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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영산, 백두산 통해 본 분단의 아픔
“우리는 아직 만주에 두고온 것이 너무나 많다”
대한의 역사, 만주에 가다 <하> 만주탐방을 마무리하며
   
▲ 비가 오는 날씨에도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에서 사람들이 하산하고 있다.

중국 동북3성 본보 해외 취재

2016년 7월 10일부터 18일까지 8박9일간 철기이범석 기념사업회(회장 박남수 전 육군중장)에서 운영하는 광복청년아카데미에서 제11회 해외사적지 탐방이 진행됐다. 선조들이 남겼던 위대한 영토인 만주를 기자가 그들과 함께 동행했다.  <편집자 주>

◇민족의 영산 백두산에 오르다

다음 이동한 곳은 백두산이다. 백두산 등반은 단원들 대부분의 꿈이기도 했다. 그들은 “이럴 때가 아니면 언제 올라보겠냐”며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백두산 꼭대기에 위치해 있는 천지는 칼데라호로 가장 깊은 지점은 수심이 약 340 m이며, 3차례에 걸친 폭발로 이뤄진 화산이다. 그리고 그 천지를 보기 위해서는 4개의 코스중 하나를 선택해 올라야 한다. 4개 코스 중 3개 코스는 중국 측에서, 1개 코스는 북한 측에서 오를 수 있다. 중국 측에서 오르는 3개 코스는 각각 서파, 남파, 북파로 불려지고 있다.

기자는 서파를 통해 백두산에 등반하기 시작했다. 서파의 입구에 도착하자 주차장 곳곳에 백두산이 아닌 장백산이라고 적혀 있었다. 역시 동북공정이었다. 이제는 그러려니하고 가볍게 무시했다. 백두산에 가기 전날 가이드는 “백  번가면 두 번 볼 수 있다고 해서 백두산이다”며 “하지만 여러분은 반드시 백두산을 볼 수 있을 것이다”고 기대감을 증폭시켜줬다. 하지만 기대는 채 하루를 넘기지 못했다. 아침부터 비가 계속 내렸고 안개도 껴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정상에 올라가면 안개가 걷히지 않을까하는 기대심에 서파입구까지 걷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입장료(한국돈 약 3만5000원)를 내고 버스를 타고 약 2000m지점까지 버스로 이동했다. 그리고 약 1400여개의 계단을 올라 서파에서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인 2450m지점에 도착했다. 정상에는 안개천지였다. 천지를 못 본다는 마음에 안타까움이 들었다. 다행히 조금씩 안개가 걷혀 북한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백두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장군봉(2744m, 북한이 관리중)이 보였다. 또한 정상 위에는 비석이 있었는데 한쪽면에는 한문으로 중국이, 다른 면에는 한글로 조선이라는 글씨가 적혀 있었다.

천지에 오르자 과거 TV프로그램인 1박2일에서 백두산에 방문해 천지물을 뜬 것이 기억났다. 가이드에게 지금도 천지물을 뜨는 것이 가능하냐고 묻자 그는 “미디어 효과로 인해 천지물을 받을 수 있는 곳에서 인명사고가 발생했다”며 “그래서 지금은 천지물을 직접 만질 수 없다”고 말했다.

백두산 정상에는 중국 공안들이 관광객들을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있었다. 그들은 특히 한국관광객들을 유심히 살폈는데 한국인들이 애국가를 부르거나, 구호를 외치지 못하도록 눈을 떼지 않았다. 백두산에서 내려오면서 만 가지 감정이 교차했다. 선조들이 관리했던 땅이고 한민족의 영산인데 중국 측에 눈치를 봐야하며 우리의 땅에서 오를 수 없는 것이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조선족이 살고 있는 연변에 가다

   
▲ 저녁 시간에 연변시에 거주하고 있는 조선족들이 여유를 즐기며 장기를 두고 있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조선족이 살고 있는 자치주인 연변이었다. 단원들은 이곳에서 연변 사람들의 삶을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현재 연변에는 11개 민족이 거주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약 절반이 조선족이고 그 뒤를 이어 한족, 만주족 등이 살고 있다.

마지막 밤이여서 그런지 자유시간은 충분했다. 기자는 그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지 궁금해 시내를 둘러봤다. 길거리는 그동안 봤었던 중국시내와는 달리 굉장히 편안했다. 그 이유는 바로 간판에 써진 한글이었다. 비록 한국에서 쓰는 말과는 조금 달랐지만 우리의 언어를 쓴다는 점에서 한민족이라는 동질감과 유대감을 느낄 수 있었다. 곳곳에서 우리말이 들렸고 길거리 사람들은 한국에서 왔냐고 묻기도 했다. 시내를 조금 더 둘러보고자 강을 따라 걸었다. 저녁이 조금 지난 시간이었는데 사람들은 밖으로 나와 여가활동을 즐기고 있었다. 춤을 추기도 했고, 장기를 두기도 하고 운동을 하기도 하는 등 각자의 활동을 즐기고 있었다. 뭔가 한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여유로운 모습들이 그들에게 느껴졌다. 그렇게 아름다웠던 연변시내의 풍경을 뒤로 한채 기자는 탐방을 마무리하며 한국으로 향하는 배에 몸을 실었다.

◇만주탐방을 마치며

8박 9일간의 여정은 짧았지만 탐방을 통해 얻은 메시지는 확실했다. ‘우리는 아직 만주에 두고 온 것이 너무나도 많다.’ 만주의 지배자인 고구려는 동북공정에 의해 중국의 역사가 돼버렸고 조국의 광복을 위해 힘쓴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을 잃었으며 한민족인 조선족의 국적을 중국으로 바꿔버렸다. 이렇듯 우리는 고구려의 역사를 묻고 왔으며, 독립운동가들의 애국정신을 내버리고 왔고 같은 민족을 만주땅에 두고 왔다.

오랜기간 한민족이 다스렸던 만주. 나라를 빼앗겼을 때 민족 부흥의 초석이 됐던 만주, 안타깝게도 지금은 동북공정으로 인해 왜곡된 역사를 보고 있고, 중국을 통과해야만 갈 수 있는 땅이지만 우리 스스로 의 힘으로 갈 수 있는 그날을 기대해 본다.

김해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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