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란 무엇인가> 저자 카야노 도시히토|산눈
<사회를 바꾸려면> 저자 오구마 에이지|동아시아

지난 겨울 우리는 촛불을 들었다. 서울 광화문에서, 부산에서, 광주에서, 제주에서, 촛불은 겨울밤을 뜨겁게 밝혔다. “이게 나라냐”라는 외침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보여준 ‘막장’에 대한 비판이기도 했다. 상식을 저버린 권력의 민낯은 참담했다. 촛불의 광장에서 우리는 저마다의 언어로 민주주의를 이야기했다. 그것은 내가 나의 언어를 가지고 있다는 자각이자, 타자의 언어를 이해하는 소통의 출발 지대였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언어로 이야기하고 서로의 언어를 이해했다.

다시 봄이다. 이제 촛불의 광장을 뜨겁게 달군 질문에 우리가 답해야 할 때이다. 그런 점에서 카야노 도시히토의 『국가란 무엇인가』와 오구마 에이지의 『사화를 바꾸려면』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국가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묻는 『국가란 무엇인가』와 사회 변혁의 힘이 행동에 있다고 이야기하는 『사회를 바꾸려면』은 지금-여기의 문제를 바라보기 위한 좋은 도구이다.

『국가란 무엇인가』는 막스 베버, 헤겔, 푸코 등을 횡단하며 국가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카야노 도시히토는 물리적 폭력을 독점한 국가의 본질을 묻는 일은 결국 ‘폭력의 구조’에 대해 성찰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국가는 법을 만들고 법을 집행한다. 벤야민은 이것을 법 제정적 폭력과 법 보존적 폭력이라고 부른다. 법을 만드는 자가 법을 집행하는 모순은 국가가 지닌 폭력성의 본질이다. 입법권자이자 집행권자인 국가의 특수성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일은 때론 불편하다. 그 불편의 정체는 우리가 자명하다고 믿었던 ‘우리’라는 공동체의 분열과 마주해야 하는 낯선 경험 때문이다.

한때 우리는 국가의 호명에 반드시 응답해야만 한다고 배웠다. 그것을 외면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일찍이 톨스토이가 국가의 폭력성에 대해 이야기했듯이 국가는 우리라는 공동체를 폭력적으로 재구성한다. 국가의 폭력성에 대한 성찰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국가란 무엇인가』는 국가의 본질이 물리적 폭력의 독점에 있다면서 ‘국가’라는 이름으로 상징화되는 공동체의 선의를 의심한다.

선한 권력은 없으며 권력의 본질은 폭력에 있다. 이는 결국 민주주의의 본질이 무엇인지, 그리고 민주주의라는 정치체제가 완성되지 않은 결여의 산물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촛불이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 지점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민주주의는 완성형이 아니라 가능형으로 존재하고 그래서 민주주의는 늘 갱신될 수 있는 것이다. 폭력을 생산하는 권력 구조의 문제와 마주하는 일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사회를 꿈꿀 수 있다.

『사회를 바꾸려면』은 새로운 상상의 힘을 현실화하는 방안이 무엇인지를 역설한다. 이 책의 결론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행동하라’일 것이다. 결여를 느끼지 못하는 자는 움직이지 않는다. 고정된 주체는 상식의 함정에 갇히고 편견을 재생산한다. 태극기를 흔들며 박정희와 박근혜를 목 놓아 부르는 사람들이야말로 이 함정에 갇힌 자들이다. 세상은 자연히 좋아지지 않는다. ‘아니다’라고 말하는 행동의 힘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끊임없이 의심하고 회의하라. 그리고 그 고민을 말과 글로, 행동으로 표현하라. 두 책이 이야기하는 것은 이것이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기성의 권위에 짖눌리지 말고, 자신의 언어로, 세상과 마주하는 것. 때로 그 두꺼운 벽에 부딪혀 피 흘리고 쓰러지더라도 한번은 덤벼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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