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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한 행정 위에 쌓아올린 다문화 사회의 이상싱가포르를 가다 (하) 싱가포르의 다문화 정책
초기 싱가포르는 4개 민족 간의 거주지를 분리하는 정책 시행…
그러나 분쟁이 지속되자 시민권 통해 통합적으로 관리
4개의 민족 명절을 국가공휴일로 지정

제주대신문 취재팀은 2월 22일 제주에서 홍콩을 경유해 싱가포르에 도착했다. 2월 23일부터 4일간의 일정은 날씨와의 싸움이었다. 2월말의 제주의 온도가 평균 5도 정도에 머물렀으나 싱가포르는 30도에 육박했다. 게다가 우기의 끝자락이라 비가 자주 왔다. 습도까지 높다 보니 불쾌지수 또한 매우 높았다. 그러나 취재에 대한 열정을 갖고 취재를 시작했다.

싱가포르는 제주도와 마찬가지로 관광이 잘 개발돼 있다. 싱가포르와 제주 관광지의 차이점과 어떻게 관광지가 구성돼 있는지 알아봤다.
  <편집자 주>

리틀인디아(LittleIndia)의 세랑군로드(SerangoonRoad)는 인도에서 일자리를 찾아 건너와 싱가포르에 정착한 초기 이주민들의 생활터전이었다.

이 도시국가의 본래 이름은 떼마색(Temasek: 바다 마을)이다. ‘싱가포르’라고 불린 것은 13~14세기경 스리 비쟈얀(Sri Vijayan) 왕국의 일부가 될 즈음부터다. 3세기경 중국 사관이 이곳을 파라주라고 기록하면서부터 역사에 등장했다. 파라주는 말레이어로 ‘섬 끝의 땅’을 가리키는 플라우 우종(Pulau Ujong)을 음차한 것이다. 싱가포르라는 명칭은 사자를 뜻하는 ‘싱가’와 도시를 뜻하는 ‘푸라’의 합성어다. 말레이시아 최남단 조호르 바루(Johor Baharu)를 통치하던 스리 비자야 왕국의 뜨리 부아나(Tri Buana, 또는 Sang Nila Utama) 왕자가 매사냥을 나왔다가 이 섬에 표류했을 때 사자(獅子)를 만났다는 전설에서 비롯되었다.

1511년 포르투칼이 말라카를 점령하자 말레이 제독이 싱가포르로 도망하여 조호르 라마(Johor Lama)에 수도를 세웠지만, 이곳마저도 포르투칼에 의해 1587년에 다시 멸망하였다. 1613년에는 포르투칼이 싱가포르를 불태워 역사 자료와 기록이 모두 소실되었다. 19세기 초까지 싱가포르는 네덜란드의 영향 하에 있었다. 원주민 300여명뿐이던 이 섬의 가치를 알아본 영국의 레플스(Thomas Stamford Raffles)가 1819년 조호르 왕국과 조약을 체결하면서 본격적인 개발이 이루어졌다. 1867년에는 관할권이 영국 식민지청으로 이전되면서 본격적인 식민지시대를 겪게 되었다. 이 시기 동인도회사와 식민지청은 인도 죄수를 동원하여 항만을 건설했는데, 주변 도서지역 주민과 중국인들이 일자리를 찾아 모여들기 시작했다.

1942년부터 1945년까지 일시적으로 일본에게 점령되었지만 일본이 패망하자 1946년 다시 영국의 직할 식민지가 되었다. 영국은 민족주의에 관심을 가진 싱가포르인들의 정서를 감안하여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가 단계적으로 자립정부를 구성하도록 하는 식민지 정책을 취했다. 결국 1963년 9월 16일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 연방(Federation of Malaysia)의 구성원으로 독립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채 2년이 지나지 않은 1965년 8월 9일 비말레이계의 단결과 지지를 호소했다는 이유로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추방당했다. 말레이시아는 13개 주와 3개의 연방직할지에 9명의 왕이 있는 입헌군주국이다. 따라서 비말레이계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싱가포르를 독립시키는 편이 정치적, 종교적 부담을 덜기에 좋았던 것이다. 싱가포르의 분리 독립은 타의에 의한 것이었다.

독립 당시 싱가포르는 물과 자원이 부족한 도시국가였지만, 독립 52주년인 2017년에는 1인당 국민소득이 6만7천달러에 달하는 부국이 되었다. 여기에는 싱가포르의 기간산업으로 손꼽히는 5대산업의 부흥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투명한 행정이 큰 역할을 했다. 싱가포르의 기간산업으로 손꼽히는 분야는 중개무역, 정유산업, 투자업, 의료산업, 관광산업 등 5대산업분야이다. 최근에는 바이오산업과 반도체산업, 중재재판소(ICA) 유치 등 부가가치가 놓은 산업을 유치하고 있을 뿐 아니라, 다이아몬드거래소(SDiX) 개설 등을 통해 교역의 허브로서 확실하게 자리매김하고 있다. 싱가포르 산업은 국제공인수준에 이른 국가보증에 대한 신뢰도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특징을 가진다.

싱가포르의 국가원수는 대통령이다. 하지만 행정부의 수반은 총리로, 각 부처의 구성원들도 의회의원이다. 다수당 소속 의원 중에서 대통령에 의해 임명된 총리는 정치와 행정 및 각 분야 최고의 권한을 행사하는 실질적인 최고 권력자이다. 총리실 산하에는 직속기관인 부패행위조사국(Corrupt Practices Investigation Bureau)을 설치 운영하고 있다. 부정부패 척결과 청렴한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서인데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국가 영역 안에 다양한 문화의 국민을 통합한다는 목표를 가진다. 이렇게 투명한 행정의 토대 위에 1991년에는 ‘공유가치(Shared Values)’에 대한 백서를 발표했다. 그 주된 내용은 “공동체와 사회보다 국가가 우선, 사회의 기본 단위는 가정, 개인을 위한 공동체의 지원과 존중, 충돌이 아닌 합의, 인종과 종교화합” 등이다.

초기 싱가포르는 파워 플랜(Power Plan)을 통해 민족 간의 거주지를 분리하는 정책을 시행하였다. 그러나 중국계(76.8%), 말레이계(13.9%), 인도계(7.9%), 기타 유라시아계(1.4%) 등으로 구성된 국민들의 분쟁이 지속되자, 시민권을 통해 이들을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이 지면을 통해서 소개된 바 있는 주택개발공사(Housing Development Board)가 주도한 공공주택(HDB) 프로그램도 갈등을 완화시키기 위한 정책 가운데 하나로, 이를 통해 국민의 90% 정도가 주택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한편 독립 이전에는 식민당국이 약탈을 행하는 추출(抽出) 무역에 치중되었다. 독립 이후에는 가공무역 중심으로 전환하려고 학교에서 영어와 국가이데올로기로서 ‘국가애(National Fraternity)’를 교육하도록 하였다.

실제로 싱가포르에서는 4개 민족의 명절을 국가공휴일로 지정하고 있다. 음력설(중국계), 이슬람력의 신년 첫날(말레이계), 힌두교의 신년 첫날(인도계), 크리스마스(유라시아계)이다. 이렇게 해서라도 국가의 통합을 이루고자 하는 싱가포르 정부의 눈물겨운 노력은 이번 취재여행에서 자주 확인할 수 있었다. 예컨대 양치식물이 주렁주렁 착생된 가로수나 물고기와 사자를 합한 머라이언(Merlion), 영국의 식물학자였던 리처드 에릭 홀텀(Richard Eric Holttum)이 개발한 것으로 유명한 싱가포르의 국화인 양란 등은 모두 ‘통합’을 추진하는 사례다. 원주민 300명으로 출발한 이 가난했던 섬이 다문화시대의 선진도시국가로 단시간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이렇게 지난한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문화시대에 국제자유도시를 표방하는 제주특별자치도가 나아가야 할 길을 여기서 찾아보는 것도 뜻 깊은 일이다. <끝>

김치완 주간교수  webmaster@jeju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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