버릴지도 모르지만 좋은 책은 오래도록 간직될 것이고 새로운 형태의 서점들이 그 자리를 메꿔 나갈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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