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도 수십 번씩 오르내리는 엔화의 환율 뒤에는 복잡하게 얽힌 나라 간 경제정책이 있었다.

첫 해외여행. 그 설레고도 떨리는 마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일본 오사카로 향했다. 각 나라마다 물가가 다르듯 같은 상품마저도 가격은 천차만별이었다. 갖고 있는 돈을 아끼며, 열심히 계산기를 두드리며, 차차 100엔짜리 동전과 1000엔짜리 지폐에 대한 가치를 직접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2011년에 썼던 위안부할머니에 대한 글을 봤다. 제목은 99엔의 가치. 당시에는 국가 간 이루어지는 금전관계에 무지했었기에 다시 보니 낯이 붉어졌다. 글을 썼던 당시 일본 정부는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의 후생연금 탈퇴 수당으로 물가와 화폐가치 변동을 고려치 않고 해방 당시의 금액인 99엔을 지급하겠다고 나섰다.

그리고 2015년이 막바지에 다다를 무렵 통보와도 같은 서신이 대한민국에 날아왔다. 미온적이었던 일본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며 소녀상 철수와 함께 “10억엔”이라는 돈으로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마침표를 찍는다고 말했다.

혹자는 말한다. “이제 그 정도면 되지 않았느냐”, “그 정도면 남은 노후를 준비할 수 있지 않냐”라고. 냉소적이고도 편협한 말에 여론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 달아올랐지만 어느 누구도 쉽게 분노를 표출할 수 없었다.

하루에도 오르내리는 가격이라는 것으로 꽃다운 나이에 청춘을 잃어버린 분들에게 어떠한 기준으로 어떠한 방법으로 어떻게 금액을 정할 수가 있을까.

역사와 경제는 결코 뗄래야 뗄 수가 없다. 수없이 쌓여온 시간들이 역사를 만들고, 좀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수없이 많은 과정을 거쳐 오늘날의 경제성장을 이루어냈다. 분명 10억엔이라는 액수는 천문학적인 액수이다. 100엔짜리 음료수를 생산해 내는 공장 몇 곳을 만들 고도 남을 액수이다. 그러나 할머님들의 용기 있는 증언과 학생들의 처절한 소녀상 철거의 사투는 결코 돈을 위해서가 아니다.

어느덧 수요 집회가 열린지 1270주차가 지나고, 소녀상이 설치된 지도 6년이 지나 현재 전국 곳곳에 30여개가 설치되어 있다. 그것은 형식적인 행사도, 그저 그런 기념비적인 동상이 아닌 후세의 경종을 울리는 메시지일 것이다. 금액의 틀 보다는 당신들과 역사를 잊지 말아주시기를 바라는 것 아닐까. 우리 또한 그것이 단순한 가치의 지표가 아닌 고귀한 청춘을 희생하신 그 분들께 나비의 날개 짓처럼 자유와 평화를 바라는 응원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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