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31일 새벽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구속영장이 발부되었다. 역대 세 번째 구속된 전직 대통령이지만 외신에서는 “한국의 대통령이 구속된 것은 1990년대 중반 부패 혐의로 구속됐던 전두환, 노태우 이후 처음”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우리 근현대사에 여러모로 ‘처음’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첫 부녀 대통령, 첫 독신 대통령, 첫 과반 득표 대통령, 첫 여성 대통령, 첫 이공계 출신 대통령, 첫 탄핵 대통령 등이 그 기록이다. 개인은 물론 국가적으로도 부끄러운 기록 많지만, 그렇지 않은 것들도 많다. 아쉬움이 많을 수밖에 없지만, ‘처음’과 관련하여 아쉬움이 남는 일이 하나 더 있다.

기억을 몇 해 전으로 돌이켜보자. 2014년 4월 3일 제주4ㆍ3평화공원,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맨 앞자리를 채운 여야 정치인들이 보인다.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 새정치민주연합 김한길, 안철수 공동대표, 정의당 천호선 대표와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까지 4개 정당 대표가 자리를 잡았다. 특별법 제정을 대표 발의한 추미애 의원은 물론, 국회 대정부 질문으로 참석이 불투명하다던 정홍원 총리의 모습도 보인다. 그 곁으로 제주4ㆍ3희생자유족회에서 붙인 현수막이 나부낀다. “박근혜 대통령님 4ㆍ3희생자추념일을 지정해주셔서 정말 고맙수다.” 그러나 박근혜 전 대통령은 끝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감기 몸살 등 건강상의 이유를 들었다. 이로써 첫 법정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제66주년 제주4ㆍ3추념식에 참석하는 기록은 무산되었다.

2014년 첫 법정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제주4ㆍ3추념식은 ‘어둠에서 빛으로’라고 슬로건을 내건 첫 국가 차원의 행사였다. 대통령의 불참 외에도 추념식 합창곡으로 ‘아름다운 나라’가 울려 퍼지는 등 뒷말이 많았다. 추모의 애잔한 정서가 깔려야 할 추념식 현장 분위기에는 맞지 않는다는 도민의 질타가 이어졌다. 주최 측에서는 공식 지정된 합창곡이 없는 상황에서 여러 모로 고려된 합창곡이라고 해명했지만, 광주 5ㆍ18민주화운동기념일의 실질적 추모곡인 ‘님을 위한 행진곡’ 논란과 무관하지 않다는 후문이 일었다. 그로부터 보름이 채 지나지 않아 벌어진 세월호 침몰 사건, 그리고 탄핵과 구속에 이르기까지의 일들로 추론컨대, 박 전 대통령은 주권자인 국민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너무도 부족했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읊었던 엘리엇(T.S.Eliot)의 ‘황무지’가 자주 거론되는 까닭은 우리 근대사에서 혁명을 비롯한 정치적 사건이 많이 일어난 달이기 때문이다. 그 초입에 제주4ㆍ3이 있다. 미군정시기이던 1947년의 3ㆍ1발포사건 이후 일 년 동안은 물론, 1948년 4월 3일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는 “잠들지 않는 남도”의 기억을 가지게 되었다. 그날로부터 오늘까지 두고두고 이 세월은 “반역의 세월”로, “통곡의 세월”로 기억되었다.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지 3년이 지난 3월 제주지역 4개 대학 총학생회는 차기 정부가 4ㆍ3의 역사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 요구에 정치권이 성실하게 응답하는 것이야말로 잠들지 않는 남도에게 필요한 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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