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도> 김석범 지음, 보고사 펴냄

김석범의 「화산도」(보고사)는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 ‘각종 상 수상’이라는 출판사의 홍보에도 불구하고 12권이라는 어마어마한 분량에 압도된다. 게다가 ‘4ㆍ3’이라는 무거운 주제로부터 오는 중압감은 책장을 넘기기 어렵게 만든다.

또 다른 ‘경계인’ 김석범, 제1회 4ㆍ3평화상 수상 소감을 고향에서 이야기하고 싶었던 90세 노소설가는 21세기인 오늘도 고향 땅 제주를 밟지 못하는 신세이다. 제주 땅을 벗어날 수 없던 ‘출륙금지령’과 같은 ‘입국금지령’이다.

‘금단의 소설’이라면 함께 모여서라도 그 금기를 넘어 보자고 ‘화산도’를 읽기 시작했다. 허구인 ‘소설’ 속에 나온 제주의 장소를 현재의 시점에서 대비해 직접 찾아가 보는 ‘화산도 탐방’ 행사도 기획했다. 이런 집단적이고 입체적인 책 읽기의 힘으로 1년을 갓 넘긴 이제야 겨우 종착역에 다다랐다.

4ㆍ3의 봄을 이야기하다.

화산도는 463의 수난사만을 다룬 이야기는 아니다. 국가 폭력과 비극만이 주요한 줄거리가 아니다. 읽어봤던 다른 4ㆍ3 소설과의 차이다. 다소 몽환적이고 꿈을 꾸는 듯한 주인공인 ‘이방근’이 등장한다. 그렇다고 그 낯선 꿈의 세계가 전체 소설의 서사를 방해하지는 않는다. 이방근이 이끌어가지만 4ㆍ3 당시 각각의 주체들이 등장한다. 가끔 지루한듯 낯선 문체이지만 책을 중간에 덮을 수는 없다.

특히 ‘아무 것도 몰랐던 선량한 제주사람’이라는 시선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 분단을 거부하려했던, 당시의 기준으로 ‘역사의 적폐’를 청산하려고 했던 제주 사람들의 움직임을 추적하고 있다. 주체적인 입장에서 써내려간 것이 특징이다. 번역자의 표현처럼 “당대의 정치가, 변호사, 재력가, 군인, 경찰에 이르는 인물군들의 생생한 현장성을 확인해 볼 수 있는 서사구조”를 체험할 수 있다.

소설은 작은 변방의 역사가 아니라 세계사 속에서 미완의 해답을 찾아야 한다고 일러주는 것 같다. 실제 제주만이 아니라 목포, 서울을 넘어 일본에 이르는 시공간 구조에서 4ㆍ3의 이야기가 움직인다. 또한 당대 제주사회, 한국사회의 자화상을 음식문화까지 포함해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이 와서 복기해 보면 해방공간에서 4ㆍ3의 봉기 과정은 물론 그 이후까지 치밀한 묘사와 탄탄한 전개를 확인할 수 있다. 마치 앞만 보고 숨 가쁘게 다랑쉬 오름에 올랐더니 제주 동부지역 오름군락의 전체의 자태를 직접 확인할 수 있을 때의 느낌과 같다.

노소설가는 화산도를 쓰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역사의 암흑, 영구동토 속에서 파묻혔던 4.3사건은 반세기를 지나서야 지상으로 부활했고, 앞으로 4.3은 완전해방을 위해 해방공간의 역사 바로 세우기와 불가분인 4.3이 한국현대사에 자리매김을 위한 역사적 과업을 수행해야 한다.”

4ㆍ3 70주년에 긴 호흡을 읽어봐야 할 책 

2018년, 내년은 4ㆍ3 항쟁 70주년이다. 경험할 수 없었던 세대들에게는 4ㆍ3은 ‘ 교과서에도 잘 나오지 않는 역사’일 수 있다. 그러나 제주 곳곳에는 70년 전의 기억이 여전히 흐르고 있다. 70년 전 4·3으로 인해 억울하게 옥고를 치러야 했던 90세 어르신들이 국가를 상대로 재심을 청구하고 있다.

원고지 3만 매에 제주의 역사를 진중한 필체로 그려낸 화산도, 30년에 걸쳐 쓴 소설인 만큼 바쁜 우리네 일상에서 선뜻 그 첫 페이지를 시작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긴 호흡으로 읽는다면 주저했던 4ㆍ3의 또 다른 역사를 만날 수 있다.

마침 국민들의 힘으로 만든 ‘촛불혁명’ 기세로, 또 다른 세상이 열리고 있다. 투표를 통해 정권도 국민들 스스로 교체했다. 이제 소설 속 4ㆍ3에서 걸어 나와 거리에서 4ㆍ3의 진정한 봄을 함께 노래할 때도 됐다. 출륙 금지됐던 섬사람들의 목소리만이 아닌 대륙을 넘고 바다를 건너서 그 진실을 찾을 때까지 4ㆍ3은 다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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