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4일 제주도의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제주 행정체제 개편 방안 모색’ 토론회에서 임승빈 명지대 교수가 주제발표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인 2005년도 우리 제주사회의 대표적인 사회갈등 현안 중 하나는 제주도 행정계층구조 개편 문제였다. 2004년 9월 제주도 행정개혁추진위원회에서 도민여론조사를 통해 최적의 혁신적 대안을 선정한 다음 이를 점진적 대안과 함께 주민투표를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주민투표를 놓고 이를 추진하려는 중앙정부, 제주도와 이에 대해 주민투표의 적법성과 정당성에 문제가 있다며 반발하는 기초자치단체와 시민단체들 간의 첨예한 대립으로 심각한 지역사회 갈등이슈가 됐었다. 결국 2005년 7월 27일 주민 투표를 실시한 결과, 제주도의 4개 시·군 행정구조를 단일광역자치로 하고 그 밑에 2개 통합시(제주시+북제주군, 서귀포시+남제주군)로 개편하는 혁신안을 투표자의 56.7%가 선택했다. 이를 근거로 2006년 7월 1일 제주특별자치도가 출범했다. 이후 민선 5기(2010~2014년) 우근민 당시 도지사는 기초자치권 부활 등을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돼 1기 행정체제개편위를 통해 ‘행정시장 직선제(시장 직선, 의회 미구성)’를 대안으로 내놓았으나, 제주도의회와 정치권의 반대로 무산됐다.

제주도 행정계층구조 개편 배경과 결과

현행 우리나라의 지방행정계층은 자치계층과 행정계층의 이원적 구조로 형성된 중층제이다. 자치계층의 경우 광역자치단체로서 특별시, 광역시, 도가 그리고 기초자치단체로서 시, 군, 자치구가 있어 2계층제를 이루고 있다. 이에 비해 행정계층의 경우 읍·면·동이 있고, 읍·면의 밑에는 리를 두고 있으며, 또한 인구 50만 이상 일반시에는 자치단체가 아닌 행정구를 두고 있다. 따라서 자치계층과 행정계층을 합치면, 3계층 내지 4계층제로 구성되어 있다.

제주도 행정계층구조 개편에 대한 논의는 2000년 6월 존스 랑 라살르사(홍콩)사가 작성한 ‘제주도 국제자유도시 개발 타당성 조사 및 기본계획’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당시 보고서에서는 기존의 행정체제로는 국제자유도시 정책추진이 어렵기 때문에 자치행정체계가 개선돼야 한다고 제시했다. 제주발전연구원의 제2차 제주도종합계획(2001)에서도 자치행정체계를 기존의 이층제에서 단층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2002년 12월 4일 ‘제주도행정개혁추진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가 제주도의회에서 제정(제2371호) 되면서, 지방의회 의원, 학계, 시민단체 등 30명으로 제주도 행정개혁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개편 논의를 본격화했다. 이후 제주도와 제주발전연구원의 ‘제주특별자치도 기본방향 및 실천전략(안) 중간용역보고서(2004. 8. 11)’에서는 제주형 자치모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기에 이르렀다.

제주형 자치모형은 제주도의 특수한 지리적 여건과 특성을 고려하여 단층제 행정계층구조의 개편과 다양한 자치분권적 요소를 가미하여 제주도의 현실에 맞는 자치분권을 실현하기 위한 내용들을 포함하고 있다. 제주형 자치모형 용역결과, 현행 자치계층구조를 그대로 유지하고 자치단체간의 사무 및 기능 조정 등 운영시스템을 개편하자는 점진적 대안(점진안)과 제주도를 하나의 광역단위(도)로 통합하고 하부에는 행정시군(임명직)을 두자고 하는 혁신적 대안(혁신안) 즉, 광역개편안이 제시됐다.

이후 행정구조 개편과 관련한 도민사회의 논란이 본격화됐다. 행정구조 개편과 이해관계가 있는 기초자치단체, 지방의회, 시민단체 등에서 본격적으로 개편 반대의견을 제시하는가 하면, 행정구조 개편을 제주특별자치도 추진과 병행하여 동시 추진할 경우 정부의 지방분권정책과 제주특별자치도의 추진에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이 강력하게 대두됐다.

행정계층구조 개편 반대 측의 가장 중요한 반대논리는 주민투표의 적법성과 정당성의 문제이다. 즉 자치권을 부여받은 시ㆍ군의 문제는 해당 지역민들의 선택에 따라 결정돼야 하는데 행정자치부와 제주도가 무리하게 법을 해석해 시ㆍ군 폐지를 결정하려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또 주민투표의 적법성과 정당성에 문제가 있으므로 시장ㆍ군수들이 헌법재판소에 제기한 권한쟁의 심판청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정부와 제주도는 입법절차 등 행정계층 구조 개편과 관련한 추진을 중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입장에서 기초자치단체장과 사회단체로 구성된 ‘지방자치 수호 범시민위원회’와 계층구조 도민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법적 투쟁과 시민궐기대회 등을 통해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행정계층구조 개편 이슈는 찬·반 양측의 격화와 사회적 갈등이 심화됨에 따라 이에 대한 대책과 해결에 관심이 모아졌다. 점차 행정구조 개편 문제와 특별자치도 추진을 별개로 논의해야 한다는 분위기로 확산됐고, 제주도는 2004년 9월 13일 별도의 추진체를 두고 분리 추진해 나가기로 하는 등 문제해결을 위한 각계의 요구가 확산됐다. 이러한 해결방안 중의 하나로써 나온 것이 주민투표이다. 행정개혁추진위원회는 2004년 9월 20일 도민여론조사를 통해 혁신적 대안을 선정한 다음 이를 점진적 대안과 함께 주민투표를 실시키로 했다. 이후 제주도는 행정계층구조 개편 추진의 정당성과 도민인지도를 근거로 주민투표일을 7월 27일로 정하고 주관부처인 행정자치부장관에게 공식 건의했다.

주민투표율은 36.73%를 기록했다. 주민투표 결과 제주도의 현행 4개 시ㆍ군 행정구조를 단일광역자치로 하고 그 밑에 2개 통합시(제주시+북제주군, 서귀포시+남제주군)로 개편하는 혁신안을 투표자의 56.7%가 선택했다. 반면에 행정구조를 그대로 유지하는 점진안에 대해서는 43.2%의 지지를 보였다. 혁신안과 점진안 지지율 격차는 13.5%를 보였다. 혁신안 찬성은 제주시(64.5%)와 북제주군(57.2%)에서는 과반수를 넘겼으나, 서귀포시(43.6%)와 남제주군(45.1%)에서는 점진안에 밀렸다. 제주도 전체적으로는 혁신안이 앞섰으나 점진안이 우세한 서귀포시와 남제주군의 경우 주민 반발이 거세게 일었다.

제주 주민투표는 전국 첫 주민투표라는 기록과 함께 다른 지역의 행정계층구조 개편의 시험무대로 평가됐다. 그러나 투표 이후에도 찬ㆍ반 양측의 심한 갈등이 지속되고 있는 데다 시장, 군수들이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심판청구를 제기한 점, 투표율마저 낮아 대표성이 부족한 점, 남북 지역 간 선택이 뚜렷하게 갈린 점 등 주민 통합을 위해 앞으로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고 당시 언론은 지적했다. 이와 함께 제주도 행정구조 개편이 차기 단체장과 의원의 임기 개시일인 2006년 7월 1일부터 적용되기 때문에 지방자치법 제정과 지방교부세 산정, 제주도의원 정수 확대 등을 담은 제주도 행정구조 및 특례 등에 관한 특별법 제정 시일이 급박하다는 문제점도 제기됐다.

제주도는 2006년 7월 1일 특별자치도로 출범하면서 기존 4개 기초단체를 자치권이 없는 제주시, 서귀포시 등 2개 행정시로 통합했다. 제주도지사가 행정시장을 임명하는 광역 자치 단일행정체제로 바뀌었다. 하지만 기초단체가 폐지되면서 권력이 제주도지사에게 집중돼 일방적인 독주가 문제가 됐다. ‘도본청-행정시-읍면동’의 3단계 행정 구조는, 직선 시장 때의 ‘시·군 기초단체-읍ㆍ면ㆍ동’ 2단계에 비해 오히려 1단계가 추가됐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제주도는 이번 2기 행정체제개편위가 도출한 행정체제 개편 모델에 대해 정부 협의 등을 거친 후 제주특별법 개정을 통해 도입을 추진한다는 방침이지만 어떠한 결정이 내려지든지 논란은 여전히 남아 있다.

저작권자 © 제주대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