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하반기부터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단어는 ‘혁명’이다. 올해 4월 29일까지 23차에 걸쳐 열린 촛불집회는 대통령의 탄핵을 이끌어내고 조기대선을 일구어낸 ‘촛불혁명’이었다. 주최측 추산 일일 최대 232만 명이 모였으며, 누적 참가인원 약 1700만 명을 달성하는 등 우리 헌정사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다양한 기록을 남긴 주말 촛불집회는 말 그대로 혁명이었다. 한편 또 다른 “혁명”이 우리 사회를 관통하고 있기도 하다. 그 발단은 촛불시위가 시작되기 6개월 전인 2016년 3월 알파고(AlphaGo)와 이세돌의 바둑대결이었다. 이후 차세대산업혁명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4차 산업혁명”에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혁명을 뜻하는 영단어 ‘revolution’은 라틴어 ‘re(back, against, again)’와 ‘volvere(turn, roll)’에서 비롯된 것으로, ‘등 돌리다(revolt)’, ‘숙고하다(revolve)’ 등과 같은 어원에서 비롯되었다. 이 어원에는 ‘회전’과 ‘순환’, 그리고 ‘변혁’과 ‘혁명’이라는 의미가 동시에 들어 있다. 한자어 혁명(革命)은 64괘 중 49번째인 혁(革)괘에서 비롯되었다. 그 모양은 연못[兌卦] 아래에 불[離卦]이 있어 어울려 다투는 모습[澤火革]이다. 그래서 “군자는 이것(연못 속에 불이 있는 모양)으로써 내력을 다스려 때를 밝힌다[治歷明時].”라고 하였다. 이렇게 동서양의 ‘혁명’이라는 말은 모두 ‘자연의 변화’에서 비롯되었다.

역(歷)은 밟아온 흔적[履歷], 곧 걸어온 자취[足跡]다. 역사(歷史)는 인류가 걸어온 자취이고, 역사[歷]에서 발 지(止) 대신에 해를 뜻하는 일(日)을 붙여 해가 걸어온 자취를 가리키는 것이 달력[曆]이다. 인간의 자취이건 자연의 자취이건 변화하는 주기가 있다. 움직인 것은 멈추고, 멈춘 것은 움직이게 된다는 이 변화의 원리를 역(易)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혁괘에서는 지금까지의 자취를 돌이켜 살펴보는 치력(治歷)과 지금이 바로 잡을 때인지 아닌지를 밝히는 명시(明時)를 강조한다. 혁명은 자연의 법칙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지나간 일과 지금을 잘 살펴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촛불혁명으로 쟁취한 장미대선이 눈앞에 있다. 지난 2월 촛불집회를 “선동혁명”으로 폄훼했던 구여권은 당명을 바꾸고 대한민국의 혁명을 말한다. 균형 잡힌 입장을 취하기 위해 촛불집회는 물론 태극기집회에도 나가지 않았다던 후보는 4차 산업혁명과 함께 정치혁명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촛불민심을 계승하기 위해 반드시 정권교체가 필요하다는 후보도 있다. 하지만 이 대선 정국에서 촛불을 들며 촉구했던 염원이 실종되었다는 비판도 적지 않게 제기되고 있다. 이 모든 것을 두루 살펴 마음을 정하는 것이 치력명시다. 광장에서 시작된 혁명은 치력명시하는 투표로 완성된다. 청년학생이 여기에 모두 참여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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