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촛불은 가장
명예롭고 위대한 혁명…
대학 벚꽃길을 역사와 추억이
만나는 현장으로 가꿔보자

지난 겨울은 그다지 춥지 않았던 것 같다. 실제 기온은 어땠는지 모르지만 가슴에서 느끼는 기온은 따스함을 넘어 뜨겁기까지 했다. 바로 촛불 때문이었다. 10월 말부터 불타오르기 시작한 촛불은 겨우내 주말마다 온누리를 밝히면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를 외쳤다. 그 조그만 촛불들은 어느새 1600만 물결이 되어 출렁거렸고 마침내 헌법을 무시한 불통 대통령을 끌어내리는 혁명을 이뤄냈다. 우리 현대사를 보면 4ㆍ19혁명, 5ㆍ18광주민주화운동, 6월항쟁 등 고비마다 국민들이 새 역사를 써왔지만 이번의 촛불혁명이야말로 가장 명예롭고 위대한 혁명이었다고 생각한다. 단 한 명의 희생자도 없이, 그 어떤 물리적 충돌도 없이 이토록 위대한 승리를 했음은 아주 자랑스러운 일이다. 이 지구상에서 그 어떤 나라가 이러한 무혈혁명을 이뤄낸단 말인가.

나는 촛불의 열기로 인해 이 봄의 꽃들이 여느 해보다도 아름다운 망울을 터뜨리고 있음을 보고 있다. 매화들이 고매한 자태를 자랑하는가 하면 목련이 눈부시게 화사하다. 아마 복수초를 비롯한 오름자락의 들꽃들도 하나둘씩 곱게 피어나고 있을 것이다.
이 봄에 더욱 기대되는 것은 벚꽃이다. 제주도는 왕벚나무 자생지여서 그런지 예서제서 벚꽃이 아름답게 피어난다. 제주대학교 진입로의 벚꽃은 특히 아름답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꽃잎 흩날리는 벚꽃 길을 거닐면서 셔터를 눌러댄다. 누구나 제주대학교 벚꽃 사진 몇 장씩은 갖고 있을 것이다. 대학박물관에서 벚꽃 사진 콘테스트를 개최한 적도 있다.

내가 꼽는 제주대학교 벚꽃 길의 가장 멋진 사진은 1989년에 김기삼 작가가 찍은 흑백사진이다. 벚꽃이 만개한 사월에, 그 화사한 꽃그늘 아래를 많은 청년학도들이 걷고 있다. 그들은 주먹을 높이 들었으며 일부는 머리띠를 두르고 일부는 마스크를 꼈다. 이 장면에 이어진 사진도 있다. 맞은편에는 장비를 착용한 전투경찰이 밀집해 있고 일부 학생들이 대열과 전경들 사이에서 움직이는 가운데 뿌연 최루가스가 날리고 있다. 이쯤이면 무슨 사진인지 짐작할 것이다.

바로 4ㆍ3 진상을 규명하라며 시위를 벌이는 장면이다. 2000년 특별법이 제정되고, 2003년 정부의 진상조사보고서가 채택되면서 대통령이 공식 사과하고, 2014년 국가추념일이 되는 등 4ㆍ3운동이 상당한 성과를 거둔 상황이지만, 그 과정에서 흘린 땀과 눈물은 너무나 많았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언제나 제주대학교 학생들이 있었다. 금기의 벽이 높던 시절에 가장 앞장서서 진상규명을 외쳤다. 사월을 맞으면 더욱 그러했다. 해마다 벚꽃이 꽃망울을 터뜨리는 시기는 곧 4ㆍ3진상규명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됨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만큼 제주대학교 벚꽃 길은 아름답고 영예로운 길이다.

그러니 우리가 여기서 멋진 축제 한마당을 펼칠 만하지 않은가. 우리가 이룬 영예로운 4ㆍ3운동의 성과를 기념하고 발전적으로 계승하기 위한 한판을 벌여보자는 것이다. 4ㆍ3정신의 의미를 곱씹어보면서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도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그렇다고 예전처럼 돌과 화염병 던지며 투쟁하자는 게 아니다. 머리띠를 두르고 비장하게 구호를 외치자는 게 아니다. 거닐고 놀자. <벚꽃엔딩>처럼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맘껏 즐기자.

다만, 연예인은 초청하지 말고 학생들이 직접 노래하고 공연하는 자리를 만들자. 총학생회에서는 선배들의 진상규명운동을 재현하는 퍼포먼스를 벌여보자. 연인들이 손잡고 걷는 사진 옆에 투쟁하는 사진도 함께 전시하자. 우리는 이미 경험했지 않은가. 촛불집회가 비장한 투쟁의 장이 아니라, 함께 즐기는 축제의 현장이었음을. 그 경험을 토대로 우리 벚꽃 길을 역사와 추억이 만나는 멋들어진 현장으로 가꿔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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